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꽃 우동준 Jun 30. 2017

#27. 그럼 내 행복은?

아버지 인터뷰 _ 돼지국밥 27+ (with. 점박이)

*60명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그 인터뷰가 끝나는 날, 마지막으로 15년을 달리 살아온 내 아버지를 찾아 인터뷰하려 합니다.


*인터뷰 질문은 각자의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청년들의 질문을 모아 재구성되었습니다.


[#27번째 대화]


I:안녕하세요. 모든 인터뷰는 익명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우선 청년 시절의 별명이 어떻게 되시나요?

H:어릴 때 불렸던 별명이요?


I:누구 아빠, 누구 남편으로 불리기 전에

H:별명에 이름이 들어가는데..  


I:안돼요! (웃음) 익명이라. 초등학생 때 별명이라도 괜찮습니다. 

H:별명이 많은데, 다 이름이 들어가서.. (웃음)  그럼 점박이로 할게요. 점박이. 




I:점박이-! 알겠습니다. 자제분은 어떻게 되시는지. 

H:5개월 된 아들 하나 있습니다. 

I:사진이 엄청 예뻐서 저는 따님이신 줄 알았어요. 

H:엄마 닮았어요. 아빠 안 닮았어. 








I:당신이 꿈꾸던 가족의 모습은 있었나요? 

H:있었죠. 그냥 평범하게 행복한 가족. 다 같이 모여 사는 가족.

저도 가족이 다 같이 살지는 않았거든요.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배를 타셔 가지고. 가족이 다 모여서 같이 뭔가를 하고, 그렇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진 않았던 것 같아요. 


1년에 한 번 들어오는 큰 배. 상선. 지금이야 안 그렇지만 그때는 무역하러 나가시면 몇 개월에 한 번, 1년에 한 번 오셔서, 어릴 때 그렇게 많은 추억이 없어요. 아버지 하고. 


그래서 다 같이 모여있는 가족. 다른 것 없어도 평범하지만 모여서 행복해 보이는


다른 것 없어도 평범하지만 모여서 행복해 보이는.


티비 주말연속극에 나오는 그런 가족. 


그런 게 어떻게 보면 나에게 평범한 가족의 그림이지 않았나 싶어요. 




I:지금은 그럼 3대가 다 같이 모여 사시나요? 

H:아니죠. 지금도 같이 못 살죠. 지금도 부모님은 포항, 형은 수원, 저는 부산. 이렇게 다 떨어져 살고 있지만 내가 그리는 그림은 그런 가족이었다는 거예요. 


I:그럼 아주 오랜 꿈이겠네요. 

H:그렇죠. 아버지가 그런 배를 타셨었고. 그게 불과.. 아버지가 국내에서 일하신 지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형하고 나하고 터울이 다섯 살이고. 


'같이 살고, 같이 있어야겠다'


서울에서 내려오고, 결혼할 때도 그게 전제조건이었던 거 같아요. 같이 할 수 있는 거. 떨어져 있는 건 별로 안 좋은 거 같아요. 어릴 때 그런 환경적인 부분이 작용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큰 정이 없고요.  



I:아버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H:지켜주는 것.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 뭐 많은 역할들 중에서도 일단 제일 중요한 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나쁜 방향으로 빠지진 않은지, 그런 부분에서 아버지로서 지켜주는 것이지 않을까.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지켜주고, 잘할 수 있는 기회를 못 잡고 있다면 도와주고. 자식을.. 모든 면에서 지켜주는 것.


그런 것들도 우리 때는 없었지 않았습니까. 

아버지의 역할은 돈 버는 것, 가정을 책임지는 것, 무조건 내 자식, 가족을 위해서 어떻게든 열심히 일해야 하는, 공부시켜야 하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그것도 맞죠. 그것도 맞는데.


나는 순간순간에 지켜주는 그런 아버지가 돼주고 싶다. 내 아들한테. 



순간순간에 지켜주는 그런 아버지


순간순간에. 아들이 가는 방향이라던지 길에 있어서. 

자기가 잘하는 것, 자기가 똑바로 갈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주고 싶다. 

그게 아버지의 역할이 아닐까.. 힘들죠 그게 사실은. 



I:걱정은 없으세요? 

H:많죠. 그래도 지금 미래에 대한, 아기에 대한 학비나 그런 걱정까진 안 해요. 지금은 일단 열심히 해야 되고, 아이가 자라고 중요한 시점들이 몇 가지가 더 있을 것 같아요. 유치원 들어가는 시점. 초등학교 들어가는 시점. 


그때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애기가 안 아프고 클 수 있도록 지켜주는 거. 안 아프고 잘 클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게 지금 나의 걱정이에요. 하지만 지금 일이 많고, 와이프 많이 못 도와주고. 사람도 많이 만나야 되고. 지금부터 아버지의 역할을 많이 못하거든요. 와이프한테 많이 맡기고 있고. 



I:분유값이 많이 비싸다면서요? 경제적인 부담은 없으세요?

H:그 돈이라는 것은 살아보니까 그렇더라고요. 백 만원을 벌더라도, 어떤 가치에 맞추느냐에 따라서 또 살아지는. 남하고 비교하면 한도 끝도 없이 되는 거고. 내 기준을 잡아서 그렇게 간다고 하면 크게 상관없는 것 같아요. 


제가 월급을 많이 받는 건 아니거든요. 와이프도 일 안 하고 있고, 애기도 있고 하지만 그런데 그렇게 힘들다고도 생각 안 해요. 조금 더 좋은 거 해주고 싶지만 저는 제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내가 해왔던 것들을 좀 줄이고, 와이프도 와이프가 하던 것을 조금씩 포기하고. 조금씩 아이가 자라면서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조금씩 늘어나겠죠. 어떻게 보면 아빠의 역할은 포기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I:아버지의 역할은 포기하는 것이다? 

H:아니. 그건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남편의 역할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결혼하면서도 포기해야 하는 게 너무 많이 생겼으니까. 그리고 아빠가 되고는 더 많이 생겼으니까. 포기하면서 지켜져야 되는 거죠. 



I:음.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죠?

H:포기하게 되죠. 포기해야 하고. 


포기는 포기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또 서로의 배려랄까요. 안 그러면 싸우거든요.  


동시 웃음


와이프도 똑같은 개인적인 일정과 생활을 포기하며, 자식에게 희생하는 게 있을 텐데. 서로 강요를 못하는 거죠. 서로 많이 싸워요. 서로 싸우는데. 싸우면서 또 하나씩 포기하게 돼요. 


맞춰가는 거고. 싸우면서 맞춰가는 것 같아요. 




I:당신이 아버지에게 했던 말 중에 가장 후회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H:아버지가 엄청 아프셨어요. 그리고 제가 20대 초반에 아버지가 간암 판정을 받으셨었거든요. 


그전에 사이가 안 좋을 때. 저도 철없을 때. '왜 우리는 이렇게 밖에 못 사냐. 왜 우리는.. '

하여튼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런 얘기를 한 거 같아요. 


왜 아빠는 아빠 역할을 안 하냐- 왜 우리는 이렇게 밖에 못 사냐- 울면서 그렇게 얘기했던 거 같은데. 

그러고 나서 아버지가 이제 아프시고, 수술하시고 하면서 굉장히 후회를 많이 했죠. 


아 약해지셨구나, 늙으셨구나, 아버지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 


왜 아버지의 역할을 못하시냐,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키지 못하느냐..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했던 거 같고. 아버지가 아프신 계기로서 엄청 후회를 많이 했죠.  



I:지금은? 

H:그때 많이 안 좋아지셔서 제가 간이식 수술을 해드렸어요. 당시 간암도 있고, 간경화, 복수도 차고, 황달도 있고, 마지막에 암환자 죽기 전에 살 빠지고 배불룩해지고 하는 그런 마지막 단계에서, 간이식 수술밖에 없다고 해서 형하고 가서 테스트하고. 


혈액형이 제가 먼저 맞아서, 혈액형이 먼저 맞는 게 중요하다고 해서 제가 이식 수술해드리고. 지금은 다행히 건강하시죠. 제 간의 70프로를 드렸어요. 



I:그렇게까지 이식해도 되나요?

H:네. 다행히 그때 간이 젊고 싱싱해서 (웃음) 지금은 재생되었어요. 100프로까진 아니더라도 90프로. 원래 크기의 90프로까지는 재생이 됐고. 아버지 간을 다 떼어내고, 암세포 다 떼고 새 간으로 넣은 거죠. 그래서 이제는 다행히 일도 조금씩 하시고. 저도 결혼도 했고. 


좋죠- 지금은. 부모님이 얘기하시기로 '집이 이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나' 하실 정도로. 그때 뭐 아버지 아프고 간 이식 수술하고 할 때는 진짜. 


어머니는 반대하셨거든요. 아들의 배를 갈라서 간을 떼서 아버지한테 준다.. 차라리 아버지한테 죽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냥. 그만큼 엄마의 그 마음은 큰 거예요. 근데 그게 또 됩니까. 아들의 입장으로서. 어쨌든 그 계기로 굉장히 집의 분위기가 좋아졌어요. 





I:그럼 반대로 당신이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말 중에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으신가요?

H:나쁜 말요?


I:그냥 아버지한테 들었던 말 중에요. 

H:내 행복은.. 


I:네? 내 행복요? 

H:아버지한테 그런 것들을 많이 강요했던 거 같아요. 자식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이런 것들을 제가 얘기했던 거 같아요. 내려놓으시라- 가족들을 위해서 살아라- 행복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애써 달라. 왜 남들처럼 왜 안 하냐고 했을 때 아버지가 했던 말. 






"그럼 내 행복은?.." 




I:아-  

H:그때 느꼈죠. 아버지도 아버지 인생이 있는데.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죠. 그냥 아들로서 아버지한테 비교하면서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왜 아버지 역할을 잘 안 해주시냐- 이런 투정.


좀 찡하더라고요. 평생을 그렇게 가족을 위해서 사셨을 건데. 평생 배 타면서, 고생하면서, 외롭게 살았을 건데. 누구 하나 인정 안 해줬을 거고, 맨날 뭐라만 했으니. 커서야 이제 아는 거죠. 나도 이제 아버지가 돼보니까. 



응 그래요. 그 말씀이 기억이 남네요. '내 행복은.. 내 인생은?..'





 I:자식이 당신에게서 닮지 않았으면 하는 점이 있나요? 

H:허허 많죠. 


동시 웃음 


많은데. 그중에서도 저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것도 많고,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도 많은데. 저는 공부를 많이 안 했었어요. 그래서 후회한 적이 많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공부가 하기 싫어서 안 했던 건지, 그냥 못해서 안 했던 건지. 형은 공부를 되게 잘하고 그랬었는데. 저는 운동? 노는 거를 좋아했으니까. 


그렇다고 공부를 또 막 시키고 싶진 않은데. 친구 좋아서 놀고, 공부 안 하고, 귀찮아하는 어릴 때 내 모습은 안 닮았으면. 그렇게 살아도 크게 뭐라 하진 않을 거 같은데. 나도 다 겪어봤던 어릴 적 시절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부분은 엄마를 좀 닮았으면 하는 게 있죠. 



I:그럼 아까 날 닮았으면 좋겠다는 것도 있으셨는데. 

H:성격? (웃음) 나서서 뭔가를 하고, 빼지 않고, 스스로 나서서 정의감 있게 하는 것들. 하여튼 좀 먼저 치고 나서서, 남들이 주춤할 때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고. 죽이 되든 밥이 됐든 간에, 나서서 말하는 적극적인 거나 대인관계 이런 건 나를 닮았으면 좋겠고. 아까 말했던 그런 것들은 나를 안 닮았으면 좋겠고. 



I:대인관계 좋고 잘 나서는데 공부만 하고 그러면 그것도 이상할 것 같은데요? (웃음)

H:(웃음) 아 그렇습니까? 아빠 욕심이란 게 참. 





I:아이가 조금 크면 함께 하고 싶었던, 그려봤던 모습이 있나요? 

H:내가 어릴 때 하고 싶었던 것들요. 아빠랑. 


나는 솔직히 아빠랑 같이 해봤던 게 목욕탕 밖에 없거든요. 밥 먹고 외식한 기억도 없는 거 같아. 온천 간 기억밖에 없어요. 제가 운동을 참 좋아했었고, 활발하게 놀았던 유소년 기였기 때문에. 아이가 아들이니까 대부분의 운동은 같이 해보고 싶어요. 


스키도 타고, 수영도 하고,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이걸로 아이의 적성을 살리고 하는 걸 떠나서 운동, 스포츠, 야외활동을 하고 싶어요. 아이가 그런 성격이 된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거를 나는 못했으니까. 이제 아들이니까.  


물론 싫어할 수도 있겠죠. 컴퓨터만 할 수도 있는데, 시간이 허락하고 가능하다면 야외활동을 하고 싶어요. 축구도 하고 싶고. 조기회 가면 그런 거 있거든요. 애들도 같이 차고. 야외 가면 애들이랑 캐치볼 하고. 저는 그런 게 부러웠던 것 같아요. 하여튼 체험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하고 싶어요. 


그리고 소주 먹고 싶어요. 애들하고. 


난 아버지가 술 안 드시거든요. 일찍 암 판정을 받으셔서 지금도 술을 못 드시고 엄마랑 술 먹는데. 술 한 잔 묵으면서 얘기하는 아버지? 그게 정치가 됐던, 사회, 경제, 문화가 됐던. 토론하고 이야기하고. 


사회현상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는 그런 게 참 힘들겠죠? 나도 나이가 드니까 이런 생각하지. 이제야 애기가 생기니까 아이고 얘 언제 키워서 같이 소주 한잔 먹을까 이런 생각도 하고. (웃음) 








I:아버님이랑은 많이 닮으셨어요? 

H:얼굴은 아버지 쪽이고. 몸매랑 성격은 엄마 쪽이고. 좀 다르죠 아버지랑 저는. 아버지는 굉장히 똑똑하시고 부지런하시고 엘리트 쪽에 가까웠다면. 형도 그쪽에 가깝고. 나는 노는 쪽, 사고 치는 쪽에 가까웠죠. 





나도 결혼하고 애 놓으면서 조금 더 아버지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한 인생이고, 한 사람으로서 평생 열심히 사셨을 텐데. 누구한테 인정받지 못하고. 누구보다 외롭게 사셨구나. 





'내 인생은, 내 행복은'이라고 얘기했을 때.. 부모라는 자리가 참 대단하고 위대하다 싶고. 


계속 포기하는 거죠. 지켜주려고 하고. 










점박이는 마지막 말로 '결혼은 포기하는 거다. 그러나 그렇게 맞춰가는 것이 인생이다.'를 전했습니다. 


포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때- 

그래서 그 포기가 포기라고 느껴지지 않을 때-

그 순간의 자연스러움이 바로 사랑이겠지요. 


그리고 


당신이 이만큼 포기해 오셨구나- 

당신의 삶에 정작 당신이 아닌 내가 가득 차 있었구나- 

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왔던 게 

바로 사랑이였단 걸 알게 될 때- 


그때가 바로 나의 '포기'가 시작되는 순간이겠지요. 



개인적으로 참 소주가 땡기게 하는 인터뷰였습니다. 

나도 점박이처럼 당신과 참 소주 한 잔 같이 하고 싶다고 전하고 싶던 

그런 인터뷰였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26.아이들 앞에서는 항상 밝게 보이려고 애쓰니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