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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무너졌다.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by 이미숙

비가 오랫동안 샌 집이란다. 상냥 문에는 1976년에 지은 집이라고 쓰였는데 지붕만 고치려고 살살 내부 합판들을 들어내는 와중에 와르르 쏟아졌는지 모를 일이다. 암튼 톡에는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빈터만 여러 장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목이 풀릴 때로 풀린 개구리가 밤마다 담장도 없는 빈터를 떼 메고 갈 듯 울어재끼고 걸릴 것 없는 집터에는 고라니 울음도 가끔씩 직격탄으로 꽂힌다.


귀신 놀이터 같았던 집이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니 애초에 뜯고 다시 짓고 싶었던 마음도 땅 밑으로 꺼져버렸는지 집이 사라진 대로 아쉽고 안타깝고 그렇다.


입도 풀리지 않은 새들이 허물어져가던 담장에 앉아 쫑알대던 모습이 선연한데, 어느덧 시멘트 블록이 쌓이고 그 위로 철봉이 내리 꽂혀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마당 가운데 서 있던 얼추 내 나이쯤 되는 감나무도 생뚱맞은 자리에 틀고 앉았다는 이유로 베어졌다. 자리를 잘못 잡았다는 이유만으로도 하루아침에 비명을 달리할 수 있음이 좀 개운하지 않다.

화단에 올망졸망 어깨 나란히 하고 앉아 피던 꽃들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제 갓 존재감을 과시하던 능소화도 물론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사달이 날 듯하여 집부터 고치고 뭘 하든 하자고 그렇게 귀신 씻나락 까먹듯이 이야기를 했건만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이제야 이 귀퉁이 저 귀퉁이를 돌며 혀를 찬다.

잘 모르겠다.

어쨌든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놀이에는 모래 대신 돈이 착착 손등에 올라간다는 사실이 무섭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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