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됐건 집은 올라가고 울타리가 쳐지고 벽에 타일들이 붙기 시작했다. 지붕 철거 과정에서 속절없이 와르르 무너진 것인지, 육중한 기계들이 덤벼드니 애초에 대들보가 주저앉아 항복을 고했는지는 안 봤으니 모를 일이다.
일찍 군사처럼 진군한 더위와 씨름을 하는 것인지 집과 씨름하는지 모를 나날들이 계속되었고 나는 그냥 속이 불편하고 멋쩍어 토요일에는 찬 음료라도 챙기게 됐다.
김밥을 언제 쌌을까? 기억에도 없다. 주말 연수를 다니는 남편이 도시락을 사 달란다. 제일 만만한 것이 김밥이라서 재료 사러 갔다가 놀랐다. 푸성귀값이 매우 비쌌다. 서너 푼에 한 급 낮추는 법 없는 내가 자꾸 뭔가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냉장고에 쟁여둔 김치들을 파 먹느라 풍성귀 산 적도 기억에 없고, 살 만하면 밭에 맞춤한 것들이 자라다 보니 마트도 잘 안 갔지 싶다.
비싼 시금치 대신 참나물 부지깽이나물 등을 사서 다듬어 데치고 밭에 부추며 쑥갓이며를 뜯어 데쳐 속을 욕심껏 채워 넣었더니 김밥이 거의 다듬이 방망이 수준이다.
맛은 그만이다.
새참으로 만든 것인데 얼추 정오다. 김치 한 포기 내서 썰어 헐레벌떡 건너갔더니 왠 멀쑥한 외국인이 집에서 나왔다. 좀 뜨악했고 왠지 모를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외국인 근로자를 쓰고 있다고?'
뭐 어쨌든 밥은 들여야 해서 집안으로 들어갔더니 엉덩이가 땅에 붙을 것 같은 얼추 노인 같은 분이 나왔다.
"집주인인교?"
"네. 새참을 가져온다는 게 밥때에 맞춰 왔네요."
"아, 우리 지금 점심 먹으러 감더."
"네에~. 김밥인데 두고 갈까요?"
"우리가 먹으면 안 되는교?"
그렇게 김밥이 풀어졌다.
외국인 노동자는 말쑥하니 호남형으로 연신 김밥을 먹으면서 엄지를 치켜들었다.
"식당 밥맛 없어요. 이게 더 맛있어요. 김치 정말 정말 맛있어요."
저 이는 김밥이 맛난 걸까? 김치가 맛난 걸까?
김밥을 두 줄씩 챙겨 드시는 동안 머뭇거리다가 남은 김밥은 탁구장에서 풀었다.
손이 큰 나는 늘 이렇다. 아무 데서나 확 풀어
뭐 좀 묵자 소리도 못 하면서 하기는 정말로 많이 해 뒤처리에 골머리를 앓을 때가 더러 있다. 남편은 뭘 해도 2% 부족한 듯이 하여 늘 가치를 올리는 편이라면 나는 늘 2% 넘치게 하여 그 가치를 무화시킬 때가 있다.
남편에게
"외국인 근로자가 미장일을 하더라."
"요즘 다 그렇지. 건설 현장이라고 다를까 봐."
"'미장이'라고 그러잖아. 기술자라는 건데 아무나 미장을 해도 되나?"
"왜 외국인 근로자는 기술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많아야 30대 같던데 그 어린 나이에 미장일에 전문성이 생겼다고?"
"지금 전문성 얘기가 아니잖아. 외국인이라는 것이 포인트 아닌가?"
그랬다. 미심쩍은 것이었다.
외국인만 미심쩍은 것이 아니라 현장일을 외국인 근로자와 나이 든 근로자에게 맡기고 자신 볼일을 보로 간 건축 업자까지 싸잡아 못 미더웠던 것 같다.
"장마라는데 날 좋을 때 퍼뜩퍼뜩 해 치우지. 내일부터 장마라는데."라며 투덜 거니리
"돈도 많이 안 주면서 투덜거리나 돈이나 많이 주면서 투덜거리든지?"
맞는 말이다. 돈은 만사를 형통케 한다.
오늘 새참도 돈 몇 푼이면 해결되는 것이었는데 아침 7시 반부터 12시가 다 될 때까지 혼자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