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자기 얼굴이다.
자기 얼굴 보면서 통화하나 보지!
진 빠지는 대화 끝에 박장 대소했다.
학부모가 며칠에 걸쳐 혼을 빼놓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이는 내 딸보다 어리지만 정말 강단 있는 선생님이고 아이들도 나름 잘 돌보는 선생님 중 한 분이다.
곁에서 지켜보는 일조차 시쳇말로 영혼이 털리는 것 같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누군가와 진득한 대화가 어려워졌다. 대개가 거기서 거기인 사정에 말 잔치가 열리기 십상인 모임이나 통화가 얼마나 사람의 진을 뽑아내는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가급적 아이들에게도 말을 토막 쳐서 하다 보니 어느 때는 맥락 없는 말에 상대가 뜨악한 반응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언젠가부터 설명이나 묘사가 빠진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부작용이라면 남의 말도 설명이나 묘사를 쳐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그냥 결론만 말해."를 많이 쓰는 것 같다.
핑계 같지만 이러구러 한 사정을 귀담아 들어줄 에너지가 없다. 이런저런 사정을 듣다 보면 짜증이 몰려온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지 모르지만 이야기가 돌고 돌다 보면 사람도 달리 보인다.
주말엔 내가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입을 닫고 산다. 남편도 나와 비슷한지 말이 없다. 전화기마저 조용하다. 그렇다. 나이를 먹으면 인내심도 좀 생길 줄 알았는데 더 짧아지는 느낌이다. 내가 점쟁이는 아닌데 그냥 상대가 쓰는 어휘와 표정이 말보다 먼저 읽힌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가려가며 말을 하게 된다. 나의 큰 단점이지 싶은데 어쩔 수 없다.
가장 힘든 대화 상대는 아주 날카로운데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해서 사람을 발아래 두고 대화를 하는 사람인데 거기다 힘까지 겸비하고 있는 상대라면 그 사람이 장착한 무기에 베이거나 찔리지 않기 위해서 말을 좋게 해야 한다든지, 너스레를 떨어야 한다든지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늘어놔야 한다든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대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나도 위선으로 전신갑주를 입고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대가 눈앞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급 피곤해지는 스타일이다.
두 번째로 힘든 대상은 과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과거 트라우마가 모든 대화의 결론인 사람. 진절머리가 난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체하는 사람들이고 불행을 선택한 사람들이고, 가장 약한 체하는 사람들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방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콤플렉스나 자기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이길 방법이 없다. 기껏 대화를 해 놓고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결론은 그 트라우마나 열등감이 그들의 강력한 무기였다. 기승전결이 모두 트라우마나 열등감이나 우울증이다. 좀 야박한 생각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그들의 열등감이나 트라우마나 우울증에 사로잡혀 있는 한 그 누구도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소위 약자들인 샘이다. 그들이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한 부모고 선생이고 주변 친구들이고 모구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그들의 기분을 맞춰줘야 하고 상처받거나 상처가 도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세상에 가장 약한 존재인 아기를 이길 사람이 없듯이 그들을 이길 사람도 없다. 가장 강력한 무기와 방패를 장착한 샘이다. 그 무기와 방패를 버리지 않는 한 그들과의 대화는 도루묵이 되기 십상이다. 아니,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열등감이나 트라우마나 우울감을 변명거리로 삼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아졌다. 뭐만 하면 저 세 단어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대화를 가로막는다.
내가 좀 전투적으로 살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난 저런 것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1인 중 하나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 인과관계가 없는 것들인 것 같은데 마치 저것들이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물귀신이라는 듯 엄청난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주변에 설명하고 하는 것들이 부담스럽다. 아니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 중 1인이다.
생각해 보면 학부모님들 중 저런 것들과 무관한 일들인데 저런 증세들과 엮어 자식의 무례와 제멋대로 하는 행동들을 무마하려든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공통점은 말이 참 많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필요하면 전화를 하든 찾아오든 해서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말을 끊임없이 했다는 것이다. 화를 냈다가 어르다가 달래다가 하소연을 했다가 분노했다가~. 종잡기 어려운 감정을 말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마구 퍼붇고는 했었던 같다.
어쩐 일인지 나이를 먹고 나니 그런 학부모를 만나기 어려워졌다. 아니면 늙어서 사람이 붙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근래에는 그런 학부모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그런 부모를 봤다.
저녁밥 먹을 시간에 전화가 왔는데 나는 밥을 다 먹고 양치까지 했는데 전화통을 붙잡고 씨름을 하는 동료가 있었다. 나중에는 그저 "네, 네."만 하고 있었다. 새파랗게 젊은 선생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그런지 옆에서 본의 아니게 듣게 되는 답변들로 상대의 대화 내용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내가 본 사람 중 몇 안 되는 꼼꼼하고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선생님이니 아이들의 생활도 꼼꼼하게 기록하고 살피는 선생님이다.
아마 그 학부모는 주먹구구 자신이 참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모양인데 데이터를 자탕으로 말을 하는 사람과 어깃장이 나는 모양이었고 그 어깃장에서 오는 무안이나 여타의 감정을 호통이나 화로 푸는 느낌도 받았다. 통화를 차분하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전화를 끝과는 손이 벌벌 떨린다고 했다. 밥이고 나발이고 물 건너가고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 언니한테 톡을 한 모양이다.
힘든 통화로 얼굴이 허옇게 질렸던 사람이 갑자기 헤죽거리며 웃었다. 다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언니가 그러는데요. 그 학부모님이 거울 앞에서 자기 얼굴 보면서 통화한 것 같다고 하네요."
순간 그 통쾌하고 유쾌한 유머에 허를 찔렸다.
명쾌하다.
이런 게 젊은 사람 감각이구나 싶었다.
그런 것이다.
말이 그 사람은 아닌 것이다. 행동이 그 사람을 증명하는 것이다.
말에 멀미가 나던 한 주를 여름날 소낙기처럼 한 방에 날린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