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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우동준 Apr 14. 2017

#26.아이들 앞에서는 항상 밝게 보이려고 애쓰니까요.

아버지 인터뷰 _ 돼지국밥 26+ (with. 곰탱이)

*60명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그 인터뷰가 끝나는 날, 마지막으로 15년을 달리 살아온 내 아버지를 찾아 인터뷰하려 합니다.


*인터뷰 질문은 각자의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청년들의 질문을 모아 재구성되었습니다.


[#26번째 대화]


I:안녕하세요. 모든 인터뷰는 익명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우선 청년 시절의 별명이 어떻게 되시나요?

H:곰탱이, 곰, 웅담, 쓸개 이런 식으로 불렸는데 주로 곰탱이로 불렸어요. 덩치가 산만하거나 동작이 느려 터져서 그렇게 불린 건 아니고 이름에 곰과 관련된 한자가 있어서 그렇게 불렸습니다. 저는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중요한 순간엔 매우 재빠른 사람이랍니다.     



      

I:자제분이 어떻게 되시나요?

H:내년에 초등학교 갈 예정인 7살 유치원생 아들 하나랑, 내년에 유치원 갈 어린이집 다니는 4살 딸 하나, 이렇게 현재 2명입니다.          





 

I:당신이 스무 살 때의 성공은 무엇이었나요? 

H:스무 살에는 성공한 것이 없네요. 하지만 20대 전체를 보면 많은 것을 이룬 것 같아요. 저는 봉투를 바치지 않으면 대학교 원서를 써주지 않는 담임을 만나서, 어머니와의 대립으로 4년제 대학교 원서조차 써보지 못하기도 했고. 재수를 해서 21살에 대학교를 갔어요. 


그렇게 대학 다니는 동안엔 하고 싶었고 좋아하던 음악을 하며 공연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취업에 필요한 1급 국가공인 자격증도 취득을 했고요. 졸업하면 외국에서 일하겠다는 목표도 이루었고, 결혼에도 성공하였습니다.         


 

I: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인가요? 

H:제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가족이 있다는 것을 느낄 때입니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이 좋을 때도 있지만 그것은 가족이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일이죠.          



I:당신의 행복을 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H:시간인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의 순간순간이 너무 행복한데, 몇 년- 몇십 년 뒤엔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집니다.          



I:다른 사람은 참 쉽게 하는데, 당신에겐 어렵기만 한 일이 있나요?

H:조리 있게 말하는 사람들 보면 부럽습니다. 저는 생각 따로 말 따로인데,  故 노무현 대통령님처럼 머릿속으로 정리해가면서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I:당신이 꿈꾸던 가족의 모습이 있었나요? 

H:저는 지금 제가 원하던 가족의 모습대로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도 다 건강하게 계시고, 우리 가족 동생 가족 큰 문제없이 잘 지내면서 서로 왕성한 교류 속에 아이들도 잘 크고 있고 하루하루 잘 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니 가끔 꿈꾸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I:자식은 모르는 당신만의 어두운 면, 또 다른 면은 무엇인가요?

H:시간에 쫓기거나 불안할 때, 초조해지면 조급 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평소의 여유로운 모습이 사라질 때가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아직 모릅니다. 부모님이나 애기엄마는 알고 있습니다. 

또, 제가 굉장히 내성적이고 과묵한 사람인데 그것도 아이들은 모릅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항상 밝게 보이려고 애쓰니까요. 이것 또한 부모님이나 애기엄마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항상 밝게 보이려고 애쓰니까요. 






I:당신이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말 중에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으신가요?

H:“젊었을 때 외국에 나가서 목돈을 벌고, 그 돈을 굴리면서 한국에서 가족들과 같이 살아라”

“남자라면 중동의 모래바람을 맞으면서 일을 해봐야 된다”

 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그것이 저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해양대학교 기관공학과 나오셔서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40년 넘도록 계속 배를 타고 계신데, 주로 기름 싣는 유조선을 타셔서 중동에 자주 가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한다고 해양대 가서 배를 타고 싶었지만 아버지께서 반대하셨고요. 


결국엔 아버지의 반대로 배를 못 타게 되었지만, 토목공학과로 진학하여 건설회사에 취직한 뒤 두바이 경전철 공사에 지원해 중동에서 모래바람맞으며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 한국에 온 뒤 지금처럼 살고 있네요.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그 돈을 굴리면서 살아야 되는데 결국 집을 사니까 돈이 없어 이 회사 월급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니 지금 경제적으로 굉장히 힘듭니다ㅠㅠ          



I:자식이 당신에게 알려준 삶의 지혜는 무엇인가요?

H:어른들은 한번 싸우면 화가 쉽게 풀리지 않고, 서로를 대하기가 어려워지지만, 아이들은 혼내더라도 금새 잊고 “아빠 아빠”하면서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도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아이들처럼 빨리 잊으려고 노력합니다.          


I:아버지로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H:저는 아이가 2명이 있는데 사실 이 2명 사이에 한 명이 더 있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임신이 되다 보니 1명 키우는 것도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또다시 외국으로 일하러 나가야 되나 생각도 들고 반갑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건지 아니면 안 건지. 유산이 되어 부모보다 먼저 하느님 곁으로 간 이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정말 미안합니다. 


다시 시작한다면 이 아이를 반갑게 맞이해주고 싶네요.         







 

I:결국 우리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H:현재의 기억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좋은 시기가 있으면 힘든 시기가 반드시 찾아오고, 힘든 시기가 있으면 좋은 시기도 반드시 옵니다. 저에게 지금은 좋은 시기입니다. 힘든 시기는 반드시 찾아오니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잘 이겨나갈 것이고, 그 힘든 기억을 가지고 행복한 시기가 오면 행복함이 배가 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곰탱이는 질문을 준 청년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로 '세상에 준비된 아버지는 없다. 아무리 준비해도 마찬가지! 세상에 나온 아이를 직접 보고 그때부터 같이 준비하는 거다.'라고 전해주었습니다. 


곰탱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는 참 묵직한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쉬이 흔들리지 않고, 신중히 스스로의 판단을 내리는 그런 묵직한 중심이 있는 사람. 


아마 지난의 경험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주었겠지요? 



저는 세상에 나온 아이를 직접 보고 그때부터 같이 준비하는 거란 곰탱이의 마지막이 참 좋았습니다. 


아이와 함께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이 

어쩌면 앞서서 준비하는 아버지의 모습보다 

더 멋지고, 더 따뜻하고, 더 묵직한 존재감을 가진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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