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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우동준 Jul 18. 2017

#28-시간을 많이 보낸 게 잘했다고 생각해요.딸 하고

아버지 인터뷰 _ 돼지국밥 28+ (with. 덴마크)

*60명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그 인터뷰가 끝나는 날, 마지막으로 15년을 달리 살아온 내 아버지를 찾아 인터뷰하려 합니다.


*인터뷰 질문은 각자의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청년들의 질문을 모아 재구성되었습니다.


[#28번째 대화]


I:청년 시절의 별명이 어떻게 되시나요?

H:나는 별로 그 별명이 안 맞다고 생각하는데 덴마크요.  

   

I:덴마크요? 나라 이름 아닌가요?     

H:머리가 크다고 덴마크라고 하더라고요. 군대 갔다 왔죠? 나 61호 썼거든요. 머리가 덴마 크다고. 덴마라는 말이 부사가 아닌데.. 어쨌든 멋있지 않나요? 의미만 모르면 (웃음)           





I:자제분은 어떻게 되시나요?

H:딸이고. 스물. 아 스물이래. 이십팔 개월, 이십구 개월쯤 됐습니다. 그리고 오늘 산부인과를 갔다 왔는데. 둘째를.


I:허?! 오늘요? 

H:임태기는 얼마 전에 했었고. 아직 심장 소리를 못 듣고 애기 모습만 봤어요.        

  

둘 다 박수    

       

H:가족이 아닌 사람한테 이야기하는 거는. 아니 아직 가족한테도 얘기 안 했지. 내일 이야기할 거예요. 어머니한테.      


I:인터뷰하다가 이런 경우가 생기다니요!      

H:오늘 오전에 보고 왔어. 아직 심장소리는 못 들었어. (웃음)         

   

I:몇 주인가요?

H:4주. 이만해요. 이만해.          

 

I:대박이다. 

H:태명을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I:축하드려요.  이 사실을 지금 아무도 모르는 거죠? 

H:아무도 몰라요. 


I:왠지 되게 앞서가는 느낌이에요. (웃음) 






I:아버지인 당신에게 직업은 어떤 의미인가요? 당신이 하고 싶던 일이었나요? 

H:내가 아버지이기 훨씬 이전에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에. 직업 선택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로서의 큰 의미는 없었던 거 같아요. 저는 원래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는 사람이라서. 기호도 별로 없고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군대 갔다 와서 어머니가 공직을 해봐라고 하셔서 시작했거든요. 근데 저는 되게 만족스러워요. 뭐랄까. 저는 경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거든요. 


여기도 물론 경쟁이 없는 건 아닌데 그래도 경쟁에 덜 신경 쓰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저는 만족해요. 그리고 지금 부서도 되게 만족하고요. 내게 직업이 어떤 의미인지는 한 마디로 표현 못하겠어요. 밥벌이로서의 생각은 안 드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하고 싶었던 일도 아니지만 지금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I:당신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요? 

H:성공이요? 저는 가정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주말에 친구들도 잘 안 만나고. 못 만나죠 잘. 


와이프가 저녁에 일해서 웬만하면 저녁엔 아이 집에서 씻기고. 약속 잘 안 잡고.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가족끼리 되게 화목한 게 성공이라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저는 대학교 때도 방학하면 집에 와서 가족들이랑 보내고. 친구들하고 노는 것보다 그게 훨씬 편했어요. 친구들이랑 놀면 재미는 있는데 뭔가. 영혼이 채워진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가족들과 있으면 재미는 그렇게 없지만 관계 속에서 얻는 뭔가가 있어서.  어쨌든 저는 성공을 그렇게 정의합니다.        


        

I:지금 당신이 부러워하는 친구가 있으신가요?

H:내가 부러워하는 친구요? 없어요.  

   

I:꽤나 단호하게 말씀하시네요? 

H:(웃음) 부러워하는 친구..? 아는 사람 중에는 없어요. 부러운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I:그럼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부러워해본 적은 있으신가요? 

H:그렇죠. 고시생 때는 합격자가 부러웠죠. (웃음) 제가 경쟁을 싫어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남들과 비교를 잘 안 하려고 그래요. 아 그런 사람들은 부러워요. 작가들 같이 글을 잘 쓰는 사람. 그런데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I:당신이 아버지로서 살아오면서 포기해야 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H:나의 개인 시간이죠. 개인 시간. 시간이 제일 큰 거 같아요. 원래 친구들을 잘 안 만났었고. 회사에서 회식도 별로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저는 혼자 있는 거를 좋아하거든요. 혼자 있다고 딱히 생산적인 걸 하진 않아요. 혼자 책 볼 때도 있고. 혼자 게임할 때도 있고. 혼자 멍 때릴 때도 있고. 


혼자 있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애랑 있으면 그게 힘들죠. 예전에 장모님이 애기를 너무 보고 싶어 하니까 와이프가 애기를 데리고 가서 3주 동안 혼자 있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혼자 오래 살기도 했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포기했습니다. 


               

I:요즘도 아이가 울어 잠에서 깨고 그러시나요? 

H:그건 백일 전에요. 요즘엔 자다가 깨면 보통 아빠를 찾진 않아요. 아빠는 (웃음) 나중에 결혼하면 알겠지만 아빠는 항상 2순위. 엄마를 절대 이길 수 없어.      


      

I:딸인데도 그래요? 

H:네. 급하면 엄마야 엄마. 엄마가 자기를 혼낼 때 아빠를 찾아요.      


아빠아아



동시 웃음          



그런데 아빠 가요. 그 아빠가 사랑할 수 있는 한계도 엄마보다 낮은 거 같아요. 옆에서 보면 엄마가 훨씬 더 애기를 사랑하는 거 같아요. 10달 동안 품고 있었잖아요.       


         


I:당신은 가족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나요?

H:네. 가장 많이 위로해주는 사람은 와이프고요. 와이프의 가장 좋은 점은, 자기 남편이 세상에서 최고인 줄 아는 그런 이상한 사람이고. 딸한테도 위로를 많이 받죠. 어머니한테서 위로를 받는 거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 딸이 요즘 "아빠 힘내세요"를 부르고 다니는데요. 되게 힘든 날이 있었는데. 아이를 태우고 집에 가는 길에 음악을 꼭 틀어줘야 해요. 그때 "아빠 힘내세요" 동요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때 되게 위로가 됐었어요. 요즘은 딸이 더 위로가 되는 거 같아요.         



I:혹시 아버지의 역할이 버겁다고 느껴졌던 적은 없으셨나요? 

H:둘째 낳으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아직까진 버겁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아기 낳을 때 처음엔 힘들었죠. 아무것도 모르니까. 와이프도 처음이고 나도 처음이니까 울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래도 힘들 때는 있었지만 버거웠던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I:자식의 웃는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인가요? 

H:오늘 아침? 항상 웃고 다녀요.        


        

I:당신의 아버지가 웃는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인가요?

H:하.. 아버지 못 본 지 너무 오래됐다. 저희 아버지는 주말에만 집에 오시거든요. 울산에서 일하시는데.. 아버지 웃는 얼굴은 저저번 주에 본 거 같아요.      


I:덴마크를 향해 웃으시는걸요?

H:제가 가면 별로 안 웃으시고요. 손녀를 보고 웃으시죠. 


동시 웃음        


H:손녀가 할부지~ 할부지~ 하면 웃죠. 애기를 되게 좋아하시거든요.           



I:어떤 아버지세요?

H:무뚝뚝한. 전형적인 경상도 분이시죠. 책임감 많으시고. 표현도 거의 안 하시고. 남들한테 피해 잘 안주려고 하시고. 그런 분이세요.           



I:아버지랑 많이 닮으셨을 것 같아요.

H:네. 정말 닮았어요 저희 아버지랑. 시골이 전라도 부안인데 동네를 걸어가잖아요. 어릴 때 아버지랑 걸어가면 '니는 네가 아무 말 안 해도 쟤 아들이다'라고 똑같다고 막. 저의 딸도 저랑 닮았으니까 할아버지랑 닮았단 말도 가끔 들어요.  


       

I:성격도 많이 닮으셨나요? 

H:성격은 많이 안 닮았어요. 난 성격은 누구 닮았는지 모르겠어. 성격은.. 안 닮았어요. 


저희 아버지는 약간 남성성이 더 강한 성격이고, 저는 여성성이 강한 성격인데. 어머니는 또 안 그렇거든요. 이게 누구 성격인지 모르겠어요. 확실히 성격은 안 닮았어요. 근데 가면 갈수록 비슷해지는 거 같아요. 가면 갈수록 말수가.. 저도 말을 하기가 너무 싫은 거예요. (웃음) 


저희 아버지가 말씀이 없으시거든요. 말할 때는 많이 하는데. 저희 아버지는 어머니가 오늘 물어보면 내일 대답하시는 분이니까. (웃음) 가끔씩 제가 말수가 줄어가는 걸 느낄 때, 아버질 닮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I:그러면 아버지와 함께 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H:아버지가 나 초등학교 때 운수업을 하셨거든요. 그때 대전 엑스포 공사장에 아버지 차를 타고 갔었어요. 


아버지 화물차에 아버지랑 나랑 둘만 타고 며칠 간 전국일주를 했어요. 물론 아버지가 짐을 싣고 다 내려주는 곳들이었지만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고. 엑스포 개장 전에 들어도 가보고. 엑스포 마스코트 모르죠? 꿈돌이라고. 





쟤가 꿈돌이구나 하고 보기도 하고. 서울도 아마 그때 처음 갔던 거 같아요.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그래도 그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I:장남으로서의 어려움, 부담, 가족의 기대 이런 건 없으셨나요?

H:동생이 잘 안 풀렸으면 그랬을 텐데. 저나 동생이나 남들과 비슷한 나이에 직업을 얻고, 남들과 비슷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되게 평범하게 살고 있어서. 그런 걸 별로 느껴본 건 없어요. 


뒤늦게 알고 나서야 집안이 힘들었구나 하고 느낀 게 군대 갔을 때 아버지가 몇천만원 손해를 본 적이 있으신데 그걸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말씀하셨어요. 힘든 걸 절대 말 안 하셨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크게 장남으로서의 부담을 느껴본 적은 없지만, 앞으로는 그런 게 느껴질 때가 있겠죠? 앞으로 부모님 건강이 안 좋아지시거나 하시면.    



            

I:아버지가 된 지 2년 반쯤 되셨는데 지금까지 내가 아버지로서 이건 정말 잘했다 하는 게 있으신가요? 

H:그냥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낸 게 잘했다고 생각해요. 딸 하고. 저희 장인어른이 되게 자상하신 분이에요. 표현도 되게 잘하시고 저희 아버지랑 성격이 완전 반대거든요. 처음엔 적응이 잘 안됐는데. 저희 와이프 철학이 아빠랑 딸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야 된다는 게 있어요.


그래서 와이프가 한 번씩 주말에 저랑 딸이랑 둘이 남겨두고 1박 2일로 놀러 갔다 오고 하는데. 처음엔 되게 열 받고 힘들어 죽겠는데 (웃음) 지나고 보니까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서. 목욕도 웬만하면 제가 다 씻기거든요. 


여튼 시간을 그렇게 많이 보내는 거요. 2년 반 동안 성장해가는 걸 뒤에서 받쳐주고 있는 거요. 아직까지는 시간을 많이 보낸 거 말고는 특별히 잘한 게 있다고 생각은 안 드네요.           





그냥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낸 게 잘했다고 생각해요. 딸 하고.








I:당신은 자식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H:자상한 사람? 그렇게.. 그렇게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아빠들은 되게 불행한 거 같아요. 대화가 없는. 자식이 고민이 있을 때.. 부모한테 절대 의지하지 않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 사람의 아빠는 되게 불행한 거 같아요. 


고민이 있어도 물론 아빠한테 제일 먼저 말하긴 힘들겠죠. 친구도 있고 엄마도 있으니까. 근데 저는 아이가 고민이 있을 때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중학교쯤 되면 애가 사춘기를 겪게 되잖아요. 그때도 자상한 아빠, 친근한 아빠였으면 좋겠어요.   










I:아이를 처음 봤을 때 무슨 감정이 들었나요?

H:그 감정이 잘 생각이 안 나요. 처음에 느낀 감정은 음.. 다들 막 운다고 그러잖아요. 나는 눈물은 안 나더라고요. 약간 '얘가 내 딸이라고?' 이런 생각. 처음엔 신기했어요. 막 바로 사랑스럽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처음에 보면 안 예쁘거든요. 그런데 신기했어요. 네. 신기한 감정이었어요. 

     

둘째가 벌써 두렵네요. 그걸 다시 겪어야 하다니. 그 불면의 밤을. (웃음) 




          



         

I:아버지가 되면 무엇이 가장 좋은 것 같나요? 

H:행복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아이 가지는 걸 되게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경제적인 이유도 있고. 사실 저도 지금의 대출금을 생각해보면 둘째를 여유롭게 가질만한 상황은 아닌데. 그냥 어쨌든 와이프랑 낳고 보자고. (웃음) 


물론 모든 사람이 애를 놓고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꼭 두려워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물론 포기해야 되는 것도 많고 경제적인 것도 힘들고 그렇지만. 부인과의 관계에서만 느끼던 그런 행복감에서 총량이 확 늘어나요. 전엔 느낄 수 없던 감정들도 느껴지고요.  또 다른 행복에 이르는. 뭐랄까 그 원천이 생겼다고 할까나? 그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           



I:나중에 아이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세요? 

H: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하면 벌써부터 엄마가 좋다고 하는데. 더 물어볼게 있을..(웃음)          



동시 웃음         


 

아이에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뭔지랑, 아빠가 제일 무서웠을 때가 언제였는지.. 그걸 물어보고 싶어요.           



                  



덴마크가 전하는 마지막 한 마디


덴마크는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이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행복을 맛볼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덴마크와 평소의 친분이 있는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얕고, 일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깊은.. 그런 애매한 관계에서 만난 사이인데요. 


덴마크가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덴마크와 두 번째 보던 날, 저는 덴마크의 딸과 형수님도 함께 만날 수 있었답니다. 


행사장의 한편에서 딸에게 과자를 가져다주며 웃음을 짓고 있는 덴마크를 보며 

나중에 꼭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덴마크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이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행복을 맛보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고 했지요. 



작은 표현의 차이이지만 

아버지가 되는 것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 아이와 함께 채워지는 시간과 역할로서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덴마크는 좋은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덴마크는 새로이 태어날 둘째와 함께 그 행복을 계속해서 맛볼 것 같아요. 


덴마크의 두 아이가 모두 사춘기 중학생이 되었을 때 

십여전의 이 짦은 기록을 통해 

덴마크가 바랬던 것처럼 아버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터놓을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꼭 그랬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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