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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에서 코코까지 - 기억과 길, 그리고 선택

by 바람꽃 우동준

주로 보는 건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해주는 블록버스터이거나, 어느 정도 재미를 보장하는 상업영화들입니다. 쉽게 마블의 영화나 위대한 쇼맨과 같은 영화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영화를 보고 난 후 개인적인 고민을 더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작품성이란 것이 제겐 너무 어려운 가치였고, 감정적인 흔적- 여운을 너무 많이 남겼던 터라 공포영화만큼이나 예술영화들에 대한 공포심도 있고요.


제게 영화는 일상의 흔적을 잠시나마 지우는, 판타지의 세계로 잠시 날 이끌어주는 도구이고 우일한 도피처이기도 합니다. 우연히 영화 1987과 애니메이션 코코를 하루에 몰아서 보게 되었습니다. 1987은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는 동료들과 함께- 애니메이션 코코는 소중한 삶을 나누는 가족들과 함께. 서두에 여운을 남기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두 영화는 예상과 다르게 제 일상에 너무 많은 흔적을 남기고 크레딧이 올라가 버렸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울었고 그래서 아직도 얼얼한 4시간의 기억. 조금 시간을 두고 기억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아 이제야 키보드에 손을 올립니다. 영화 1987과 코코를 본 저의 이야기입니다. 글을 쓰다 보니 편하게 쓰고 싶어 져서 친구에게 말하듯이 적었습니다. 주제넘는 걸지도 모르지만 1987년의 청년, 나와 같은 스물몇 년을 보내는 보통의 존재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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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



기억하고 싶은 기억이 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잖아. 또 이런 경우도 있고. 기억해야만 하는 기억과 기억하지 않아야 할 기억. 영화가 끝난 후 천천히 내 기억들을 꺼내보았어. 내가 기억해야 하는 건 뭐였지, 또 내가 잊어야 하는 건 뭐였더라.


1987과 코코가 이어지는 첫 번째 다리는 기억이 아닐까 싶어. 영화 1987은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무엇인지를, 코코는 왜 그 기억을 잊어선 안되는지를 말해줬달까. 내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건 미안하고 고맙고 두려워서. 시대적 사명이 대체 뭐길래 네가 그렇게 참아냈을까. 얼마나 답답하고 분하면 가족의 걱정을 참아가며 너는 또 나가야만 했을까. 나라면 그랬을까? 나였어도 그랬을 수 있었을까?


참고 참다가 더 참지 못하고 흐느꼈던 부분은 문익환 목사님이 수많은 열사들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를 때. 부끄럽게도 난 목사님이 외치는 분들이 누구신지, 어떤 삶을 사셨던 분들인지 잘 모르겠더라고. 몰라서 울 수밖에 없었어.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었는데 막 터지더라고.


코코에서 한 망자가 오렌지 색 빛으로 휩싸인 후 사라졌을 때, 헥토가 말했어. 이승에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으면 망자의 땅에서도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고. 그땐 진정한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진짜 무서운 건 내가 누구를 잊었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게 아닐까. 미구엘도 자신이 그렇게 찾던 고조할아버지를 앞에 두고도 알지 못했던 것처럼, 내가 잊은 존재가 누군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는 게 섬뜩하고 무섭더라고. 영화 제목이 왜 미구엘이 아니라 코코였을까 생각해봤어. 어쩌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기억을 찾는 사람보다, 기억을 지키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 그게 아녔을까.


엄중했던 시기였고, 너무 무서운 시기였고. 그때 그 아래에서도 자기가 만났던 사람들, 함께했던 사람들, 그들이 했던 많은 말들과 행동들을 끝까지 지켜가려 했던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미구엘과 코코가 말해주는 것 같았어.







2. 길


그 날이 오면이란 노래가 끝난 후, 이한열 열사를 연기했던 강동원과 연희를 연기한 김태리가 함께 부르는 '가리워진 길'이란 노래가 나왔어. 내가 워낙 좋아하던 노래여서. 혼자 따라 부르기도 했고. 그런데 가사가 왜 그렇게 슬프고 아프게 들리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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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이끌려가듯 떠나는 이는. 제 갈길을 찾았나...


손을 흔들며 떠나보낸 뒤..


외로움만이 나를 감쌀 때...


그대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코코에서 미구엘은 음악을 하고 싶어 했어. 하지만 가족들이 미구엘에게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말했던 건 구두 장사였지. 미구엘은 그럼에도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노래고, 꿈은 유명한 가수가 되는 거랬어. 만화사랑 동아리에 들었던 이한열 열사가 정말 하고 싶어 하던 건 뭐였을까. 열사의 꿈은 뭐였을까. 시대가 가라고 소리쳤던 길 말고. 그 시대에 걸어야만 했던 길 말고. 그냥 스물둘의 청년. 그분이 나 이거 해보고 싶다고 말했던 건 뭐였을까 궁금해졌어.








3. 선택


개인적인 약점이랄까. 딸을 사랑하는 아빠, 헥터가 코코에게 Remember Me를 부르고 아가인 코코가 조그마한 손으로 아빠를 만지며 함께 음을 맞출 때. 잊고 싶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서 힘들더라고.


기억이란 건 결국 선택이란 나의 영역에서 결정되는 것 같아. 이것을 잊겠다는 선택과 함께 이것은 끝까지 잊지 않겠다는 선택까지. 때로는 요청을 받기도 하고 말이야. 잊지 말아달라는 요청에서 잊어달라는 요청까지.


어떤 요청을 받고, 그래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감정과 태도가 변하고 그렇게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 그래서 더더욱 누가 나에게 어떤 요청을 보냈는지 보단, 조금이라도 내가 덜 아픈 쪽으로 선택하는 것이 맞는 것 같고. 기억하겠다는 건 꽤나 무겁고 힘든 일이 될 테니까.


기억해야 하는 것을 다룬 영화와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다룬 영화를 함께 봤지만, 기억하지 않겠다는 선택도 기억의 이유를 넘어선 망각에 대한 선택도 난 각자에게 맞는 답이 있다고 생각해. 다만 앞선 사람들의 선택과 요청은 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직시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Remember Me (기억해줘)


기억해 줘. 내가 어디에 있든.


기억해 줘. 슬픈 기타 소리 따라.


우린 함께 한다는 걸 언제까지나.


널 다시 안을 때까지.


기억해 줘.




기억해 줘. 지금 떠나가지만.


기억해 줘. 제발 혼자 울지 마.


몸은 저 멀리 있어도.


내 맘은 니 곁에.


매일 밤마다 와서. 조용히 노래해줄게.


기억해 줘. 지금 떠나가지만.


기억해 줘. 내 사랑 변하지 않아.


우린 함께 한다는 걸 언제까지나.


널 다시 안을 때까지.


기억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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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우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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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oodongjoon.com/37 [우동준의 어제와 같은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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