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모가지 툭 떨구고 바닥에 널부러지는 동백꽃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줄 탁 끊고 철퍼덕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다.
잠이 모자랐을까?
눈이 시큰한 것인지, 마음이 쉬어버린 것인지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눈에서는 김이 오르는지 제대로 뜨고 있을 수가 없다.
우리 몸에는 60조가 넘는 세포가 있다지?
그 아이들 세포는 욕으로 되어 있나?
입에서 가래떡이 뽑혀 나오듯 술술 말끝마다 육두문자가 힘도 안 들이는 것 같은데 미끄러져 나온다. 그 아이들 욕이 끝나려면 60조 번은 들어야 끝날 것 같은 피곤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욕 때문에 피곤한 것이 아니라 어젯밤에 진한 커피를 맹물처럼 들이켜서 그렇다고 핑계를 대면서 자리를 틀고 앉아 꼼짝하지 않으려고 애써 보지만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 욕들이 진득진득 오뉴월 엿가락처럼 온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욕쟁이들을 잡아다 복도에 죽 세워놓고 ‘어느 놈이 그리도 찰지게 욕을 했냐’고 다그쳐도 일곱, 여덟이나 되는 놈들이 다 욕을 안 했단다. 그중에 마음 약한 놈이 욕을 한 놈을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정작 당사자는 맹세코 자신은 욕 근처도 안 갔단다. 애초 승산 없는 신경전을 내가 시작했으니 내가 초장에 접는 것이 맞다. 오리발 앞에서는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다. 애초에 받을 놈도 없는 껍데기 경고장만 남발한 채 각자 흩어졌다.
끝까지 욕쟁이를 색출해 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놈이 욕을 했을 가능성은 100%이니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면 그놈의 자백 정도는 받아 낼 수도 있었겠지? 칼집에서 칼을 뽑지도 않고 포기한 이유가 뭘까? 단순하다. 또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눈 하나 끔쩍하지 않고 당당하게 욕을 하지 않았단다. 심증만 가지고 덤빌 수도 있었으나 그냥 그 아이 눈에 똘방똘방 비치는 내가 너무 피곤해 보여 견딜 수가 없었다. 눈꺼풀도 없는 눈에, 반쯤 벌어진 네모진 입술이 따져 묻기도 전에 그냥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직선으로 내려 꽂히던 그 눈빛과 쉴 새 없이 달싹거리던 입술은 진위 여부를 막론하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 묘한 기운이 있었다. 빈틈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굴러다니는 눈과 혀를 이제 감당할 재간이 없다. 내 마음 부러지는 소리가 이미 그 애에게 들렸을지도 모를 일이니 붙잡고 씨름을 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그 아이들과 함께 한 그 짧은 시간과 공간은 모두 피곤으로 몰려온다. 이쯤 되면 무참히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모든 신경줄을 끊고 툭 꺾이고 싶다. 한 번 내려서는 것만으로 다시는 오를 수 없을지라도 미련 없이 내려서고 싶은 것이다.
내가 뭐 어찌해 보는 것만으로도 직선으로 내리 꽂히던 눈빛의 각도를 1도라도 비틀어 놓을 수 있다면 아마도 이리도 피곤하지는 않을 것인데….
꺾인 마음자리로부터 번지기 시작한 검붉은 멍 자국.
오랫동안 풀을 깔고 앉아 꼬리뼈로부터 척추, 척추에서 오장으로, 오장에서 육부로 풀빛 번지길 기다려 본다. 자꾸 동백꽃 널브러져 있는 꽃자리에 눈길이 끌려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이쯤 되면 풀물로도 그 시퍼런 멍 자국이 덮이지 않음이다. 밀려가지 말고 펄쩍 뛰어내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그것이 아름다운 마무리가 아닐까! 저 무참한 동백의 뒤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