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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뭐였더라?

내 답

by 이미숙

구체적인 질문이 생각나질 않는다.

어떨 때 보면 나란 존재는 주변을 깡그리 잊은 사람처럼 산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회의적 인간이거나 주변인들과 어울리길 극도로 꺼려하는 그런 부류라서가 아니다.

벌려놓은 판에서 선생들이 하는 말들이 뻔해서 어느 날부터는 가급적 끼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내가 잘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말이 너무 많은 부류들이고 보면 대부분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는 말들이 많고 제 잘난 멋을 부리느라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걸 점잔 빼며 듣기가 심히 곤란할 때가 많아 아예 심각한 말이나 무게가 있는 말들은 피하고 본다. 말을 꼭 해야 할 때는 가급적 알맹이만 하려고 애쓰는 버릇이 생겼다.

어쭙잖은 말을 들어주기가 곤욕스러울 때가 많으니 가급적 말도 안 섞으려 노력 중이다.

오늘 연수 중 받은 질문은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의 답변은 간단했다.

"재채기 한 번으로도 나의 존엄이 무너지는 것 같아 지극히 조심스럽다. 요즘 가장 난감한 일들이 생리적인 현상들을 옛날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것 같다. 곱게 자지 못한다거나 곱게 먹지 못한다거나처럼 삶에서 꼼꼼하게 챙겼던 습관들이 고무줄 늘어지듯 조금씩 늘어진다.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이제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이제 이에 뭐가 자꾸 끼고 그래서 공개적으로 밥 먹는 것도 불편하다. 민폐스러운 행동을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해야 하고 무의식적으로도 하니 참 난감하다. 내 주변인들이 어느 선까지 나의 거추장스럽거나 불미스럽거나 추잡스러운 행동거지를 봐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다들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고들 했다.

동굴 속 벽화를 그린 존재, 10년 동안 짝사랑했던 사람의 진짜 속마음, 철학적이고 학구적인 궁금증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었고 어린 사람도 있었다. 나를 뜨악한 눈으로 봤다. 젊어서는 그런 생리적인 현상들을 다 챙기고 조심하고 그러고 살았냐고 반문을 했다.

그랬지 않았을까?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볼일을 보거나, 속옷 바람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거나, 주변에서 화들짝 놀라도록 경천동지 할 만큼 큰소리로 재채기를 하거나, 밥을 먹고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거나 하지는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런 어른들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공공장소에서 보란 듯이 분첩을 꺼내 들고 바르거나 립스틱을 부비부비 바르거나 하는 일들도 나이를 먹으며 하는 행동들이다. 나이를 먹으면 부끄러움을 잊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눈도 흘깃거리지 않았을까?

한 번도 길거리에 침을 뱉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길섶에 침을 뱉고는 순간 망연자실했었다. 주변이 깜짝 놀랄 만큼 크게 재채기를 하고는 수치스럽기도 했다. 껌을 씹어 길섶에 퉤 뱉고도 놀랐다.

나이 듦의 물리적 한계는 극복할 수 없을지 모르겠으나 오래된 습관이 혹은 새로 형성된 습관이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면 안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운전을 한 시간 넘게 하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복잡해진 마음을 정리해 봤다.

나이가 들면서 비로소 가능해진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이제 인생을 송두리째 걸만큼 중요한 과업이나 과제도 없는 것 같고, 웬만한 일은 쌓인 경험이 있으니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 같고, 어떤 일에 자랑하듯 도전적인 평정을 논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주변에 대한 평가도 너그러워진 것 같다.


그런데 여전히 인생이 뭔지는 미궁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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