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문을 열고 나가기 무섭게 내 뒤통수에 대고
"아~ 기 빨려어어!"
낮은 목소리에 착 가라앉은 톤으로 탄식하듯이 읊조렸다.
종종 듣는 소리니 뭐, 그러려니 무심히 그 반의 복도를 지나왔다. 그런데 자꾸 그 낮게 읊조리던 목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돌았다.
화살이 기운차게 날아가 팍 박히는, 혹은 폭죽이 공중에서 퍽퍽 터지듯이 요란한 소리도 아니었건만 하루 종일 오뉴월 엿가락처럼 내 귓바퀴에 눌어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간간이 귀에서 그 아이의 말이 재생되었고 기가 빨렸다. 점심때쯤 되니 머리가 아프다는 말밖에는 딱히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하루 살 에너지가 바닥이 났는지 순간순간이 힘이 들었다. 왜 그 말 한마디가 기를 빨아먹을까를 생각해 보니 위악도 아니고, 습관적으로 나온 말도 아니고, 그저 허투루 한 말이 아닌 그 아이의 심중에 있던 말이 자기도 모르게 탄식조로 흘러나와서 그런 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평소 나의 강한 말투가 뜻하지 않게 그 흐느적거리는 말에 감겨들어 힘이 들지 않았나 싶었다.
그렇게 말에 감겨 힘들 때 회의에 참석했다. 나는 벼릴 대로 벼린 칼처럼 말을 했지 싶다. 누구를 위해서 혹은 누구 좋자고 말 끝을 그리도 날카롭게 벼렸었는지는 모르겠다. 단번에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드물다고 본다. 아마 몇 년을 벼르고 별렀지 않을까?
남고를 다닌 아들이 하루는 밥을 못 먹었다. 누군가 화장실에 설사를 하고 그 흔적을 군데군데 남겼고 같이 화장실 청소를 했던 친구는 일찌감치 줄행랑을 놓고 아들 혼자서 그걸 다 치웠다고 했다. 비위가 약했던 아들은 며칠을 고생을 했었다. 아마도 고분고분 학교에서 말 잘 듣고 청소도 잘했었던지 그 이후로도 계속 화장실 청소를 했고 학년 말에 선행상인가를 한 장 받아왔던 걸로 기억한다. 좀 분노 아닌 분노를 했었다. 집에서 제방 청소도 제대로 한 번 안 하는 아이이고 궂은일 한 번 안 시킨 자식에게 더러운 화장실 청소를 일 년 내내 시킨다는 것이 말이 된단 말인가라며 혼자 개나리, 십장생을 읊조리기도 했으나 나 또한 이러저러 궂은일을 학생들 도움을 받는 처지라서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그 일 이후로 가급적이면 학생들 손을 빌리지 않으려 노력해서 내 공간에서 나오는 쓰레기며 잡스러운 것들은 스스로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교무실에서 나오는 쓰레기들도 근래에 들어 내 손으로 뜯고 묶고 치우는 일들을 손수 하기 시작했다.
오늘 그 청소 때문에 빨린 기를 또 빨렸다.
쓰레기 만든 사람이 치워야 한다고 대들었다. 안 될 줄 알고 밀어붙였다. 선생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그들이 해야 한다고 했고 분리수거를 비롯하여 쓰레기를 분리수거장까지 들고 가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몰아붙이기까지 내가 그렇게 몰아붙일 자격이 있는지 수십 번 나를 검열하고 점검해 봤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편할 대로 쓰고 버리고 마찬가지였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가장 분리수거가 안 되는 공간이 교무실인데 그 일을 학생들한테 맡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학생들 교실은 청결 문제로 쓰레기통을 없애고 복도에 비치된 지정된 곳에만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데 어른인 교사들의 공간에는 버젓이 양쪽에 쓰레기통을 비치해 두고 쓴다는 것도 약간의 모순이 있는 듯도 했다.
어쨌든 완벽하게 패배했다. 결국 우리 학년에서 교무실 분리수거를 하기로 했다.
고교학점제를 앞두고 학교 공간이 다시 조성되면서 청소구역도 늘어났다. 난감하다. 복합 공간과 휴게 공간들이 많이 생긴 것은 긍정적이지만 그 공간을 관리하기가 만만찮다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공간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가구들도 배치됐다. 교사 한 층을 터서 복합공간을 조성한 공간도 있다. 수십 억 공사를 대한민국 교육현장에서 했다고 한다. 우리도 물론 그중 한 곳이다. 모처럼 우리도 좋은 공간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듯하다. 이제 관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물론 모두 학생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니 학생들이 청소하는 것이 표면적으로는 정상적인 논리이다. 그러나 그 넓은 공간에 다양한 형태의 가구와 기물들이 있는 공간의 청소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청소를 해 본 사람은 안다. 교실을 청소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저 재래적인 빗자루와 밀대걸레로 청소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또 그렇게 청소해서 유지될 수 있는 공간도 아니다. 요즘은 학생 수가 감소해서 애초에 특별구역에 배치할 학생 수도 적지만 청소를 할 줄 아는 학생도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요즘 가정에서 웬만하면 진공청소기와 로봇 청소기가 청소를 다 한다. 가정에서 빗자루와 밀대로 청소를 해 본 학생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가정주부인 나도 빗자루가 없이 살고 손걸레질 안 한지 오래다. 고작 손걸레질을 한다는 게 문틀과 싱크대, 식탁 정도다. 애초 학생들이 청소하기에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회의 전에 꼼꼼하게 글로 적어 관리자들에게 보냈다.
결과?
헛고생했다.
대들어 보였나?
암튼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혹은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나!
학생들을 교육적 차원에서라도 자기가 쓰는 공간만큼은 청소를 하는 것이 혹은 청소를 시키는 것이 교육적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맞는 말인데 왜 이렇게 나는 불편할까? 왜 이렇게 그 말에 기가 빨릴까? 요즘 아이들은 지금 5, 60대들이 했던 청소는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한다. 오늘도 아이들이 다 빠져나간 교실을 정리하면서 신나게 자리 정돈하고 청소를 다 했다고 만세 부르고 나간 아이들 자리 구석구석에는 지우개똥 먼지들이 뭉쳐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자리 틀고 앉아 있었다. 언제 치웠냐는 듯이, 자리 비우고 나간 아이들 다음으로 교실은 자기들 차지라는 듯이 으스대고 앉아 있었다.
그렇다. 아이들은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기껏 해봐야 굵다란 휴지 조각 정도만 빗자루 곧추 세워 쓰레받기에 목마 태우듯 건들 올려 손에 오물이라도 묻을 세라 휙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면 청소를 말끔하게 한 것이다.
걸레질? 한숨부터 난다. 그 '기 빨려'라는 말을 들을 때처럼 온몸에서 기가 한꺼번에 몽땅 빠져나간다. 빨지도 않은 밀대를 그냥 한 손으로 밀고 몇 번 왔다 갔다 하고 밀대 스친 자리 몇 놈이 발자국 찍고 가면 더 더러워진다. 궂은날은 더 가관이다. 냄새가 시궁창 썩는 냄새다. 그래서 속 터진 담임들은 아예 팔 걷어붙이고 청소를 한다. 그중 한 명도 나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교실 주변을 청소를 해야 그나마 돼지우리는 면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교실 청소는 기계화되지 않나? 기계가 일을 한다는데 아직도 플라스틱 빗자루에 밀대걸레가 청소용구 전부다.
내가 잠시 잊었었다.
우리 아들은 왜 일 년 내내 청소를 해야만 했었는지. 아마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어리숙한 놈이었거나 인정욕구가 강한 놈이었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맡겨진 일은 어쨌거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놈이었거나, 좀 솔직해지면 공부는 썩 잘하는 놈이 아니었겠지. 언젠가 아들이 어른이 다 된 나이라고 생각될 즈음에 물었었다. 왜 너는 화장실 청소를 일 년 내내 했냐고? 대답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귀찮아서 그랬단다. 바꿔달라고 말하기도 귀찮고, 청소라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고, 귀찮고 성가 싫은 것인데 다 똑같은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나만 아들이 졸업한 지 10년 가까이 속 끓이고 있었나 싶어서 좀 헛음이 나왔었다. 생각이라는 것이 한 나무에 달린 나뭇잎처럼 다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제각각이듯 사람 속도 얼추 다 같아 보이지만 제각각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때 끓인 속 때문에 함부로 학생에게 이러저러한 심부름이란 것 시키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된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런데
나는 왜 내신 1등급을 받는 학생이 교무실 청소를 했거나 분리수거를 했거나 했던 기억이 없을까? 나만 그런가?
뭐가 문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