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4.버스 ‘졸음운전’ 허벅지 꼬집는다

by 바람꽃 우동준

버스 ‘졸음운전’ 허벅지 꼬집는다고 없어지겠나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70719.22030000491

무더운 날씨에 지쳐 조금 이른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국내 여행을 계획하는 국민 중 84%가 자가용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1가구 2차량이 흔한 현실이니 자연스러운 결과라 생각되다가도, 작년의 여름이 그러했듯 고속도로 곳곳에서 이어질 차량정체를 생각하니 아득해지기도 한다.

대한민국 고속도로가 상당히 촘촘하게 짜여 있다고는 하나, 휴가철 고속도로의 정체는 매년 반복되어 일어난다. 그뿐만 아니라 똑같은 사고도 매년 마주하게 된다. 1년 전 7월 17일을 나는 기억한다. 영동고속도로에서 강릉으로 피서를 갔다 돌아오던 승용차와 고속버스가 추돌하여 20대 청춘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사의 졸음운전 탓이었다.

그리고 1년이 흘러 지난 7월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고속버스와 승용차 7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역시 기사의 졸음운전 때문이었다. 바로 하루 뒤에는 영동고속도로에서 고속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져 반대편 승용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연이어 발생한 사고와 참혹한 현장의 모습에 시민들은 경악했다.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졸음운전이 확실해지며 운전기사의 전날 근무시간이 18시간이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사고가 있기 4일 전엔 15시간 근무를, 3일 전엔 18시간 근무를 휴식 없이 이어갔다는 것도 전해졌다. 어느새 ‘졸음운전’이란 단어는 ‘과로운전’으로 바뀌었고, 국제신문의 사설도 그와 내용을 같이했다. “위험성을 알면서도 졸음운전을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운전사 책임이다. 그러나 대형버스나 대형 화물트럭의 경우 배차시간이나 운송시간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 탓도 크다.” (7월 12일 자 31면)

공공 서비스에서 드러난 ‘고강도의 노동시간’은 비단 교통부문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7월 6일 안양우체국 앞에서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집배원의 분신 사망 사건이 있었다. 현재 집배원들은 월평균 57시간의 연장 근무를 소화 중이며, 하루 평균 1000통의 우편물을 배달해 내야만 하는 실정이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 근로기준법 59조에 의하면 일반 시민이 불편함을 겪을 수 있는 특례 업종의 경우엔 노사가 합의하여 업무 시간을 더 늘릴 수 있다고 한다.

우린 왜 몰랐을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고, 감시와 문제 제기가 치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그들이 냈던 목소리다. 고속버스 운전사는 휴식시간 요청을, 집배원은 근무지 변경을 회사에 요청하였지만 모두 묵살당했고, 그런 한 차례의 거절과 차가운 무관심이 있고 난 뒤 사고는 벌어졌다.

그렇다면 부산의 상황은 과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국제신문 6월 16일 자 8면엔 공공운수노조의 기자회견 내용이 담겨 있다. 버스 기사의 졸음운전을 예방하기 위해 휴식시간을 개정한 법규가 존재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고, 부산·경남의 버스 기사 또한 하루에 3, 4시간을 자며 운행을 이어가기에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시민이 이용하는 지하철은 또 어떤가? 2월 당리역 환기구 충돌 사고, 5월 부산대역 신형 차량 추진 장치 사고, 6월 3호선 전차선 절단 사고 등 지하철의 안전에 대해 깊이 있는 점검이 필요하다고 운전사들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들어야 할 목소리가 바로 여기 있으며 지역 언론의 책임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산 시민의 발이 되어주는 대중교통의 노동 강도와 안전에 대한 치밀한 보도, 끈질긴 문제 제기를 언론이 앞장서 이어가는 것이 더없이 중요하다. 부산지역 집배원의 노동 환경은 또한 어떠한지, 하루에 집배원이 감당해야 하는 양은 어느 정도인지 주목하고 보도해주길 바란다. 우리 사회에서 고강도의 노동시간이 강요되고 있는 곳은 또 어디 있는지 그 실태를 알려주길 바란다.

도로 위의 폭탄이라 지칭되었던 졸음운전은 운전사가 허벅지를 더 세게 꼬집어야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구조에서 오는 실수는 반복되지 않아야 하며, 우리는 무관심을 극복하여야 한다. 공론화의 시작과 불행의 끊어짐이 지역의 언론을 통해 시작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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