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연을 만난다는 것이 늘 새롭거나, 나도 모르게 미세하게 흥분된다거나 즐겁거나 흥미진진한 것만은 아니다. 나이들어 새로운 인연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몇 걸음 정도 거리두기를 해야 할까라는 계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가싫은 일이 뜻하지 않게 생긴다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인연과의 만남에 기대를 걸거나 설레거나 하지 않으니 눈빛이 맺히거나 몸이 굳는 일도 없어 좋다.
37년 전에도 별다를 것이 없는 그를 아무런 기대없이 대학 학과 동기로 만났다. 다른 남자 동기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을 정도로 키가 컸고, 뼈에 가죽을 뒤집어 씌워 놓은 것처럼 몸 구석구석 옷과 몸이 분리되어 여분이 많아 보이던 사람이어서 그냥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대학 2년을 그렇게 동기로 지내다가 고아원 자원 봉사를 나갔다가 비로소 아이들을 안고 있는 손이 보이고 아이들과 말하고 있는 입이 보이고 공을 차고 있는 다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같이 1년쯤 자원봉사를 다녔을 때는 그의 나붓한 숨소리가 들리고 곁에 서면 체온이 느껴지더니 졸업할 때가 되니 그가 보이지 않아도 그의 진동이 느껴졌다.
그래서 결혼했다.
뭐가 그리 좋아서 결혼을 했는지 딱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졸업 후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간 뒤로는 떨어진 거리가 자꾸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결혼을 생각했다.
부모들도 혼기가 찬 자식들이라 생각했던지 한 번 만나 백년에 한 번 돌아올까말까라는 2월 29일로 날짜를 앉은 자리에서 잡아버렸다. 그게 1월 말쯤이었고 혼수니 뭐니 다 있으니 몸만 합치면 된다고 밀어부치는 바람에 어떨결에 둘이 다니던 작고 비좁은 교회에서 식을 올렸다. 그 당시에는 결혼만 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고, 나아질 줄 알았고, 행복해질 줄 알았다.
준비없이 시작한 결혼이어서 그랬던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남자라는 것과 여자라는 것만 알았던 우리는 아이도 경제적 기반이 잡히면 가지자 했는데 바로 큰아이가 생겼고, 마른 건불 같던 남편이 폐병 말기 진단을 받으면서는 저승 문턱까지 원치 않는 길도 갔다 와야 했고, 수업 시간 땽땡이 치고 자전거를 타고 놀던 중2 남학생은 두 돌도 안 된 아들 머리를 박아 아들은 머리 함몰로 대수술을 받아야 했고, 간 수치가 죽을 만큼 올라간 나는 머리 숱이 절반 정도로 빠져나가는 투병을 해야했다.
그랬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기념일이고 생일이고 챙긴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결혼 기념일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길일은 길일이었었나 싶다. 대부분은 바빠서도 잊고 지났으나 의식적으로도 그냥 지났고 더욱이 고마운 것은 어쩌다 돌아오니 핑곗김에 작심하고 잊기도 했었다. 작정하고 잊어도 누구 하나 볼맨 소리하기 어려웠고 해도 '올해가 그 해?'정도면 되었다.
그렇게 33년이 갔다.
그동안 아이들은 독립해서 자기 밥벌이를 하기 시작했고, 남편 따라 나도 처녀적 하던 일을 23년째 하고 있다. 부자라면 부자다. 신혼 때와는 달리 냉장고 한 개만 파 먹어도 석 달은 살 것처럼 이러구러한 것들을 쟁여놓고 사니 부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20년이면 바로 80이 코 앞인 나이이다. 늙는 종자가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 늙는 일에서 나를 제외시켰던 젊은 시절이 다 갔고 이제 나도 금방 양철지붕처럼 쭈글방탱이 얼굴과 요란한 입을 가진 나이의 사람이 된다는 것을 순히 받아들일 나이가 된 것이다.
올해가 그 2월 29일까지 있는 해다.
한번도 기념이라고 여행을 가 본적도 그 흔한 케이크 한 조각에 촛불을 밝힌 적도 없이 맹숭맹숭하게 보내고는 했다. 올해는 해외 여행은 못 가더라도 기념 식수라도 해 보기로 했다. 둘 다 은목서 금목서를 사다가 사립문 양쪽에 심기로 하고 서부 경남에서 제일 크다는 화훼 공판장으로 갔다. 결혼이라는 것이 둘 맘대로 혹은 뜻한 대로 되지 않듯, 그날도 은목서 금목서는 눈에 띄지도 않았다. 대신 난생 처음 보는 나무를 꽃과 향기에 취해 입이 짜져라 좋아하면서 사들고 왔다.
삼지닥나무가 그랬고, 레몬오렌지가, 올리브 나무가 그랬다. 나무야 늘 그 모습이지만 둘의 향이 남달랐다. 결국 향이었다. 나무를 어떻게 심을까 고민을 했다. 결국 삼지닥나무는 담장 앞 텃밭에, 올리브와 레몬오렌지는 냉해도 입을 수 있으니 큰 화분에 심어 봄여름 가을에는 밖에서, 겨울에는 비닐하우스 속에서 키우기로 했다. 나무를 심으면서 우리는 결혼을 하면서 이런 사소한 배려라든가 계획조차도 없었구나 싶었고, 그랬으니 시쳇말로 그 개고생을 했구나 싶어 웃고 말았다.
계획에도 없던 나무를 향에 이끌려 사와서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심었듯, 둘도 뜻도 계획도 없이 어쩌다가 끌려 만나 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살고 있겠지.
결혼 전에는 결혼의 조건도 참 많았었던 것 같은데 막상 누군가를 만나 결혼이라는 것을 하려고 맘 먹으니 조건이랄 것도 없었다. 혹 외모에 끌렸었던들, 잘 생겨봐야, 이뻐봐야 뭐 그리 대단했겠나!그저 일반인들이었는데. 나는 외모는 장동건은 못돼도 그 사돈의 팔촌쯤은 돼야 하다는, 그는 35세 전에는 결단코 결혼을 안 한다는, 할 수 없다는 조건 아닌 조건을 무시할 만큼의 끌리는 그 무엇이 있지 않았을까? 스물 다섯 남자와 스물 여섯 여자의 만남이 닥나무와 레몬오렌지나무와의 만남은 아닐지라도 우연한 만남이라는 것 외에 또 무엇이 있었겠는가?
우연한 만남이 필연적인 인연이 되기까지 몇 년이나 걸렸을까? 언제부터 우리의 만남을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생각했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둘의 만남을 그저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세월이 쌓이고 말았다.
나무들이 자리를 잡으려면 좀 힘들겠지?
나는 열매 수확도 기대한다마는 그러려면 오래 걸리겠지. 크는 아이들이나 지켜보는 나도 인내라는 것이 필요하겠지!
모르지!
어쩌면 쏜살처럼 흐르는 시간 때문에 어느날 문득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올리브나 레몬오렌지에 놀라 다시 기념 식수를 할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