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더 이상 노출시키고 싶지 않아!

5촌 아지매 부고

by 이미숙

왜 그랬을까?

엄마하고는 4촌이니 나랑은 5촌이고 그럼 나는 5촌 아주머니 정도로 불러도 됐었을 텐데 우리 모두는 엄마 친척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삼촌 아니면 이모로 불렀다.

지역 특색인가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 것 같았다. 우리 식구들은 엄마와 관련된 사람들은 모조리 이모나 삼춘(촌)으로 부르거나 개중에 젊은 사람들은 오빠나 언니로 불렀다.

어쨌든, 3일 전에 이모 부고 소식을 받았다. 엄마나 동기가 있는 언니 동생들이야 왕래가 있었겠지만 나는 동기도 없고 그 집에 가서 밥을 먹은 기억도 없는데 굳이 가고 싶지 않았다. 정월 대모름에 안면도를 다녀왔는데 며칠 안 돼 또 그 먼 거리를 간다는 것도 부담이었지만 울산에서 안면도까지야 어찌어찌 간다지만 일단 가서 내 소개를 구구절절 한다는 것이 우선 내키지 않았다.

70이 넘은 첫째 언니나 둘째 언니 또래들은

"이 니가 여섯째여? 그러니께 그 울산으로 시집갔다는 여섯째여?"

질문인지, 이야기 발동을 걸 추임새인지 모를 말로 시작해서 내가 기억할 수 없는 기저귀를 찼던 시절 누구 등에 업혀 자랐던 이야기부터 국민학교(초등학교) 운동가에서 머리끄댕이 잡고 쌈박질하던 이야기를 비롯해서 자신들은 흥미진진한지 연신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발가벗겨지는 것 같아 내내 불편했다.

나보다 3살 많은 바로 위 언니 또래들 무리에라도 섞이면 누가 누구를 좋아했네 어쩌네가 단연 으뜸가는 이야기거리다. 한번도 마음주지 않았던 동네 오빠가 나를 참 좋아했네 어쨌네 하는 소리도 한두어 번은 재미로 들을 수 있지만 서너 번을 넘기면 주책스럽게 들린다.

내 동창을 만나도 달갑지만은 않다. 거나하게 술이 한 순배 돌면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이 줄줄 제어되지 않고 나와 술판에서 뒹군다.


두어 번 동네 일에 참석하고는 다시는 발걸음을 안 하기로 했다.

우리 동네에서 우리집 이야기는 단연 1순위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딸만 아홉!


딸 부잣집!


키가 180이 넘는 장신 아버지에 동네에서는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체통 중시한 아버지와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엄마 때문에 우집은 동네에서는 금남의 집이었다.


ㅁ자로 외부와 단절된 듯한 우리집은 내 친구들도 늘 궁금한 집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 반 남자 아이들이 우리집 대문을 넘은 예는 극히 일부다. 뒷집 문선이, 아랫집 무선이가 다지 싶다. 좀 무서운 집이었다. 난 그 집을 그 동네를 빨리 탈출허고 싶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들 속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 방법은 타지로 고등학교를 가는 길 외에는 없다고 생각해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6학년 때 덜컥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바깥일이라고는 1도 해 보지 않은 엄마가 나를 외지로 학교를 보내줄 턱이 없었다. 딸 아홉 중 이미 다섯까지는 도회지로 나간 상태였고, 여섯 째인 나부터 일곱째, 여덟째, 돌도 안 지난 아홉째만 덩그러니 큰 집에 남겨졌다. 중학교는 그럭저럭 외지로 나가야한다는 일념으로 버텼는데 아버지 없는 집에서 대전이나 천안으로 학교를 간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하늘은 늘 숨구멍을 남기고 닫히는지 그래도 큰형부가 손을 내밀었고 큰형부 곁으로 갔다. 그렇게 탈출한 고향이었는데 일만 생기면 소환된다. 나도 모르는 내가 사람들에 의해 노출된다. 늘 당혹스럽고 무안했다. 누구는 나와의 인연이 소중해서 꺼내기도 하지만 그저 그냥 가십거리로 꺼내 소가 되새김질하듯 씹는다. 유쾌하지 않았다.


동생이 전화를 했다.

"언니 갈겨?"

"아니, 나는 이제 나를 더 이상 노출시키기 싫은데. 부조도 안 할거야."

"그치 언니. 나 그 이모 잘 몰라. 얼마 전에 시골 어르신 돌아가셨다고 해서 갔다가 성질나서 혼났어. 글쎄, 대뜸 날 보더니 "너 그 뚱땽이 미희 맞지?" 그러더라. 언젯적 이야기를 꺼내고 그랴. 지들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마음 불편하면 안 가도 돼. 아예 너를 노출 안 시켜도 돼."

"그치 언니! 그게 맘 편해."


다 부처 같은 맘으로 살 수는 없다. 누가 뭐래도 염화 미소로 응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끔은 잘 아는 신작로라고 무심코 걷다가 돌팍(돌뿌리)에 걸려 무릎팍이 깨지기도 한다. 그것까지야 피할 수 있겠는가마는 예상되는 돌팍쯤은 피하고 살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댕유자쌍화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