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의 주요 배경은 '공교육의 정상화'다. 정상화란 단어 자체에 이미 현재 상황이 비정상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고, 문제가 사전 전제되어 있다. 현재 우리의 교육 상황은 학생 개개인의 특성은 무시하고, 입시 위주의 경쟁 시스템으로 교육 프로그램이 짜여져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의 목적이 동년배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기에, 학생 개개인들과 각 가정은 또래와의 교육에 있어 양적 차이와 질적 차이를 두는 것으로 승리의 기본조건을 충족시킨다.
공교육은 제도권의 인증을 받는 최소요건이 되어버렸고, 실제의 교육은 제도권의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부를 수 있는 선생의 교육 수준이 달라지고, 성과를 내겠다는 학생 개인의 의지보다 부모 자본의 유무가 더 큰 변수가 되었다. 공교육이 가진 한계점은 명확했다.
그래서인지 19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고, 4년 예외기간을 두어 이제 시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책 해석의 방향에 따라 서로 의견이 다르기 시작한다.
- 공교육정상화 특별법을 살펴보면 제8조 (선행교육 및 선행학습 유발행위 금지 등)에 관한 조항이 있다. 1항의 내용은 『학교는 국가교육과정 및 시도 교육과정에 따라 학교교육과정을 편성하여야 하며, 편성된 학교교육과정을 앞서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서는 아니 된다. 방과 후 학교 과정도 또한 같다.』로 기술된다. 여기서 방과 후 학교 과정도 같다는 지점에서 오늘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현재 공교육 상 영어교육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의무과정으로 들어가기에, 초등 3년 이전의 교육은 선행학습으로서 공교육 정상화법에 저촉된다. 하지만 방과 후 학교과정이 아닌 영어학원이나 전문 영어유치원에서 학습하는 경우엔 해당하지 않는다. 공공교육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교육 정책이기에 얼핏 정책 대상이 다수의 학부모와 학생들인 것 같지만, 실상은 60만원이 넘는 혹은 백여만이 넘는 영어유치원에 보낼 자본이 되지 않아 학교 방과 후 영어교육에 의지하는 다수의 서민 가정이다. 학부모들이 아이의 선행학습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교육 시스템에 참여했을 때, 내 아이가 차별받지 않고 뒤쳐지지 않게 위해서다. 누구에게? 매월 수백씩 사교육비를 지출할 수 있는 가정의 아이들에 비해.
그렇다고 해서 맞벌이가 보편화 된 사회에서 부모가 직접 아이의 영어교육을 책임질 수도 없기에, 학교 후 영어교육에 의지했던 학부모들로부터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정책은 차별적인 정책이고, 근시안적인 정책이란 비판을 듣기에 충분했다. 방과 후 영어교육이 선행학습인지 먼저 재보자고 들이대는 정부의 잣대가 섬세하지 못했고, 너무 투박했다. 결국엔 3월부터 시행한다던 정책이 2학기로 미뤄지기도 했다. 혼란의 댓가는 아이들의 영어교육에 마음을 졸이는 학부모가 온전히 져야되는 몫으로 남고 말이다.
오늘의 이 정책은 사교육으로 격차가 드러난 아이들의 학습수준을 공교육이 전혀 좁히지 못했다는 교육부의 자기반성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반성엔 교육부 스스로 지금의 문제를 만들어냈음을 깨닫는 통찰은 없는 듯 하다. 서열을 매긴 대학에 누가 더 많은 아이들보내는 것으로 스스로의 교육을 평가했으니, 매 년 변하는 입시요강에 따라 유연하게 맞춰가는 사교육의 시장확대와 학생들의 유입을 어찌 막을 수 있었겠는가. 과외와 전문학원으로 어느 정도 공교육의 부담을 덜어 내고 있을 때, 교육의 중심은 사교육으로 이동 되었고 공교육은 학생들을 성적을 인증하는 국가기관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육정책은 실험적으로 다가가서도 안 되고, 성급하게 다가가서도 안 된다. 특히 손 대기 쉬운 영역부터 시작해서도 안 된다. 정책에 의한 영향에서 삶의 탄력성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와 대상을 고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다. 그에 따르면 방과 후 학교 과정에 대한 제재는 너무 쉬운 영역이다. 어렵더라도 사립 유치원과 영어 유치원, 대형 학원과 거대하게 조직된 사교육 시장에 대한 접근으로 첫 삽을 뜨는 것이 옳지 않을까.
진보적 의제를 가지고 교육정책을 만드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우려가 몇 차례의 진보정권을 거치며 학습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를 향한 보다 장기적이고 안정감있는 교육정책 제시가 필요하다.
글쓴이 우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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