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가 내가 아닌

블루 아워 -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by 바람꽃 우동준

-상상 그 이상


연병장에서 가족들과 눈물겨운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스탠드 뒤쪽으로 돌아 이젠 각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왔다.


스탠드 끝까지 와 마지막까지 얼굴을 보려고 하는 어머니들을 향해 말했다.

“이젠 가족 및 친구 여러분들은 댁으로 귀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로써 모든 입소행사가 끝이 났습니다. 장병의 이름을 부른다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는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그저 앞사람을 따라 걸어갔고 긴 줄의 행렬이 끝나는 곳엔 무서운 기운의 빨간 벽돌 건물이 있었다. 빨간 벽돌 건물 앞엔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군인이 서있다. 그리고 그 옆엔 검은색에 빨간 챙의 모자를 쓴 군인들이 일렬로 서있다.


다들 모자를 눌러써 눈이 보이지 않는다. 말로만 듣던, 예능에서만 보던 조교인가.

가운데 있던 군인이 말했다.

“조용히 해-”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분명 사람은 좋게 말할 때 들어야 하거늘 우린 그러지 못했다.

“앉아-”


앉으란 말을 들은 앞줄의 몇 명만이 느릿느릿 앉았고, 같이 온 친구랑 떠든다고, 혹시나 스탠드에 가족이 보이나 뒤돌아 본다고 못 들은 뒷줄은 멀뚱멀뚱 서있었다.

이어 벼락같은 두 마디.


“앉아!!!”


그 소리에 놀라 어리둥절 하며 앉았지만 그 행동마저도 느리고 말았다.

“앉아- 일어나- 앉아- 일어나-”

시작이다.


스탠드를 돌아 여기까지 3분, 가족들과 인사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시작되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그건 우리만의 사정일 뿐.

그들은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라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그리고 오른쪽 어딘가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아이씨...”


안 돼.

난 그들이 저 소리를 듣지 않았길 간절히 바랬지만 조교는 웃으며 말했다.


“아이씨~? 앉아! 일어나! 앉아! 앉으라는데 일어나는 새끼 뭐야? 정신 안차려?”

서럽다.


30분간의 얼차려가 끝나고 술 냄새가 섞인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딱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라. 자기가 입대할 때 주특기를 신청한 모집병이다, 하는 사람은 왼쪽으로

아니다. 나는 그냥 입대일만 받아 온 단순 징집이다 하는 사람은 오른쪽으로. 5분 준다. 그리고 저기 뒤에 노란색으로 염색한 새끼처럼 자기가 머리를 안자르고 들어왔다는 놈하고 염색한 너 내 앞으로.”


우리는 모두 서둘러 움직이는 듯했으나 소란스럽기만 할 뿐 일사불란하게 모여지지 않았다.

다시 이어진 얼차려.


모집병과 징집병으로 나뉜 우린 간단히 분류가 되어 막사란 곳으로 이동했다.

막사에 들어가 내가 묵을 생활관을 처음 배정받았다.


생활관은 4소대 2 생활관.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다.


차디찬 시멘트 벽에 온기 하나 없는 생활관.

다 같이 눕는 침상에 연두색 관물대 까지.


처음 보는 것이지만 익숙했고, 그래서 소름 돋았다.

내 앞과 내 옆이 모두 동일한 풍경.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우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죄인 마냥 고개를 푹 숙인 채 자기 관물대 앞에 서있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나는 군인이 되었고, 이제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들어온 이상 돌아갈 곳은 없다.

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




- 군복을 입다.


이젠 이 침상이 내 침대고 이 관물대가 내 옷장이자, 내 방이다.

친구들에게 미리 받은 편지 내용으론 첫날엔 서류를 쓰는 거밖에 없다던데 뭘 쓴다는 건지 대체.


쾅-


긴장해 앉아있는 우리들 사이로 모자를 푹 눌러쓴 군인이 들어왔다.

그 군인은 우리 생활관 침상 사이를 또각또각 걸어 다니며 말했다.


“육군훈련소 입소대대에 온 걸 환영한다. 여기는 입소대대이며 너희는 이 곳에서 삼일 간의 간단한 신체검사 및 특기 분류를 하게 될 것이고, 사일째가 되는 목요일에 교육 대대로 이동할 것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삼일이다. 삼일 동안 내가 얼굴 붉히게 되는 일은 없길 바라며, 너희들이 통제만 잘 따라 준다면 불편함 없는 입소대대 기간이 될 것이다. 나는 4소대 분대장이며 앞으로 나를 부를 때는 분대장님이라고 부르면 된다.”


‘아.. 분대장..’

분대장이란 말을 들으니까 괜히 긴장되고, 더 세보이며, 더 악마 같다.


“너희도 이미 알고 있듯이 여기는 4소대 2 생활관이며 너희는 3중대 4소대다. 관물대에 각자의 번호가 다 적혀있을 것이다. 만약 자기 번호가 400번이면 3-400이라고 표기한다. 알겠나?”

“...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우리는 당황해서 서로 눈치만 보다 어물거리며 대답했다.


“대답.. 소리가 작다... 420번?”

“....... 예?”


분대장은 420번을 한참 바라보다 말했다.

“엎드려. 다시 421번!”

“........... 옙!”

“엎드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옆에 앉아있던 421번도 결국 같이 엎드리고 말았다.


'예'란 답변이 아닌 거 같았는지 421번은 나름대로 고민하여 더 힘차게 대답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둘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엎드리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친구들은 내게 보낸 편지에서 훈련소 조교들이 만진다거나 번호를 부를 때는 관등성명이란 걸 크게 해야 한다고 특히 강조했었다. 그러니까 420번이랑 421번은 “420번 훈련병 OOO!!”이라고 했어야 했다.


“잘 들어라. 너희는 군인이 되려고 이곳에 들어왔다. 군인이 싫다면 지금 즉시 나가도 좋다. 그러고는 평생 도망쳐라. 만약 도망치지 않고 당당히 군인이 되어 보겠다면, 말부터 바꿔라. 분대장들이 얘기하는 걸 못 들었을 때는 예?라고 반문하지 마라. 이 시간 이후로 예? 나 네? 같이 반문하는 걸 들었을 시 그 즉시 얼차려다. 오직 '잘 못 들었습니다'만 허용한다. 또한 질문이 있다거나 분대장에게 말할 때는 오른손을 머리 위로 들면서 자기 번호만 간단히 말해라. 이상 질문 있나 440번?”

“네?... 아.. 아닙니다!”


440번의 얼차려는 끝나지 않았고, 난 분대장이 말한 당당한 군인은 대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겁이 나는 건 당연할 테고, 이를 피하지 않는 걸 말하는 걸까.


잠시 후 분대장은 여러 개의 바구니와 A4지 한 묶음을 가져왔다. 그리곤 개인물품검사가 시작되었다.

“담배, 전자기기, 사제 약, 본드, 라이터, 칼, 라이트펜 당연히 지니고 있지 말아야 하는 물건과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는 물품 모두 자기 침상 끝에 위치시킨다. 지금 나오는 물품에 대해서는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 하지만 이 시간 이후 분대장들이 검사했을 때 나오는 물품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것이다. 혹시나 말만 하고 안 뒤지겠지라는 마음으로 담배 숨기는 새끼들은 잘 숨겨라. 꼭 찾아낸다.”


여러 명의 분대장들이 우리들 앞을 지나가며 물품 들을 검사했고 나는 매직이랑 소화제, 기타 상비약들을 죄다 뺏겼다. 나머지도 입소대 앞에서 산 깔창, 라이트펜, 마스크를 뺏겼다.


분대장들이 비닐에 모으는 담배도 한 보따리다.

‘분명 저놈들이 밤에 필텐데’

얼마나 좋아할지를 생각하니 짜증이 난다.

A4는 신상명세서였고 간단한 신상과 군복을 지급받을 때 참고되는 신체 사이즈를 기록하게 되어있었다. 작성 후 우리는 강당으로 이동해 중대장에게 간단한 정신교육을 받았다. 용어만 정신교육일 뿐 우리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하던 조례와 비슷했다. 알지 못했을 뿐 내가 겪어온 많은 것들이 군대란 곳과 연결되어 있었다. 정신교육 땐 우리가 지급받는 물품들과 사용법에 대해서도 교육받았다.

드디어 소대별로 이동해 군복 및 보급품을 지급받았다. 보급품은 전투화, 전투복 상의, 하의, 방상외피, 전투모, 세면백, 이상한 초록색 고무줄이었다.


친구들한테 들은 대로 전투화는 내 발에 딱 맞는 사이즈로 말하긴 했는데 너무 딱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신어 보니 발이 영 불편하다.


분대장 말로는 여기서는 기본적인 물품만 받고 교육대대에서 나머지 물품을 마저 받는단다. 군복으로 갈아 입고 내가 입고 온 옷과 신발은 관물대에 넣었다.

군복.. 너무 어색하다.

새 옷이라 그런가 옷에서 괜히 마른오징어 냄새가 나기도 하고, 옷깃에 쓸린 목은 따갑기만 하다. 속옷도 군용으로, 양말도 군용으로 갈아 신었다.


이제 내 몸엔 왼쪽 손목의 시계와 눈 앞에 있는 안경 말곤 내 것이라 할만한 게 없다.

국가가 주는 군복이란 것을 입었다. 왠지 나란 사람도 국가의 것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은 처음이었고, 생소했으며,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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