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한 학교 생활 속 깨알 즐거움
둘둘 말아올린 체육복 바지는 교복치마로 감쪽 같이 숨겼고.
가방은 등에 바짝 조여 멨고.
엉덩이는 이미 반쯤 의자에서 떨어졌고.
준비 다 됐군.
나에게, 아니 나의 입에 64개의 눈이 모였다.
“문 앞으로 모두 일렬로~ 발끝 들고, 소리 없이 출발~”
오늘 학급조회 시간에 짠 작전대로 아이들은 교문 뒷문만 나서면 사복이 되도록 미리 위장한 차림으로 줄을 서서 일사분란하게 이동했다. 30여 명이 이동하는데 옷깃 스치는 소리 하나 없다.
다른 반은 아직 종례 중이다.
교복을 허투루 입으면 교정 여기저기에 계신 선생님들께 한 소리 들을 우려가 있어 뒷문으로 나가기로 했다. 종례를 좀 일찍 끝내달라는 건의(협박)를 ‘받고’ 청소를 점심시간에 끝내라고 제안을 얹었더니, 환호!!
우리의 작전은 이랬다.
하나. 청소는 점심 시간에 끝낸다.
둘. 체육복 바지를 교복치마 밑에 숨겨 입는다.
셋. 마지막 수업 마치는 종소리가 들리고 담당 과목쌤이 나가자 마자 가방을 멘다.
넷. 복도에서 대기하던 담임(나)이 곧장 들어온다.(마침 6교시 수업이 없다.)
다섯. 0.1초 만에 종례를 끝낸다.
여섯. 소리죽여 학교를 빠져나간다.
일곱. 반드시 '언니오빠들'을 코 앞에서 영접한다.
며칠 전,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흥분한 상태다.
물론 종종 마주하는 상황이긴 하다.
그런데 범주가 다르다. 에너지의 종류가 다르다.
이럴 때 수업은 덜 중요하다.
“니들 왜 그래?”
둑이 터진다.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한 사람이 대표로 설명을 해봐.”
정보를 총 정리해보니 이렇다.
. 오늘 사랑하는 언니오빠들(아이돌)이 대거 출연하는 음악프로그램 공개 방송 티켓을 오픈한다.
. 인터넷 광클릭으로 티켓을 구해야한다.
. PC방 컴퓨터가 가장 빠르다.
. 티켓 공개 시간이 학원 시간과 겹친다.
. 아, 절망이다.
그래? 학원 안 다니는 녀석이 PC방 가면 되겠네? 한 마디 건네고 빠졌다.
학원 안 다니는 영희가 가겠다 한다. 순이도 합류한다. 순이 친구 정숙이도 간단다.
정숙이가 개인당 4장 까지 구할 수 있다고 고급 정보를 알린다.
공개 방송에 가고 싶은 녀석 손 들라 하더니 저희들끼리 급히 회의를 한다.
32명 중에 26명이 가고 싶단다.
PC방 갈 수 있는 녀석이 8~10명 정도 된다. (학원 시간이 바뀐 녀석, 학원 빠져도 된다는 녀석 등 합류)
‘광클릭’해서 성공한 녀석이 학급 단톡방에 올리기로 한다.
26장이 넘으면 다른 반 친구들에게 선심 쓰기로 한다. 회의 끝.
그날 단톡방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성공~, 성공!, 성~~공.
치하와 찬사, 자화자찬 등의 글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렇게 표를 넉넉하게 구해 온 기쁨도 잠시, 티켓을 구한 것으로 끝이 아니다.
좌석 번호가 없는 표다.
선착순 입장이라서 언니오빠를 앞에서 보려면 일찍 줄을 서야 한다는 뜻이다.
공개 방송을 평일에 하는 것도 그렇고, 공짜표 주면서 광클릭하게 만든 부분도 그렇고, 광클릭해서 성공했으면 안전하게 좌석 번호를 매겨줘야지 하는 꼰대스러운 화가 쑤~욱 하고 올라왔지만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쪼아!! 그건 내가 해결해 주겠어!."
그렇게 앞줄에 서기 위한 우리의 작전이 만들어졌다. 티켓을 구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으로 앞줄에 서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도전해 볼만 하다.
하루 종일 언니오빠들을 만날 생각에 엉덩이 들썩이는 마음이면. 한 걸음이라도 더 앞서 가고 싶은 마음이면, 친구들과 함께 보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표를 구하던 들뜬 마음이면 도전해 봄직하다. 앞줄에 서기 위한 작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까짓, 교복 치마에 체육복 바지가 대수겠어, 청소가 중요하겠어?
대형 스크린에 비친 언니오빠의 얼굴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마이크 통해 나오는 목소리를 들은 것이 전부였지만 아이들은 그 순간 가슴이 터졌을 것이다. 친구들과 손을 잡고 방방 뛰고 고함을 지르면서 자기들끼리 더 흥분했을 것이다. 그렇게 녀석들은 추억 하나를 쌓았다. 기억 저장소에 열광의 사진 한 장을 남겼다.
후기
다음날, 여전한 흥분 상태로 등교한 녀석들이 시끄럽다.
얼마나 격하게 그날을 즐겼는지 갈라진 목소리가 알려준다.
탁하지만 여전히 높은 목소리로 결론이 없는 논쟁을 펼치고 있다.
“어제 그 오빠가 무대에서 날 보고 윙크한 거, 봤지?”
"아냐 아냐! 내가 이름 부르니까 날 본거라고~~"
아...
어제의 우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