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통제할 수 없는 것

블루 아워 -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by 바람꽃 우동준

- 병영식당


군복을 입은 우리. 아버지 양복을 꺼내 입은 아이 마냥 어색하다. 티비에서 보던 각진 전투모는 어디에 있는 걸까?


각종 물자를 받고 나니 어느덧 6시. 군대에서의 첫 번째 식사 시간이다. 식당까지 가는 길에도 얼차려는 멈추지 않았다. 발걸음을 맞추지 못할 때마다 오리걸음은 반복되었고, 한번 틀린 인원은 반복해서 틀렸다.


식당의 이름은 '병영식당'. 분대장은 식사시간으로 30분을 안내했다. 한 명씩 입장해 나눠 주는 식판을 받고 숟가락도 받았다. 젓가락은 없었다. 그리고 숟가락의 앞부분은 포크처럼 되어있었다.


밥을 배분하는 사람도 우리와 같은 입소대 병사인 것 같았다. 밥을 먹기 전 모두 천장에 매달린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외워야 했다.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문! 이 식사는 피땀 어린 우리 부모님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맛있게 먹겠습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 시간 안에 먹어야 한다는 시간의 압박과 익숙지 않은 공기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테다. 재미있는 단어는 '탈모'. 식사 전 전투모를 벗으라는 지시였다.


식사를 마친 순대로 식당 밖 공터에 4열로 서있었고, 모든 인원이 도착하자 다시 발맞춰 이동했다. 해는 지고 있었고, 군대에서의 첫 밤이 다가왔다.



- 첫 밤. 그리고 불침번

환복. 익숙지 않은 단어다. 전투복을 벗고 배급받은 활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나선 활동복으로 갈아입는 듯하다. 활동복의 색은 회색이었다. 선배가 말했던 붉은색의 활동복, 소위 떡볶이라고 하던 활동복은 이제 없는 듯했다.


“활동복으로 전원 갈아입었으면 오전에 지급받은 생지부 오늘 안으로 전부 작성할 수 있도록 한다. 전부 펜으로만 작성하며, 글씨는 알아볼 수 있게 쓰고, 화이트는 분대장한테 와서 받아갈 수 있도록. 장난으로 쓰지 마라. 너희들이 여기 적는 거에 따라서 니들 군생활이 달라진다. 최소 한 질문당 답변은 네 줄 이상이다. 글씨가 못 알아보거나 내용이 부실한 인원은 오늘 취침시간이 그만큼 늦어질 테니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써라.”


‘생활 지도 기록부’. 줄여서 생지부였다. 오전 정신교육 시간에 지급받아 틈틈이 쓰긴 했는데 아직 많이 남았다. 대부분의 질문이 개인 신상에 대한 질문이었다. 여자 친구가 있냐는 질문,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냐는 질문.


고민하다 솔직히 적었다. '있다'. 괜찮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을 꺼내는 일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임에도 선뜻 적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랬을까. 늘 죽음을 택하고 싶던 나. 누군가는 이 글을 보겠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고, 나도 그를 모를 테니.


생지부를 함께 적고 있는 이들과 같은 옷을 입고 한 방에 있어서인지 경계심이 많이 풀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오고 가는 이야기. 나도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말문을 트고 얘기를 했다. 왼쪽에 있는 429번, 서울에 살고 나보다 3살이 많은 동희 형. 오른쪽에 있는 431번, 서울 청량리에 살고 나보다 1살이 많은 성구형.

의지할 곳 없이 모두 같은 처지인 이곳에서 서로가 가족이고 친구고 형이 되었다. 순서가 되어 이제 우리 4소대가 씻을 차례다. 오늘 배급받은 세면백에 들어있는 칫솔, 치약, 비누 세 개로 간단히 씻었다. 샤워는 하지 못했다.


밥 먹는 것과, 씻는 것도 차례가 있었고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니 더 많이 먹고, 더 깨끗이 씻으려면 빨라져야 했다. 저녁 9시가 되었고 저녁 점호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침상 끝에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느껴본 적 없는 긴장감이다.


분대장은 간단히 내일 할 일정과 야간 불침번에 대해 설명했다. 취침은 10시부터였고 소대별로 불침번이 돌아갔다. 복도에 2명, 생활관 내부에 2명씩 총 4명이 한 시간씩 불침번을 선다고 한다. 나는 오늘 새벽 1시부터 2시까지. 수요일엔 새벽 4시부터 5시까지였다. 마지막으로 분대장이 지급받은 훈련용 수첩을 꺼내 복무 신조를 읽으라고 했다.


“복무 신조!!-.....”


복무 신조를 읽는 것으로 나의 첫 점호가 끝났다. 관물대 밑에 있던 매트릭스를 펴고 그 위에 모포를 깔고 누웠다. 스피커에서 취침을 알리고 트럼펫 연주가 흘러나온다.


“취침소등한다. 10시 불침번 4명은 지금 바로 분대장한테 오도록.”


일괄적으로 불이 꺼지고 모두 잠을 청했다.

“동희 형, 성구형 잘 자요-”

“그래 동준아. 너도 잘 자-”


‘내가 군대를 왔구나. 내가 정말 군대를 왔구나. 너희들도 여기 이렇게 누워있었구나.’


길어지는 생각을 붙잡다 보니 어느새 불침번이 날 툭툭 친다. 시계를 보니 12시 45분이다. 옆을 보니 동희 형과 성구형이 전투복으로 환복하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안에서 감각에 의존해 전투복을 환복 한다.


우리는 복도 중앙에 있는 분대장에게 교대를 알리고 한 시간의 불침번을 시작했다. 누워있을 땐 길게 이어지던 생각이 불침번이 시작하며 멈추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두운 공간을 응시하며 서있는 시간. 내가 내 몸을 통제할 수 없었고, 이미 새벽의 한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다.


군대에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건 잠에 드는 시간과 깨어있는 시간을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 639일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