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인터뷰 _ 돼지국밥 25+ (with. 골리)
*60명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그 인터뷰가 끝나는 날, 마지막으로 15년을 달리 살아온 내 아버지를 찾아 인터뷰하려 합니다.
*인터뷰 질문은 각자의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청년들의 질문을 모아 재구성되었습니다.
[#25번째 대화]
I:안녕하세요. 모든 인터뷰는 익명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우선 청년 시절의 별명이 어떻게 되시나요?
H:청년시절의 별명은 골리였어요. 왜냐면 골리앗이라고 성경에 골리앗도 있는데. 울산 가면 조선소에 골리앗이라고 크게 서있는 기계가 있어요.
그걸 골리앗이라고 하는데 그때 한참 운동권 가요 중에 '골리앗의 그림자'라는 노래가 있었어요. 제가 노래패를 했는데 그때 덩치가 크니까 자연스럽게 별명이 골리앗 골리가 됐어요.
I:자제분은 어떻게 되시나요?
H:지금 초등학교 2학년, 10살 여자아이입니다.
I:지금 당신의 직업은- 당신의 부모님께서 바라던 직업이었나요?
H:그러진 않았던 것 같아요. 않았던 것 같다고 대답을 하는 건 아버지랑 내 직업에 대해서 얘기해본 적이 없거든요. 아-! 아버지는 공동어시장 현장 근로자이셨는데, 한 번씩 저한테 씨름 선수가 되라고는 얘기하셨어요.
I:씨름 선수요?
H:그건 기억이 나요. 왜냐면 제가 중고등학교를 80년도에 보냈는데 그땐 이만기가 한창 스포츠계에서 일약 스타로 부각되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보기에는 제가 덩치도 있고, 어릴 때 운동부도 했었거든요. 배구나 운동을 했었어서 씨름도 하면 잘되지 않겠냐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씨름 해보라고 하셨던 이야기는 기억이 나고, 나머지 직업에 대해선 그런 얘기를 하진 않으셨어요. 씨름은 지금으로 치면 피겨 같은? (웃음)
자질 보단 골격이 있으니까 씨름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셨던 것 같고.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 학교에 씨름부가 있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걸 몰랐어요. 알았다면 찾아오셨겠죠.
I:그 과정에서 힘든 건 없으셨나요? 아버지가 바라는 것과 내가 바라는 삶 중에서 -
H:그러진 않았어요. 아버지가 온화한 스타일은 아니셨는데, 제가 막내여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발언권이 약해지던 시점이셨어요. 그 시점에서 본인이 직접적으로 막내의 삶에 개입하진 않으셨어요. 형들이나 누나가 코치하지 나는 빠진다 이런 거였죠.
I:아버지인 당신의 행복을 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H:지금요? 지금 아버지로서?
I:네. 지금 '아버지로서의 행복'을 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H:가장 큰 건 일에 대한 부담이죠. 늘 생각이 좋은 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고, 특히 내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굉장히 따뜻하고, 굉장히 아이와 친숙도가 높고,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원하는 하나의 상이 있으면서도 또 아버지로서 일을 해야 되고, 사회적으로 성공도 해야 하고, 좋은 직장과 돈벌이도 좋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서 사실 좋은 아버지는 늘 뒷전이 돼요.
벌이가 좋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적어지고, 피곤하니까 가족을 대하는 것도 투박해지기도 하고 그런 거 같아요. 무엇이 중요한 지를 모르진 않은데 당장에 이걸 우선할 수 없는.
그러다 시간이 있으면 '나도 쉬고 싶다' '나도 인간이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회피하거나 그렇게 되는 것 같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머리 속으로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죠. 올해 신년 계획 중에 '야근을 안하겠다'는게 있어요. 제가 프리랜서잖아요. 제 개인이 회사이기 때문에 모든 걸 본인이 결정하는 구조거든요. 내가 회사지만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을 지키고, 잔업과 야근에 대한 개념을 갖자- 올해부터는. 그러지 않으면 집안에 너무 소홀해지겠다는 위기감이 들어서요.
지난 해는 일도 굉장히 많이 했고 수익도 많았지만 그만큼 가족들의 희생이 많았어요. 이제 올해는 균형을 잡고 어떤 식으로든 최대한 시간을 보내보려고 하죠. 아직은 뭐 여유가 있는 시절이라 괜찮은데 2월 중순부터는 다시 바빠지거든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은 그렇게 먹고 있어요.
I:그런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인가요?
H:두 가지 차원이 있는 것 같아요. 내 개인적인 상황이 있고 또 하나는 가족적인 상황이 있는 거 같은데. 행복이라고 하는 것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재감이 드러나고 그게 성과로 창출되고 그 일이 돈벌이만이 아니고 사회적으로 기여해서 세상의 변화를 돕게 하는 측면이 있다면 그게 행복인 것 같고.
또 다른 하나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그 안에서의 존재감을 가지는 거.
아이로부터 좋은 아빠라는 마음을 느낄 수 있게끔 내가 직접 해주는가-
아내로부터 좋은 남편이고 좋은 가장이다라는 느낌을 내가 주느냐 하면 -
후자는 아이와 아내로부터 굉장히 점수가 낮아요.
그게 굉장히 불안한 거고.
또 아이가 아직 10살밖에 안됐지만 조금씩 조금씩 아빠의 상황을 이해하고 앞서서 배려하기 시작하는 거. 그게 걱정이죠. 이렇게 행복은 개인 차원과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차원 두 가지가 있을 텐데 이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참 힘든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둘 중에 하나를 가지려면 결국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해왔는데, 지금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요.
I:어쩌면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행복인 것 같네요.
H:네. 그래서 오히려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걸 포기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I:이 질문도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현실적으로 당신이 얼마를 벌면 만족할 것 같나요.
H:굉장히 중요한 질문인데... 음 저는 1년에 2억을 벌었으면 좋겠어요.
I:소망은 저도 그런데. 가능한가요? (민망한 웃음)
H:쉽지 않죠. 쉽지 않고.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 난 거짓말 같아요.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돈은 더 있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더 이상적인 것일지 모르지만 현명하게 행복을 추구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거죠. 유쾌하고. 즐겁게.
주변 사람들한테 수탈적으로 약탈해서 돈을 버는 게 아닌, 이 사람도 행복하게 하고 나도 행복하게 하는 선에서 그런 선에서 서로가 돈을 더 잘 벌게 하는 그런 사람들도 많아요. 나는 그걸 말하는 거죠. 그런 선에서 2억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거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런 차원에서 내 회사가 2억 정도의 사업구조를 가지면 좋겠어요.
I:지금까지의 당신 삶에서 아버지로서의 위기는 언제였나요?
H: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 사실은 최근이죠. 지난 해가.
I:일을 많이 해서 그런 건가요?
H:네. 개인적인 성장이나 내 회사의 위상이 높아지는 건 좋았는데, 반대급부적으로 가족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라고 하는 것과 가장이라고 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아버지는 아이와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아버지라 불리는 거고, 가장이라는 것은 가족의 경제적인 부분까지 포함해서 불리는 거니까. 조금 더 넓게 보면 지난해가 개인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아내와의 관계, 아이와 관계적으로는 소홀해져서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했었어요.
'아버지'라고 하는 것과 '가장'이라고 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그래서 이제 올해는 야근과 잔업을 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마음을 먹으려 했던 이유가 이게 더 이상 이러면 한 방에 훅 갈 수 있겠구나- 이런 위기감이 지난해 연말부터 되게 크게 왔었어요.
그래서 뭐 지금까지 아버지로서의 가장 큰 위기감은 그렇게 나름의 성과를 내면서 동시에 하나를 희생하는 이 중심축을 다시 재설정해야 되지 않겠냐는 것. 가족을 위해서 무언가를 포기해왔던 우리 아버지 세대와는 좀 뭔가 달라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그런 거죠.
솔직히는 잘 모르겠어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우리 아버지 세대와는 뭔가 달라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가 돼야 되는지.
I:당신이 어렸을 적 동경하던 대상은 누구인가요?
H:우리 아버지는 되게 권위적이셨고, 폭력적이기도 하셨고 그래서 집안에 가정폭력이 일상이었는데 그래서 아버지는 내게 공포의 대상이셨어요. 평소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아버지가 퇴근하는 구둣발 소리를 들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아버지의 퇴근시간이 두려웠던 그런 삶을 살았는데.
그래서 농담이 아니고 난 우리 진짜 아버지가 곧 다시 나타날 거라고 믿었어요. 지금 아버지는 영도다리에서 날 주워왔으며 진짜 아버지는 따로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은 우리 아버지가 아닐 것이라는 그런 판타지를 꿈꾸면서 지쳐 잠든 날이 많은데. 그러니까 어떤 사람을 원한다기보다는 이 사람만 아니면 되겠다는, 누군가를 동경한다기보다는 이 사람만 아니면 되겠다 싶었던 거죠. 부러운 사람은 사실 별로 없었어요. 나와 동년배 친구들 중에선아버지와 살갑게 지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고. 다들 고만고만하고 내 친한 친구들은 다 나와 비슷한 환경이었으니까.
지금 보니까 그래서 문제였던 것도 같네요. 동경하는 대상이 있다면 닮으려고도 하고 했을 텐데. 그게 없다 보니까 싫다 싫다 하면서 배척하고 반대하면서, 은연중에 그 사람을 답습했던 걸 아닐까. 다른 상황을 배운 게 아니라 현 상황을 거부하면서 나도 그렇게 배워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배척하다가 오히려 동화된 게 아닐까. (웃음) 변명 같기도 하면서 지금 얘기하다 보니 그런 느낌이 드네요.
배척하면서 닮아간 게 아닐까
I:자식이 모르는 당신이 어두운 면은 무엇인가요?
H:내가 10살 때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선 거의 얘기 안 했죠. 내가 살아왔던 방법과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딸에게 좋은 얘기가 아니니까, 암울한 얘기니까 안 해요.
아이 입장에서는 지금의 아버지 모습만 보는 거죠.
I:내가 겪었던 경험 중 내 자식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경험이 있나요?
H:제일 중요한 게 불안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거죠.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폭력적이고, 끊임없이 불화가 있었으니까.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불안의 핵심 공간이었어요. 그게 너무 싫었거든요. 내 자식은 그런 경험을 안 했으면 싶고.
내겐 집이라고 하는 공간 자체가 언제나 걱정 없이 포근하게 안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최대한 오래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는 공간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TV를 잘 안 봤어요. 하루 종일 밖에서 노는 거죠. 노는 게 재밌기도 하지만, 집에 와서 앉아있는 게 편하질 않으니까. 그래서 밖에 앉아 있는 거고, 늘 집에 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었죠.
집이라고 하는 공간의 느낌이 아이에게도 그렇게 전해지면 안 되겠다 싶고. 그런데 사실 다투기도 해요. 다투기도 하지만 늘 그런 걱정을 하죠.
아버지는 내가 볼 때는 느닷없이 되는 거고, 아버지가 할 만하다 싶으면 죽을 나이가 된 거겠죠. (웃음)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란 책도 있잖아요. 난 그 표현이 정확한 거 같아요. 어떤 아버지가 되겠다고 정하기 전에 아버지가 돼요. 처음에는 생각 없이 아버지란 게 주어지는 거죠. 이후 그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소명 책임감 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실천하면 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 과정이 쉽진 않을 테지만요.
골리는 전합니다.
<모든 것은 '과정'인 듯하네요. 아버지 '되기'도 역시. 실패의 과정 ㅋㅋㅋ>
골리와의 대화는 꽤나 길게 이어졌습니다.
인터뷰 말고도 제가 가지고 있던 고민들에 대해 성심성의껏 답해주었지요.
골리는 아버지가 되는 것은 과정이고, 그 과정은 실패의 과정이라며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마 여기서의 '실패'란 스스로가 세운 계획의 달성 여부에서 그 의미를 갖는 것 같네요.
그렇다면 그 실패는 닮아 봄직 합니다.
더 좋은 아버지가 될 것임을 포기하지 않고, 더 좋은 아버지를 끊임없이 계획하는 것에서 오는 실패라면 그 과정은 계속해서 해봐야 하는 거니까요.
나 또한 용기 있게 실패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오늘도 용기 있게 실패해가는 골리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