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자기 딸을 공주처럼, 정말 공주처럼 키웠노라 자부한단다. 곱게곱게 키운 딸 반려자를 구해주고 싶다고 했다. 아마 은연 중에 네게 아들이 있냐고 물었었나 보다. 별 뜻없이 있고 그가 묻는 말에 가볍게 답했던 것 같은데 덕컥 덜미가 잡힌 모양이었다. 딸을 소개 시켜주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고맙고 고마운 일임에는 분명하나 나는 그럴 의사가 전혀 없었다. 아이들 연애사에 개입하거나 반려자를 만나는 일에 개입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고등학교 다니던 딸이 '연애의 꽃은 섹스'라고 엄마를 골려먹기 위해 한 소리에 걸려넘어져 고등학교 때 이성 친구를 만난다는 말을 듣고 산청과 울산을 부지런히 오가면서 아이를 감시 아닌 감시를 하다가 딸과 평생 의절하고 살 뻔했었다. 내 뱃속으로 난 자식이 날 닮지 누굴 닮겠는가? 말만 센 딸아이는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하고 20대를 보내는 모양이다. 딸과 치열하게 말싸움을 벌이면서 내가 몰랐던 젊은이들의 성에 대한 인식도 배운 듯하다. 그래도 난 성에 관해서는 보수 꼴통이다.
그런 내가 딱 좋아할 말이지 않은가! 공주처럼 키웠다는 말. 정말 곱고 이쁘다는 말.
그런데 난 마음 속으로 단칼에 잘랐다. 공주가 아니잖는가? 공주도 아닌 사람이 공주처럼 커서 어에 써먹을 것인가? '공주처럼'에서 내가 읽어낸 마음들은 이렇다. 누군가에게 예속된 삶, 자율적이지 못한 삶, 자기를 단련할 수 없는 삶, 무엇보다도 타인을 돌볼 수 없는 삶인 동시에 자신의 삶의 주권자로서 투쟁할 수 없는 삶. 무늬만 공주인 삶이 '공주가 아닌 공주처럼'이라는 말에 녹아있다는 것이다.
난 투사처럼 사는 삶이 좋다. 거칠지만 자유롭다. 나도 한때는 '~처럼'을 꿈 꾼 적도 있었다. 사노라니 삶은 투쟁이었다. '~처럼' 산다고 생각하는 순간조차 난 이미 투사였다.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투쟁이었고, 내가 내 삶의 주인임을 선포하는 투쟁이었다. 그런 내게 공주처럼 키운 딸을 내 자식에게 소개해 달라는 부탁은 참 곤란한 부탁이었다.
아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공주 같은 짝지는 어떠냐고 물었다. 자기는 공주라면 모를까 공주 같은 사람은 사절이란다. 나처럼야 조목조목 안 되는 이유를 댈 수가 없겠지만 아이들은 이미 그 말의 어감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아는 것 같다. 참 영악한 젊은 세대들이다.
난 아이들 연애사에 가입할 의사가 없다. 어쩌면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