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3. 변혁의 시대, 지역현안도 챙겨야

국제신문 옴부즈맨칼럼

by 바람꽃 우동준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70524.22030191144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와 정치를 분석하는 글에서 많이 접했던 개념이 있다. 임혁백 교수의 2014년 저서 제목이기도 했던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다. 이 개념은 식민지 경험과 군사독재, 민주화를 겪은 한국사회에서, 동시에 충돌하는 대한민국의 전근대성과 탈근대성에 대한 시선을 담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이어진 대선정국과 문재인 정부의 임기 시작에 맞춰, 국제신문의 보도도 청와대와 중앙정치에 초점을 맞춰졌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마땅히 보도되어야 할 것이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점에, 동시에 일어난 일이지만 기사로 다뤄지지 않아 동시성을 잃은 여러 사안에 주목했다. 이런 아이러니를 언론에 의한 '동시성의 비동시성'이라 칭하려 한다.

첫째는 비서에 대한 비동시성이다. 5월 10일부터 국제신문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비서관들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 특히 이정도 총무비서관에 대한 보도는 7급 공채 출신의 배경과 그 인선에 담긴 정치적 의미까지 다루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있었던 부산지역 언론사의 성차별적 비서채용에 대한 보도는 다루지 않았다. 부산의 한 지역 언론사는 여성 비서를 채용하면서 '결혼 예정 시기, 신장 165㎝ 이상'과 같은 성차별적 조건을 내걸었고, 그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고용차별이자 현행법 위반"이란 지적을 받았다. 임기 내 남녀 동수 내각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와 조현옥 인사수석의 임명에 대해선 '파격'이란 수식어까지 붙어 보도됐지만, 동시에 있었던 '국가인권위원회법' 평등권 침해 사례이자 성차별적 비서채용을 한 지역 언론사에 대한 보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둘째, 11일 자 8면의 기사를 통해선 문재인 정부의 경제공약에 대한 보도가 이어진다. 재벌개혁에 대한 이슈와 10조 원의 일자리 추경, J노믹스와 경제민주화라는 수식어까지 담겨 보도됐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이와 동시에 있었던 부산은행의 임직원에 대한 1%대 초저금리 대출 특혜는 다뤄지지 않았다. 이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14년 19대 국회의 민병두 의원이 제공한 '은행·보험회사 임직원 소액대출 현황'에 의해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었기에 지역은행에 대한 예리한 시선을 국제신문은 견지하고 있어야 했다. 다시 한 번 공개된 2017년의 자료에선 부산은행을 포함한 6개 지방은행 임직원이 저금리 특혜대출을 받았다는 것이 드러났고, 특히 부산은행의 임직원 대출이 가장 많았지만 이와 관련된 보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국제신문은 분권, 개헌, 지역 현안 등 새로운 정권에서 펼쳐지는 이슈들에 대해 부산시와 부산상의의 의견을 전달했다. 이 모든 것이 또한 필요하고 의미 있다는 것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부산의 이슈들이 충실히 전달되지 못했다면 그 빛이 바래지는 건 자명한 일이다.

4월 14일 '지방분권의 골든타임'이라는 사설에서 "'여기는 지방이니까'라는 이유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평등하게 누려야 할 것들을 서울에 양보하고 그 권리를 주장할 생각조차 못 했다"는 문장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평등하게 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내게 있어 그것은 오늘날 삶에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안에 대한 정보이며 시민의 알 권리다. '서울에 양보' 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슈의 중심, 보도의 경중, 사안의 우선이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주목해야 할 지역의 목소리는 다양하다. 부산시의 '고령친화도시 구현을 위한 노인복지 기본 조례'의 제정이 무색하게도 5월 13일 2면의 기사를 통해 부산의 노인복지서비스 질은 전국 최하위라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청년들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청년 기본조례 제정에 당사자가 참여할 기회와 폭이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를 보냈지만, 이런 목소리가 부산에서 공론화되기 전 조례는 19일 제정되었다. 현장의 목소리에 더 많이 집중하고 그 원인을 다루어야 한다. 지금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루지 않는다면 결국 흘러간 일이 되고, 알 권리를 잃은 시민은 그렇게 참여의 기회를 잃게 된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1930년대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개념을 처음 구축하며 "모든 사람이 동일한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모든 사람을 동일한 현재에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언론과 끈질긴 보도에 있다고 믿는다. 국가적 이슈와 지역의 현안 모두를 놓치지 않는 지역 정론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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