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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구경

벚꽃 골다공증

by 이미숙

허공을 부여잡고 부르르 떨기만 하던 벚꽃이 드디어 만개했다. 1주일이나 늦게 핀 덕에 꽃보다 더 많던 상춘객 없이 오롯이 꽃그늘 아래서 오래도록 걸었다.

고개를 뒤로 15도 정도 젖혀 꽃들이 벌여놓은 숨구멍으로 하늘도 발에 차이는 사람 없이 욕심껏 마음에 들였다.

무수한 꽃송이들이 벌여놓은 촘촘한 그 간격!

그 사이로 가느다란 빛줄기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그 찰나의 번뜩임!

꽃그늘만 벗어나면 덩이진 채 덩그럭 해가 섬세한 광선을 뭉쳐 둥글리는 회오리가, 한 발짝 꽃그늘로 들이면 섬세한 비단결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의 울렁임이 교차하는 벚꽃구경이 새삼스러웠다. 발을 이리저리 옮겨 그 울렁임을 보노라니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빛의 조화를 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벚꽃 사이사이 존재하는 빛이 마치 꽃송이송이들이 뿜어내는 아우라 같았다.

의자에 앉아 몸을 45도 정도 젖혀 팔을 나무처럼 벌리고 보노라면 내 팔도 어느덧 나무 가지가 되어 허공에 끌려가 나무처럼 허공을 움켜쥐고 한 그루 벚나무가 된 듯했다. 가슴에서는 수없이 많은 벚꽃들이 뽁뽁 터지고 입은 귀로 끌려가 작은 돛단배가 되어 음도, 가사도 없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그 허밍은 작은 돛단배를 몰아 하늘 깊숙이 몰아갔다.

이게 다 상춘객이 없어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벚나무와 꽃과 허공과 내가 하나가 되니 비로소 구멍 숭숭 난 벚꽃 하늘길이 보였다. 구멍 숭숭한 뽀얀 빛이 만들어주는 하늘 길! 벚꽃으로 보면 벚꽃의 골다공증으로, 타래진 해에게는 구멍 숭숭한 숨구멍이 서로가 서로를 부여잡은 손아귀 힘을 빼고 어깨 힘을 빼고 만나는 그 지점들에 가 닿으니 내 몸에서도 숭숭 구멍이 생겨 비로소 좀 한가해졌다.

올봄에는 골다공증을 앓아도 좋을 것 같다.

하염없이 앉아 있다 보니 마음에도 골다공증이 생기는지 허전해졌다. 어릴 적 추억이며, 어제며 오늘이 구멍으로 훌훌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더 앉아 있다가는 남은 세월마저 구멍으로 훌훌 빠져나가 연기처럼 흩어질까 겁이 나 푸드덕 수탉 날개치고 일어나 듯 털고 일어나 벚꽃 그늘 아래서 땅거미가 지도록 어슬렁거렸다.

걸음에 한 됫박씩 생각이 빠져나갔는지 노곤해졌고 몸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들기 시작했다. 몸이 쭈그러들면 꽃구경은 끝난다.

항우 장사도 내려 꽂히는 눈꺼풀에는 못 당한다. 꽃놀이도 기운 성성할 때 얘기다. 이런저런 잡생각으로 시끄러운 마음보다는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다리가 먼저다. 이쯤 되면 꽃 다음 잎을 준비하는 벚나무의 아우성쯤은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린다.


올 벚꽃 잔치는 끝났다.


오늘은 저 벚꽃의 수선거림과 꽃 털고 다시 잎을 내밀 벚나무의 고요 속 아우성을 몸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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