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인터뷰 _ 돼지국밥 24+ (with. 택트훈)
*60명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그 인터뷰가 끝나는 날, 마지막으로 15년을 달리 살아온 내 아버지를 찾아 인터뷰하려 합니다.
*인터뷰 질문은 각자의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청년들의 질문을 모아 재구성되었습니다.
[#24번째 대화]
I:안녕하세요. 모든 인터뷰는 익명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우선 당신의 청년시절 별명은 무엇인가요?
H:지금도 불리는 별명이 2개가 있는데. 하나는 택트훈이라고..
I:택트요?
H:오토바이 택트.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집에는 얘기 안 하고 오토바이를 계속 타다 보니까 또 술만 먹으면 계속 타려고 시동 걸고 그래서 애들이 택트훈이라고 불렀지.
그리고 대학 때 밴드 할 때는 노브레인. 그때 밴드 할 때는 다들 내일이 없는 것 마냥, 밴드 너바나의 커트코베인이 했던 말처럼 '서서히 사라지기보다 한 번에 타버리는 것이 낫다' (It is better to burn out than fade away)
그런 마음으로 살았지. 남들이 봤을 땐 쟤들 정말 생각 없이 사는 것 같다 할 수도 있지만.
예전에 노브레인 할 때 머리를 되게 길러서 염색도 넣고 막 그랬을 때는- 지금은 그 별명이 기억이 안 나네. 그.. 그.. 안정환이 옛날에 별명이 뭐였지?
I:테리우스?
H:응응 그 테리우스
I:이 부분은 안 쓸게요.
H:(웃음) 아니 당시에 별명이 그랬다는 거고 어쨌든 지금도 텍트훈이라고 불리지. 그 별명이 입에 잘 붙어서 아직까지 불리는 것 같아.
I:아이는 어떻게 되시나요?
H:한 명입니다. 지금 15개월이니까 그렇게 치면 이제 햇수로 하면 세 살.
I:첫 번째 질문. 아버지인 당신에게 직업은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 당신은 당신이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있나요?
H:하고 싶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직업의 의미? 직업은 어떤 자아실현의 어떤 수단이랄까? 아니면 모든 사람들에겐 어떤 야망이나, 야심 같은 게 있으니까 그런 야망과 야심을 펼칠 공간이라고 해야 하나?
다들 하고 있는 직업이 나와 100프로 맞는 직업이 없기 때문에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어느 직업이 오래 할 수 있나- 장기적으로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느냐- 이런 걸로 고민하기도 하고. 지금 하고 있는 직업 자체가 꼼꼼함을 요구하는 직업인데 그건 나랑 잘 맞아. 나는 예전부터 관리직보단 엔지니어가 좋았거든.
I:가장으로서 직업이 가진 또 다른 의미는 있을까요?
H:있죠. 크죠.
왜냐면은 남자가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하는데 만약에 입이 자기 하나다, 책임질 부분이 자기 몸 하나면 얼마든지 자기 직업을 다시 선택할 수 있을뿐더러 심지어 한국이 안 맞다면 국적도 바꿀 수 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어느 정도 현실에 매이게 되는 것도 있죠.
총각 때만 해도 금요일 저녁이 되면 또 어디를 가서 친구들과 놀까 고민을 하는데 지금은 금요일에 일이 끝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고.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평일에는 회사에 있다가 주말에는 가정으로 돌아오게 되는 이 두 구심점을 가만히 연결해보니까 끝이 없는 뫼뵈우스의 띠가 되더라
웃음
남자는 죽을 때까지 직장과 가정을 돌고도는 그런 존재가 된다- 이런 깨달음을 얻었죠. (웃음)
I:원래 당신이 하고 싶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H:지금 하고 있는 일. 엔지니어가 원래 하고 싶던 일이었죠.
I:아까 말씀하셨던 음악은 꿈으로 가져본 적이 있나요?
H:있었죠. 군대 제대할 때까지만 해도 고민 많이 했어요. 군대를 군악대에서 있었는데 군악대에 있으니까 어릴 때부터 음악을 계속했던 친구들도 많았거든. 그 안에서 단 1-2프로만이 성공하고 정상으로 치고 올라가는 걸 보니까 그런 현실? 내가 뚫고 나가야 하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뚫고 나가기 위해선 뒤에서 든든한 재정적인 지원이라던지 백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집이 그렇진 못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현실과 타협했죠.
I:그 다음 질문은 이게 좋을 것 같아요. 당신이 꼭 아이로부터 인정받고 싶던 부분이 있나요?
H:주관식입니까? 어려운데? (웃음)
I:나중에라도. 나중에라도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인정받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요.
H:하나 있습니다. 그냥 우리 아빠가 내가 성인이 되고 출가할 때까지는 가정을 잘 지켜주셨다는 거. 근데 그게 힘들죠. (웃음) 삶이란 게 마라톤이기 때문에. 앞으로 30년 동안 가족 옆에서 한결같이 한다는 게 가장 어려운 거니까.
30년 동안 가족 옆에서 한결같이 한다는 게
가장 어려운 거니까
I:그러면 반대로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던 부분이 있나요?
H:아버지가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살아계신다면 '그냥 열심히 살고 있네' 정도? 주어진 환경 내에서 너도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라는 마음. 주관식이니까 되게 어렵다.
I:당신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H:아버지는 사실 집보다는 친구들을 되게 좋아하셨고. 주변에 친구도 많으셨고. 그 당시에 남포동 미화당 백화점에 다니셨는데. 백화점 쪽 일을 하시다 보니까 겉멋도 많으셨고. 으레 남자는 이 정도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도 하셨고.
외동이라 다른 걸로는 머라 하신 적이 없고 한 번씩 정말 마음에 안 드셨던 부분에 대해선 머라 하셨는데.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냐를 보여주는 일례가 내가 유치원 때 놀이터에 있다가 어떤 형들이 날 때렸는지 해서 집에 울면서 갔는데 아마 아빠한테 울면서 말했겠지.
그런데 아빠가 "저기에 야구 빠따 있으니까 네가 가서 알아서 처리하고 와라." 아빠가 책임지겠다 뭐 그렇게 하신 거야. 그래서 내가 또 야구 빠따를 질질 끌면서 갔대. 그런데 내가 이걸 어떻게 기억하냐면 우리 어머니가 그때 날 보고 나중에 말해주셔서 지금 기억을 하는 건데. (웃음)
어머니가 울면서 야구 빠따 끌고 가는 나를 보고 같이 놀이터에 가서 형들한테 이야기하고 괴롭히지 말라고 하고 이야기는 해피앤딩으로 끝낫는데. 그 일을 두고두고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지. "왜 치맛바람으로 애들 일에 그러냐. 알아서 하게 놔둬야지."
여하튼 전혀 달랐죠. 두 분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뭐가 더 낫다고는 말 못 하겠어요.
I:택트훈은 만약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 같나요?
H:아마 나도 어머니처럼 하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딸인 것도 있고 아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고요. 그리고 아버지가 당시에 그렇게 한 건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사람이라는 게 감정적인 측면이 있어서 그날 드라마를 보고 센치해지셨다던가, 남자 어른이 개입하기엔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고요.
I:아버지는 언제
H:고1 때 돌아가셨죠.
I:저는 아버지랑 정반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았거든요. 우리 아버지도 똥 기마이라고 하죠. (웃음) 남자가 몇 살에는 차를 몰아야 한다는 등 그럴수록 난 더 저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아까 미화당백화점 얘기를 들으면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런 부분에서는 좀 어떠셨나요?
H:그거는 뭐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그렇고. 가장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자식들은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단점을 잘 찾아내요. 또 부모님의 단점을 가장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도 자녀이고요.
완벽한 부모님은 없을 텐데 왜냐면 부모님도 부모이기 이전에 사람이니까. 단점도 있을 거고 더군다나 폐쇄된 공간에 같이 있으니까 그런 모습이 더 쉽게 노출되고요.
우리 아버지도 집에서 줄담배를 굉장히 많이 피셨는데 나도 지금은 끊었지만 군대 가기 전까지는 담배 엄청 많이 폈었고. 뭔가 닮지 말아야겠다고 필이 꽂히면 사람은 닮기 마련이에요. 이미 머리가 거기 향해 있기 때문에.
흔히 말하기를 사람은 문장보다 단어를 기억한다고 하죠.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겠다는 문장보다는 담배라는 단어가 우선 기억되기 때문에.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나는 사업을 하지 말아야겠다'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 이런 모든 생각들이 오히려 집착이 되니까. 나는 그래서 아싸리 그냥 아버지는 그랬고 나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미 알게 모르게 부모님이 했던 행동들을 그대로 하고 있어요. 나도 지금 애를 키우면서 아빠가 방귀 뀌면 애도 방귀 뀌는 걸 보면서 너무 놀라거든요. 우리가 너무 가족적인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단 시선을 조금 가볍게 가지고 인정할 모습은 인정하고 그렇게 가야 할 것 같아요.
시선을 조금 가볍게
I:당신이 꿈꾸던 가족의 모습이 있었나요?
H:꿈꾸는 모습이 선명하진 않았는데 막연히 생각했을 때는 그냥 건강한 아이들과..
I:아이들요?
H:내가 혼자였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착하고 친구 같은 아내와 사는. 다들 생각하는 그런 일반적인 가족처럼 지내는 걸 꿈꿨죠.
I:아이를 키우는 것에는 실질적인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런 것에 대한 부담감, 걱정은 딱히 없었어요?
H:있죠. 지금은 있고, 딱히 전에는 없었어요. 남자가 보통 그래요. 10개월 동안 내 뱃속에 있던 것도 아니고, 엄마 뱃속에 있었으니까 아이가 나올 때도 별생각 없고. 아이에게 이제 기저귀 값 나오고 분유값 나오고 하는 걸 보면 점점 현실로 다가오면서 아- 앞으로 적어도 20년 동안은, 20년 동안은 정말 잘 버텨야 한다 싶고.
나보다 직장에서 10년 빠른 선배 보면 그 모습이 결국 미래의 내 모습인데. 다 위장약 먹고 치질 걸리고 몸 어디 하나씩 고장 나고 다 병든 닭처럼 있어도 기어코 회사 나오는 거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도 나도 저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몸이 아파도 저렇게 돈을 벌어야 하는데 라는 부담감이 있죠.
I:그럼 처음에 결혼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H:있었죠. 결혼 전에 부담은 나의 개인적인 시간이 줄어드는 거. 불금이라던지. (웃음) 그래도 결혼 전에는 현실로 다가오지 않으니까 크게 걱정은 안 되어요. 막상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크게 다가오기 때문에. 뭐든지 경험하기 전에는 장점만 보이죠. 경험해야 이제 단점도 보이고 하는 거니까.
I:자식이 언제 독립하길 바라나요?
H:스무 살?
I:스무 살이면 아직 용돈 받고 할 때 아닌가요?
H:세상이 바뀔 겁니다. 뭐 가족이란 굴레가 중요한 거지 굳이 같이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가고 싶은데 다 가보라고 하고. 이 좁은 한국에 있을게 아니라 외국 가서 시야도 넓히고. 여기에서 사는 방식이 다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가 깨닫게 됐으면 좋겠어요.
가족은 밖에서 힘들 때 돌아오는 공간이지, 굳이 이곳에만 있을 필요는 없다 싶죠.
sos치면 당연히 도와줘야겠지만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키려고요. 여긴 네가 끝도 없이 있을 곳이 아니다. 여긴 네가 떠날 곳이다. 그러니 네가 스물이 넘으면 떠나라! (웃음)
어쨌든 아이도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스스로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될 테고 걱정도 되죠. 부모의 입장에서는 같이 살면서 애가 몇 시에 들어오고 몇 시에 나가는지 알면, 스스로 아이가 안전하다고 느끼겠지만 진짜 안전한 건 서로 믿는 거죠.
또 애가 밖에서 사고 치면 어때. 부모 입장에서는 애가 힘든 거 없이 자랐으면 좋겠다 싶지만 힘든 일은 살면서 늘 오잖아요. 다만 왔을 때 그걸 딛고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게 더 낫지 않나 싶고. 그래서 집에서 백날 이게 좋다 저게 좋다고 말해봤자 소용없고 직접 나가서 자기가 경험해보며 이게 맞고 저건 아니구나 느끼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자기가 서있는 위치에 따라서 세상 풍경이 달라지는데 부모가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과 자식이 보는 풍경이 달라요. 그리고 자식이 우리보다 뛰어나야지 우리보다 못하고 우리만큼만 되면 안 되잖아요. 자식은 자식 나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될 것 같아요.
I:아버지가 된 이후 지금까지 당신이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H:두려웠던 순간은 특별히 없는 것 같은데. 지금 기억나는 건 없어요. 힘든 건 있어도 두려운 적은 딱히. 힘든 건 직장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체력적으로 지쳐서 집에 왔는데. 집에 와서 흔히 생각하는 건 즐거운 가정, 웃음이 넘치는 가정일 텐데 아내는 아내대로 하루 종일 육아 스트레스로 지쳐있고. 아이를 낳고 그 이후 저녁의 모습은 하루 종일 지친 남편과 하루 종일 지친 와이프의 만남이라서...
둘 다 서로에게 풀어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두 사람의 만남에서 꽝하고 터지는 현상이 일어나요. 그 부분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둘 다 힘들 때. 둘 중 한 명이 힘들면 한 명이 풀어주면 되는데. 둘 다 힘들고 둘 다 스트레스 받는데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아이의 잘못도 아니고. 집사람의 잘못도 아니고. 내 잘못도 아니야.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해결한 방법은 없어. 결국 그 스트레스를 받지만 누군가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또 서로 묵묵히 각자의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그렇게 애 재우고 나면 둘 다 지쳐 쓰러져 잠에 들고. 아무것도 못하고. 계속 이게 반복되다 보니까 풀 데가 없이 쌓여만 가고. 이런 게 사실 힘들지 않은가 싶어요.
I:마지막 질문은 이렇습니다. 아버지가 되면 무엇이 가장 좋은가요?
H:좋은 점? 음 뭐 아이가 생겼다는 거?
I:어느 면에서인가요? 아이가 생겨서 좋다는 건.
H:신기하죠. 날 닮은 아이가 생겼다는 게. 살면서 애들은 많이 봤지만 정말 세상에서 조건 없이 좋아하는 대상이 한 명 있는 것이기 때문에. 솔직히 결혼을 해서도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는 사실 조건이 있어요. 그런데 아이와 부모 사이에는 조건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이 무엇보다 신기하죠.
I:나중에 글을 읽게 될 내 아이에게 지금의 택트훈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타임캡슐 같은 말 한마디.
H:말 한마디니까 더 어렵다. 말 한마디.. 문장 한마디.. 열 살 넘어가면 한창 공부할 때니까 공부 열심히 하란 말은 하고 싶지 않고. 부모 입장에서는 첫째는 건강인데 그 나이에는 건강하리라 생각하고.
음 너무 주입식 공부의 노예가 되지 않고, 정말 살아 있는 삶에 대한 공부. 학교에서 치는 시험 때문에 다른데 신경을 쓰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세상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서 알았으면 좋겠어. 공부는 못해도 책은 많이 읽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고. 세상을 바라볼 때 자기만의 중심, 무게가 있는 그렇게 자기만의 시선을 갖춰가는 아이였으면 좋겠어.
I:10년 뒤엔 아이를 위해 어떤 아버지로 있고 싶나요?
H:십 년 뒤엔 나도 늙겠지만 생각은 비슷할 것 같고. 아마 또 그때의 아이에게 맞는, 커스터마이징 된 아빠가 되어있지 않을까?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라면 사춘기 아이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면 아빠가 돼있을 테고.
도움이 크게는 못되더라도,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을 때 해줄 수 있는 그런 아버지였으면 싶지.
택트훈은 두 개의 카드를 적어주었습니다. 하나는 '당신이 가진 생각들은 벽돌이다. 이미 쌓여있는 벽을 향해 던질 것인가? 아니면 같이 쌓을 것인가?' 란 질문을 주었고, 다른 하나는 '베스트셀러가 되시길 빕니다'라고 적어주셨습니다.
택트훈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의 빠름을 느꼈습니다.
처음 만났던 택트훈은 기타를 치는 예비신랑이었는데, 어느새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인터뷰 내내 아이를 보며 웃음을 짓고 있다니.
택트훈은 이 기록물이 베스트셀러가 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만 지금 제가 해내는 속도로는 완료까지 2년은 더 걸릴 것 같네요.
인터뷰의 업로드가 늦어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렸을 택트훈과 저의 기록 과정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여러분!
더 열심히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