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 자리로

블루 아워 -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by 바람꽃 우동준

- 뜻밖의 귀환


나는 창백해진 얼굴로 승희에게 말했다.

“대전 차 다 매진이라는데?”

“어? 니 그럼 어떻게 가는데? 내일 새벽에 출발한다 해도 대전에서 논산까지 1시 안에 갈 수 있겠나?”


뭐지. 어떡하지.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버스표가 없다니. 아니 내가 군대를 간다고 하는데. 내가 군대를 가겠다고 하는데 표가 없다니.


“일단 잠시 나가자. 나가서 생각해보자.”


이제 터미널 밖에는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고, 내일 논산으로 가야 하는 나는, 부산 노포동 버스 터미널 앞 벤치에

그것도 밤 9시에 앉아 있다.


이건 분명한 큰일이다.





-거짓말


“이제 어떡할 건데, 동준이.”

“택시 타고 대전 가면 얼마나 나올라나?”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은 노포동 버스터미널 정문 앞 계단. 계단 밑에는 부산에 도착한 사람들을 태우려는 택시들이 불을 켜고 줄줄이 서있다.


막막하다. 시간은 이제 밤 10시를 향해 가고 있고, 나는 내일 논산으로 가야 한다.


그러다 불현듯 스치는 생각.


“입영버스 그거 끝났으려나?”

“어? 잠만 내 검색해볼게-”


전화번호를 알아내 하나씩 전화해보았다.


“여보세요? 저 내일 논산 입대인데 자리 있나요?”

“아 죄송한데 내일 제가 논산 입대인데 성인 두 자리 남아있나요?”

“네 여보세요? 다름이 아니고 제가 내일 입대인데....”


없다. 하나같이 없다. 논산에 무슨 전부 부산 놈들만 가는 가 보다.

이런 망할. 젠장.


“어떡하지. 그냥 택시 아저씨랑 쇼부보까?”

“그럼 나는? 갔다가 저거 타고 내려오라고? 에이.. 동준이 그냥 집에 갈래?”


집..? 집...!

뭔가가 떠올랐다. 과거의 무언가 더러웠던 기억이.


때는 바야흐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어 모두가 들떠있던 2011년도의 1월. 우리 동네 큰 길가에 새로운 간판이 하나 붙었다.


-O별 여행사-

그 밑에는 노란색 글씨로 (군입대 수송 전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안 그래도 올해 입대하는 내게,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의 순간에 보이는 간판이 저거라니. 굉장히 불쾌해하며 지나갔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승희! 지금 O별 여행사 한번 검색해보자. 망미동에 있는 거.”

“망미동? 아~ 너네 동네 그거 군대 그거?”

“어어- 빨리 검색 좀.”


전화번호를 알아냈고 이어 전화를 했다. 연결음이 들린다. 심장이 떨린다. 이대로 집에는 결코 돌아갈 수 없었다.


“네- O별 여행사입니다.”

“저 늦은 시간에 죄송한데요. 혹시 내일 논산 가는 거 버스 자리 있을까요?”

“내일이요? 어... 잠시만요. 몇 분이 가시는 거세요?”

“성인 두 명이요. 하나만 있어도 돼요.”

“음. 아! 자리 딱 두 자리 있네요. 내일 교차로 앞 주유소에서 저희 여행사 관광버스 타시면 됩니다. 요금은 버스 기사분께서 받으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럴 수가. 자리가 남아있다니.


“승희야 우리 갈 버스 있겠다.”

“진짜로? 다행이네. 어디서 타면 된다는데?”

“우리 집에서 조금 밑에 있는 주유소.”

“응... 어?”


결국 우리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작별인사를 했던 나의 동네로 되돌아오고야 말았다. 어둡고 추운 일요일 저녁이었다. 저기 언덕 위로 내 성당의 십자가가 밝게 빛나고 있고, 성가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울컥했다. 마음을 굳게 먹고 끝이라 여기며 떠났던 만큼, 익숙한 내 동네를 다시 보니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집에 안 가봐도 되겠나?”

“아이다. 됐다. 다시 들어가면. 내 진짜로 나오기 힘들 것 같다. 이대로 갈란다.”


정말 자신이 없었다. 다시 엄마와 동생을 보면 분명 마음이 약해질 게 뻔했다. 어차피 지금 봐도 또다시 작별인사를 해야 될 테니까. 작별 인사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


승희와 나는 집을 지나 교차로 앞 미용실에 들어갔다. 원래 계획은 대전 최고의 미용실에서 멋지게 머리를 자를 생각이었으나, 지금 나는 집 앞에서 급하게 머리를 자르고 있다.


짧은 머리. 이제 정말 내가 군인이 된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어색하진 않다. 이게 앞으로의 내 모습일 테니까.


승희와 근처 PC방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싸이 미니홈피에 들어가 친구들이 입대하기 전날에 남겨둔 글을 클릭했다. 그리고 나도 친구들과 동생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짧은 인사말들을 남겼다.


'이제야 내도 간다. 싸지방 가서 연락할게. 곧 다시 연락 하마. 건강해라. 휴가 때 보자.'

'오빠야 간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있을 거라 믿는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고맙고 미안했다 동생아.'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이게 뭘까 싶다.

담배를 두 갑이나 사서 들어왔는데도 벌써 다 피워 간다.


재떨이를 보니 내가 핀 담배들로 어느새 수북하다. 왜 그럴까. 오늘따라 밤이 길다.


위이잉-

전화가 왔다.

폴더를 열어 보니 엄마의 영상통화다.


'어떡하지?'


"여보세요?"

반가운 엄마의 얼굴이다. 동생과 고양이도 보인다.


"아들~ 벌써 도착했어? 머리도 잘랐네?"

"어.. 어! 생각보다 빠르네. 대전도 별 거 없다, 엄마."

"대전은 안 춥니? 위에라서 추울 건데.. 얇게 입고 가서 어째.."

"안 춥다. 똑같지 뭐. 승희랑 게임하다가 내일 아침에 논산 넘어 갈려고.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들어가기 전에 또 전화할게요."

"그래 아들. 마지막 잘 놀고. 멋있다. 내 아들 사랑해."

"예. 나도요. 내일 또 전화할게요 엄마."


입대 하루 전.

어쩔 수 없이 한 거짓말.

집 앞 PC방이 대전이 되어버린 지금.


엄마에게 끝까지 사랑한단 말이 안 나온다. 사랑한단 말은 왜 그렇게도 어려운지.

핸드폰을 던져 놓고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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