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와 책수다로 성장하는 아이들
독서, 미운 오리 새끼?
초등학교 저학년일 경우, 교사와 부모의 독서 권유는 강력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사정은 다르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독서를 그만두라 한다. 책 읽기가 재미있다는 것을 미처 경험하기도 전에 학업에 집중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자연스럽게 책을 멀리하고 중학생이 된다. 독서에서 멀어진 학생들은 학업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고 공감 능력이 떨어져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더러 겪는다. 여기에 사춘기의 정서적 불안감이 겹쳐 학생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독서가 공부에 방해되며 긍정적 효과가 없는 무의미한 활동인가? 여기 책 읽기로 부쩍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독서와 토론에 흠뻑 빠진 아이들
토요일 오전 9시가 되기 전,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떠 있다. 자신이 만난 새로운 경험을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친구의 감동을 전해 듣느라 왁자지껄하다. 가만 들으니 제제⎯『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네 식구들 이야기다. 그 어린 꼬마를 어떻게 구박하고 때리느냐는 분노의 목소리와 안타까운 목소리가 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공연을 전할 때도 이처럼 흥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휴대폰과 게임에만 빠져 있다고 여기는 어른들에게 이 장면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독서로 알게 된 흥미진진한 세상이 아이들을 각종 자극적인 영상이 가득한 미디어와 게임 속에서 나와 사람들과 소통하도록 도와준다.
본격적인 <독서토론 수업>이 시작되고 학생들은 저마다의 감상을 전한다. 집중한 인물이 다르고 감상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제제의 아픔을 읽어내는 데에는 다름이 없다. 토론을 통해 혼자서는 보지 못한 부분을 이해하고 공감의 폭을 넓히고 궁금한 것을 드러낸다. 제제를 악마 또는 천사로 부르는 이분법적 시선이 가능한 이유를 물었다. 또 제제의 가족들이 왜 폭력을 쓰는가라고 질문하자, 가난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토론을 펼친다. “제제가 불쌍해요”라는 감상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교육과 복지 등 사회구조의 개선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세 시간이 훌쩍 지나는데도 학생들의 집중력은 여전하고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다며 아쉬워한다. 제제의 감정을 상상하며 공감 능력이 커지고, 공감했으므로 이런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필요한 것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것을 주장하면서 이성과 논리를 키울 수 있었다. 독서와 토론은 이렇게 아이들의 감성과 이성을 고루 성장하게 한다.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를 읽은 친구가 일본 근대화에 헌신한 자국 정치인 이토를 죽인 안중근을 위해 일본인이 변호를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몇몇의 친구들은 안중근의 변호를 맡은 일본인 변호사가 성의 없다고 지적한다. 이어서 토론이 벌어졌다. 처음 친구가 자신의 독해가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토론을 지켜보면서 “왜 안중근의 변호를 일본인이 맡았을까?”라고 물었다. 답을 찾느라 고민이 많다. 고민의 결과는 아마 다음 주에 나올 것이다. 제제와 음반을 파는 아저씨의 관계를 오해한 것과, 일본인 변호사에 관한 얕은 이해는 혼자 읽었다면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 읽고 토론을 했기에 오독을 발견하고 정정하며 더 깊이 이해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함께 독서와 토론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 지적 경험이다. 혼자 읽어서 미흡하고, 독선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면서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받는 것이다.
독서를 권하는 아이들
성장을 경험하고 나서 자기들 표현대로 ‘소름이 돋았다’는 소감을 전하며 독서가 얼마나 재미있고 중요하며 필요한 것인지 앞 다퉈 말했다. 그중 한 학생이 사뭇 씁쓸한 경험을 전한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독서를 권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너는 특별하니까 그런 거야.” 이 대답에 교사인 나는 고민에 빠졌다. 독서를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아이들의 전유물로 여기고, 그 즐거운 경험과 변화를 자기 것이 아니라며 미리부터 기피했던 것이다. 우리 교실의 현실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들 수준에 맞는 책으로 공감도, 지적 호기심도 자극받아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추천도서, 필독서는 아이들 각자의 수준과 맞지 않다. 책을 과제처럼 대하는 아이들에게 ‘독서는 특별한 아이들이 하는 거야’라는 생각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주변 친구들에게 각자의 수준에 맞는 책을 권해, 그들도 ‘소름 돋는’ 경험을 하도록 이 아이들이 도와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아이들끼리는 통하는 것이 있으니 말이다.
독서, 그것은 건강한 오리이다
미운 오리는 없다. 처음부터 단지 오리였다. 독서는 처음부터 당당하고 중요한 활동이었다. 학업에 밀려 미운 오리 새끼인 양 뒷전에 밀려 있었지만, 여전히 독서는 뒷전에서도 아이들의 이성적 사고의 기본기를 다지고 감정을 북돋우며 성장의 동기가 되어 왔다. 아이들은 뒷전의 독서라는 날개를 기어이 발견해 건강한 개인,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하려 하고 있다. 이와 함께, 토론은 함께 읽으며 독선과 아집을 깨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보편적 가치로 나아가게 하는 지성의 다른 쪽 날개다. 교육 현장의 건강한 오리로서 독서와 토론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길 바란다. 더불어, 아이들이 저마다 꿈꾸는 열망을 품고 한껏 날아오르길 뜨겁게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