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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뜰한 호랭이

변화

by 이미숙

그렇듯이 시골집에 들어서자마자 하는 일은 들고양이들 밥 주는 일이다. 내 심정으로는 드글드글한 녀석들에게 사료를 한 대접씩 퍼주고 나면 다음으로 방문 고리에 채웠던 열쇠를 풀고 줄 서 기다리는 일들을 처리한다.

작년 모내기한 논에서 푸덕거리는 녀석을 꺼내서 뻘을 씻기고 물기를 수건으로 꼼꼼히 닦아서 살려준 고양이를 우리는 호랭이라고 불렀다. 남편은 제 손으로 살려낸 고양이가 대견한지 살뜰하게 챙겼다.

그런데 녀석은 도무지 곁을 주지 않았다. 동네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지 고양이들이 십여 마리가 들락거렸고 츄르며 사료며 통조림 등을 퍼 먹여도 호랭이는 눈치만 볼 뿐 도시 곁을 내주지 않았다. 식탐은 식탐 대로 많아 밥그릇 탐내고 으르렁거리고 집안으로 들어와 껄떡거리더니 급기야는 남편의 눈밖에 나서 남편은 곱지 않게 호랭이를 대했다.

생긴 것은 누릇누릇한 것이 제일 근사하게 생겨서는 하는 짓이라는 것이 꼴사나운 짓만 골라했다. 이놈 저놈 밥그릇을 싹싹 긁어먹으니 배가 동산만 해져도 호랭이 식탐은 가시질 않았다. 어미들은 돌려가며 새끼를 낳았고 남편은 그때마다 통조림으로 해산 몸보신을 시켜주고는 했는데 이놈 저놈 것을 다 먹어치우다 보니 남편이 급기야는 돌도 던져 호랭이를 쫓아내기도 했다.

그러지 말라고 그래도 남편은 호랭이에게 유독 야박하게 굴었다. 은혜도 모르고 저질이를 한다면서.

호랭이는 암튼 남편만 보면 흘깃흘깃 눈치를 보면서도 끈질기게 식탐을 부렸다. 닭을 삶아서 줄 때도 호랭이는 열외였다. 동산만 한 배를 보면서는 마구 흝어먹으니 배를 주체하지 못하도록 비만이라며 혀를 찼다. 내가 아기를 가진 것 같다고 해도 남편은 호랭이는 수놈이라며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아뿔싸!

그 호랭이가 새끼 두 마리를 곁에 달고 다닌다. 계속 우리 집에 드나들었는데 언제 아기를 낳아서 키웠을까? 그동안 집수리로 자주 못 갔는데 그새 몸을 푼 모양이다. 나도 남편도 말을 잊지 못했다. 나보다도 남편은 죄지은 사람으로 몸 둘 바를 몰랐다. 연이어 깡통을 따서 배를 불려주고 돼지고기를 구워주어도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다행히 아기들은 츄르를 잘 받아먹고 마당 여기저기를 누볐다. 그 사납고 차가운 호랭이가 새끼를 살뜰하게 거둔다. 제 밥그릇에 두 발을 담그고 밥을 먹는 새끼를 위해 슬며시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더 이상 호랭이를 밥순이라 타박하지 않는다. 기특해서 미안해서 자꾸 뭘 던져주게 된다. 살뜰하게 챙기는 주인장들의 에너지와 감정이 고양이게도 가닿았을까?

호랭이는 이제 뭘 먹다가 화들짝 도망가지 않는다. 여전히 눈치는 보지만 그래도 이제 마당 한가운데 나와서 느긋하게 배를 깔고 누워있을 줄도 안다. 다행이다. 그리도 냉냉하던 호랭이가 새끼를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이 마냥 감동스럽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새끼를 키우며 본연의 그 무엇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살뜰해지는 순간이 바로 어미인 듯도 하다. 아무리 제 꼬리를 물고 차고 해도 호랑이는 으르렁거리질 않는다.

내가 두 아이를 키우며 사람이 되어 가듯, 호랭이도 두 아이를 키우며 고양이가 되어 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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