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나는 뻔뻔스러운 사람은 못 되는 것 같다.
1년 동안 부장이라는 일을 했다. 내게 득이 되는 일었나를 생각해 봤다. 얼마간의 부장 수당이 있었고 내년도 성과급에 일정 부분 반영이 될 것이고 직장에서 약간의 입지적 격상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됐지 않는가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 봤다.
난 일 년을 지옥처럼 보냈다. 고작 6명이 모여 일하는 공간인데도 신비주의라며 말 섞는 일은 고사하고 얼굴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섞지 같이 사는 공간을 쓸고 닦는 일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다들 본인이 맡은 일은 입 뗄 일 없이 훌륭하게 잘 해냈다. 하루 8시간 이상을 같이 사는 공간은 늘 더럽고 지저분했다. 처음에는 빗자루질도 하고 걸레질도 했지만 어느 순간 '이게 뭐 하지는 것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사는 것은 공적으로 맡겨진 일만 해 가지고는 안 되는 일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사비를 내서 생수를 매달 채우고 커피를 매달 채우고. 그것이야 돈이 하는 일이니 어렵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결국 난 부장이라는 것을 포기했다.
몇 달을 고민했다.
이러구러 한 이유야 많지만 이유는 단 한 가지로 압축됐다. 난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면서 살만큼의 뻔뻔함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성질이 괄괄하고 뭐든 내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류의 인간이다. 그런데 시대가 전광석화처럼 변하다 보니 일하는 방법이 많이 달라졌고 그 달라지는 방법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러니 옛날에 내가 번개처럼 처리하던 일들을 해 낼 수가 없다. 그러니 기획이나 다른 부서원들의 손이 저절로 바빠진다. 또 내가 가까스로 해서 기획에게 주면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고급진 양식으로 그들만의 방식으로 수정을 했다. 몇 시간 혹은 며칠을 애쓴 보람이 무화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애써 바쁜 시간 쪼개서 일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다 넘길 수도 없는 일이다. 혹자는 부장이 왜 일을 하냐고 그랬다. 부서원들 시키면 된단다. 좀 화가 나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로 들렸다. 일을 알아야 일도 시키는 법이다.
그러니 몸이 탈이 났다. 안 그래도 예민한 몸이 두어 달 전부터 알레르기가 일어나 괴롭혔다. 자존감이 떨어져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몸이 가려우니 마음 힘든 것은 온 데 간데없고 몸만 덩그러니 세상에 남았다. 몸 없는 마음 없음을 뼈저리게 실감 중이다.
부장이라는 것을 안 해야겠다고, 못 하겠다고 했더니 부장이 굳이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했다. 부서원들 잘 시키면 된다고. 그 말이 더 부담스러웠다. 일을 할 수 없으면서 혹은 할 줄 알지만 그 일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데 애를 먹으면서 다른 사람들 손에 얹혀 궁여지책으로 자리를 차고 있을 만큼 뻔뻔스럽지 못하다고 했다.
핑계는 몸이었으나 속내는 자꾸 떨어지는 자존감이 문제였고 뻔뻔스럽지 못함이 문제였다.
나라 안팎으로 참 시끄럽다. 뻔뻔스러움이 도를 넘기니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그 뻔뻔스러움을 이런저런 핑계로 덮으려니 더 시끄러운 듯도 하다.
다시 나다움으로 돌아사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