오늘은 늦은 밤, 비에 젖은 운동장을 뛰었다. 트랙을 뛰다보니, 처음엔 몇 개 보이지 않던 발자국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기하게도 앞서 남긴 발자국을 따라 달리다 보면 그다지 힘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발자국이 또 다른 발자국을 이끌어내는 사이, 어느덧 30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꽤나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시간이 안 갔는데, 발자국 좀 보면서 달린다고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가다니. 심지어 체력이 조금 남아 더 뛰고 싶은 느낌도 들었다. 아무래도 발자국은 단순히 잠깐 남는 흔적이 아니었나 보다.
꾸준함은 이토록 신묘하다. 평소엔 그다지 체감도 안되고, 하루하루 나아지긴커녕 똑같이 힘들기만 한 것 같은데, 어느샌가 발자국처럼 쌓여 또다시 발을 이끈다. 그렇게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나아가다 보면, 내가 낸 길을 따라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본질은 축적이다. 우리가 해야 할 건 단순히 몇 발자국 남기고 마는 게 아니라, 언젠가 만들어질 길, 즉 관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무리 선명한 발자국이라도 인생의 모진 풍파 앞에선 쉽게 지워지기 마련이다. 그 흔적이 지워지더라도 다시 남기고, 더 많이 남기겠다는 마음가짐. 그 멈추지 않는 관성만이,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오히려 좋지 않은가? 어차피 쉽게 지워질 발자국이라면, 무언가를 시도할 때 거창하고 선명한 흔적을 남기려 애쓸 필요가 없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때로 우리 발목을 붙잡지만, 비에 씻겨 나갈 흔적임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한 걸음이 아니다. 그저 내딛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라.
그러니 가볍게 시작해도 된다. 흔적의 깊이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반복이 가치있는 것이다. 괜히 내 발자국이 너무 흐릿하진 않을까, 금세 사라지진 않을까 걱정하지 말자. 시간이 지나 운동장을 몇 바퀴쯤 돌고 나면, 이젠 좀 눈에 띄기 시작하는 나만의 길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