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로 시집을 오니 나보고 돈 1000원을 주면서 시장에 가서 '곰피'를 사 오란다. 저녁 밥상을 다 차려둔 상태고, 제 아무리 시장이 겨드랑이 밭에 있다손 치더라도 피를 사다가 요리를 하자면 족히 30분은 걸릴 텐데 시어머니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곰의 피'를 사 오란다. 슬리퍼 꿰차고 4층에서 내달려 집 곁에 있는 전하 시장으로 가면서 이름이 '전하'니 세상에서 구경 못할, 별걸 다 파는가 보다고 투덜거렸다.
시장을 아무리 둘러봐도 곰을 잡아 파는 곳도 없고, 곰피를 판다는 곳도 없었다. 결국 정육점에 들러 곰피를 파느냐고 물었더니 내 엉성한 홈드레스에 말씨가 경상도는 아닌 것 같아 보였는지 대뜸,
"고향이 어딩교?"
물었다.
"충청도요."
"저어기이 곰피요."
손가락 끝에 걸릴 물건은 미역 같이 거무충충한 바다풀이었다. 1000원을 내니 검은 봉지로 가득 구겨 넣어 줬다.
부랴부랴 집으로 올라오니 성질 급한 시어머니는 머리꼭지까지 성이 나서 눈이 사나웠고 말끝도 빳빳하게 서고 손도 굳었는지 내려놓는 그릇들이 그대로 상이며 싱크대에 탕탕 곤두박질쳤다. 내가 설마 곰피를 모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한 모양이었고, 내가 진땀을 빼면서 시장 구석구석 기웃거리는 동안, 시어머니는 시어머니 나름대로 고부 사이에서 승기를 잡고자 숟한 불순한 생각들을 한 게 분명했다. 그 이후로도 내게 알 수 없는 것들을 사 오라고 1000원 아니면 2000원을 주면서 시키셨었다. 그 하나가 '미역귀다리', '시나나빠', ' 제피', '응개' 등이다. 다 향과 맛이 강해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친해질 수 없는 것이 '방아'다. 추어탕에 필수로 들어가는 채소인데 시댁은 된장찌개에도 넣어 먹었다. 아무리 설거지를 깨끗하게 해도 그릇그릇에 배인 냄새는 없어지지 않는 것 같아 시집오고 3개월째에는 내 일생일대의 몸무게를 찍었었다. 10킬로그램이 빠졌었으니 그놈의 낯선 이름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겠는가?
세월은 입맛도 바꾸어놓는지 이제 제피도, 응개(엄나무순)도, 시나나빠(봄동)도 애써 찾아먹는 음식이 되었다.
사립문 곁에 맞춤한 엄나무가 한 그루 있다. 매년 순을 따는데 그것조차 다 먹을 수 없어 장아찌로 만들어 지인들과 공유하는 재산이 되었다. 사위도 안 주고 방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첫물 부추도 한철이니 다 먹을 수 없어 삭혀서 일 년 내내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다 먹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엄나무순을 따서 삭혔다. 맛이 들면 이것도 주인 찾아갈 것이다.
이 일도 내 몫은 어디까지나 따고 씻고 장물을 만들어 장아찌를 담가두는 데까지다.
얼굴만 한 하귤청과 으름 속청을 듬뿍 넣고 밑국물 만들어 본다. 공식은 없다. 그때그때 냉장도 털어 넣는다. 끓여서 한 김 식혀 부으면 1차는 끝. 3일 후 다시 국말만 끓여 식혀서 붓고 냉장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