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익숙함과 먼 그것

by 바람꽃 우동준

2011년 4월 중순


-첫 번째 종교행사


기상나팔소리에 번쩍 일어나 환복을 했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로 매트릭스와 모포를 개고 전투복으로 환복 한다. 아무리 서둘러도 빨리 되지 않는다. 불침번과 함께 영원히 기억할 첫날 밤이 지났고, 둘째 날과 세 번째 날인 오늘까지 신체검사와 특기 분류를 했다.


모두 황토색 런닝을 입고 줄을 서있고 문신이 있는 인원들은 따로 불러 조사했다. 예전 병무청에서 신검받을 때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정밀하게 보는 거 같다. 여기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몇 명 있다고 한다.


특기 분류는 내가 전공한 과목이나 자격증 공부했던 걸로 나뉜다는데 특기 분류하는 병사 말로는 논산은 99프로가 특기를 받기 때문에 여기서 꿀보직이냐 아니냐가 갈린다고 말했다.


수요일인 오늘로서 입소대대에 들어온 지 3일이 지났고 동희 형과 성구형과도 그사이 많이 친해졌다. 앞 번호와 뒷 번호로 붙어있어 검사를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내내 같이 다니니 이젠 서로 가족 같다. 입소대대에서는 3일을 머물고 4일 차인 목요일에 교육 대대로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오늘이 입소대대에서 마지막이다.


그 사이 어제인 2일 차엔 내가 입고 온 속옷과 겉옷, 신발을 소포에 담았고 분대장들이 나눠준 편지지에 편지를 적어 같이 보냈다.


“부모님들이 제일 많이 눈물을 흘리시는 게 너네들 옷 받으셨을 때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건강히 잘 해내겠다고 모두 적어서 넣을 수 있도록. 3분 준다. 간혹 가다 소포 주소를 여자 친구로 적는다거나 집으로 소포 보내 놓고 편지는 여자 친구한테 전해달라고 하는 싸가지 없는 놈들이 있는데.. 부대로 너네들 소포 안 왔다고 전화하시는 부모님들 많이 계신다. 하지 마라.”


순간 엄마가 이 편지를 보고 너무 많이 울 것 같아 새 편지지에 다시 글을 적었다.


-엄마! 막상 들어오니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네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충분히 할 만하니까.


뭔가 부족한 것 같아 고민하다가

한 마디 더 적었다.


-우리 생활관에서 나만 똥 쌌어요ㅋㅋㅋㅋ 다들 긴장해서 똥을 못싸요ㅋㅋㅋㅋㅋ

이거면 충분하다 싶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테이프로 박스를 봉했다.


그리고 밤엔 보급받은 물품의 사이즈를 바꿀 수가 있었다. 듣기론 야상은 90s 가 꿈의 사이즈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군대 야상이 뭐 이뻐봤자 얼마나 이쁘다고 다들 그 난리였는가 모르겠다) 아무 생각 없이 처음에 적을 때 사이즈를 95m으로 해서 무슨 우비를 걸친 것만 같다.


저녁 먹고 막사로 들어오는 길에 분대장이 자기가 지급받은 물품이 크다거나 바꿔야겠다는 사람은 남아있으라고 했다. 둘러보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원들이 남았고 거의 야상 사이즈를 줄이는 거였다.


“안돼- 너도 안돼- 안돼-”

분대장은 매주 월요일마다 입대하는 장정들을 받았을 테고 우리 같이 사이즈를 줄이려는 장병들을 수없이 많이 봤을 테니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나는 있는 힘껏 어깨를 움츠리고 팔꿈치를 당겨 최대한 옷이 크게 보이게 했지만 그는 '안돼'라는 두 마디만 남기고 지나갔다.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저... 전투모도 큽니다!!”라고 했고 전투모를 벗어 이마에 난 빨간 자국을 보여주었다.


“그래 전투모는 바꿔야겠네. 59호 써라.” 사실 인정하기 싫어 버티고 버티며 전투모를 쓰고 있었지만 나는 머리가 컸다. 그래서 어지러웠던 거다.


이렇게 2일과 3일째를 보내고 오늘 밤엔 처음으로 종교행사가 있는 날이다. 가톨릭 신자인 나로서는 어찌나 반갑던지. 수요일 저녁 처음으로 성당에서 미사를 보았다.


그동안 종교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몰랐었는데 익숙한 것 하나 없는 군대에서 종교가 처음으로 내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잘 갔다 오라며 기도해준 신부님도 생각나고 성당에서 마지막 미사를 보았던 기억도 난다.


짧았던 한 시간이었지만 내게 너무나 큰 용기와 위안을 주었던 그런 시간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삼 일간의 입소대대 기간이 끝나고 교육 대대로 넘어간다.


저녁 점호를 마치고 삼일 간 우리를 맡았던 분대장도 들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여기에 있는 분대장들은 정말 착한 거라고 했고 너희들이 교육 대대로 넘어가서 만날 분대장들을 조심하라고 했다. 우리는 너희들을 교육 대대로 보내는 것이 목적이고 그들은 너희들을 군인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멘트 한 번 세다.


취침소등을 하고 누웠는데도 아무도 자질 않는다. 서로 가까워진 모두.

아쉬운지 이런저런 얘기를 밤늦게까지 나누었다.


나도 매트릭스에 모포를 깔고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동희 형과 성구형과도 내일 서로 다른 부대로 나뉘면 어떡하냐고 말하며, 아쉬움에 개인적인 얘기들까지 늦게까지 떠들었다.


오늘도 새벽 4시에 불침번이 있다.


저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오늘은 고무링을 양쪽 건빵 주머니에 따로 넣어두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하려고 양말도 신고 잔다. 나름대로 조금씩 여기 생활에 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입소대대는 이렇게 끝이 나가고 있었다.





2011년 4월 중순


-판초우의.


“각자 지급받은 더블백에 개인 물품들 빠짐없이 담을 수 있도록 하고, 분대장들이 순서대로 개인 생지부를 다시 나눠줄 테니 잘 가지고 있어라. 니들 자대까지 가는 거니까 잃어버리지 말고.”


아침만 먹고 바로 움직인다. 오늘로서 삼일 간의 짧았던 입소대대의 기간이 끝이 나고 교육 대대로 이동한다.

다시 긴장된다. 전투복을 입고, 구겨지는 전투모를 쓰고, 더블백을 메고 부모님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던 그 연병장으로 걸어 나왔다. 우리 소대를 포함한 다른 인원들도 지정된 스탠드에 앉았고 곧이어 여러 명의 못 보던 분대장들이 왔다.


교육대대 분대장들은 우리 앞에서 열중쉬어한 상태로 움직이질 않았고 로봇처럼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그들의 모습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인상이나 풍기는 느낌이 지금까지 봐왔던 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툭-툭.- 투두둑-...


무겁고 차가운 공기 사이로 들리는 소리. 어둡던 하늘. 아침부터 흐리더니 역시나 결국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간부들은 서로 무전기를 통해 이런저런 얘기를 바쁘게 주고받더니 곧바로 분대장들이 막사에 들어가 무언가를 한 박스씩 가지고 나온다.


분대장들이 박스 안의 물건을 일일이 나눠주며 말했다. “이건 판초우의다. 지금 당장 입고 출발할 거니까 묶여있던 고무링은 개인 보관하고 더블백 맨 채로 그 위에 덮었어. 시간이 없으니까 신속히 착용해라.”


원통형으로 돌돌 말려있던 판초우의를 꺼내 빈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었는데 냄새가..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판초우의는 직사각형 형태 가운데, 머리 들어갈 구멍 하나만 있는 그런 우의였다. 마치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같았다.


팔도 불편하고, 우의에 딸려있는 모자는 꽉 조여지지도 않는다. 중위는 자신을 중대장이라고 소개했다. 옆에 있는 부사관들은 우리들의 소대장이 될 간부들이고 앞에 있는 분대장들은 5주 간 우리를 가르칠 훈육 분대장이라고 했다.


곧이어 중대장은 키 180 이상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다음 몸무게 80에서 100kg 이상도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를 일정한 키와 몸무게로 구분 지어 분류하기 시작했다. 나와 성구형, 동희 형은 서로 같은 교육 대대로 가자고 어젯밤 얘길 했던 터라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주변의 눈치만 살폈다.


“다음- 175 이상 일어나.”

후.. 다행이다. 우리 모두 작다.


“다음-170 이상 일어나.”


아. 이런. 성구형은 더 작았다.


나와 동희 형은 일어났는데 성구형은 우리만 빤히 보며 앉아있다.

형..... 형....


나와 동희 형은 서로 손을 꼭 잡고 한 줄에 서있었다. 겨우 삼일이지만 군대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말을 튼 사람이라 그런지 이대로 헤어지는 건 너무 아쉬웠다. 멀리서 보니 여기서도 분대장이 분류를 한다.

안돼.


“형! 보니까 가로로 나누는 거 같은데?..”

“아냐. 잠만! 세로로 아냐??”

다들 키가 비슷하니 앞에서 어떻게 나누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일단 감으로 스탠드에서 세로로 앞뒤로 앉았는데

결국은... 가로로 번호를 부여받았다.


분대장들이 나눠준 카드엔 나는 186번. 동희 형은 200번.

어쩔 수 없이 또 이별이다.


군대에서 헤어짐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금세 정들었던 동희 형과 성구형과 마지막으로 눈인사를 했다. 서로 무사히 잘 훈련받길 기도하며 미소를 지었다.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내렸고 우리는 입소대대의 철조망이 가득한 철문을 지나 도로변에 있는 육교를 지났다. 육교 위에서 바라본 아래엔 내가 타고 왔던 것과 같은 대형버스도 다녔고 소나타도 있었고, 모닝도 있었다.

도로표지판엔 그대로 앞으로만 가면 서울이 나온단다.


삼일 만에 본 바깥인데도 무척 신선하고 새로운 기분이다. 생각에 빠지자 그립기 시작해졌다. 비를 맞고 있어서 그런가.. 좀 많이 그랬다. 더운 숨으로 안경은 뿌옇게 흐려졌고 내가 살아왔던 그 순간은 어떤 때보다 절망적이었고 무거웠다.


일렬로 이동한 우리는 인원이 많아 두 걸음 가고 멈추고 다시 두 걸음을 가고 멈추었다. 우린 비를 피할 곳 없이

모두 육교 위에서 쏟아지는 비를 꼼짝없이 맞을 수밖에 없었다. 판초우의는 말만 우의지 비를 하나도 막아주질 못했다. 덮어쓴 우의 모자는 조여지질 않아 바람으로 자꾸 뒤집어졌고, 쏟아지는 비는 결국 내 몸을 다 젖게 하고 말았다.


전투화에도 빗물이 들어가 찝찝함을 피할 수도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육교를 지나고 논두렁을 걸어 교육대대의 철조망이 가득한 또 하나의 철문으로 들어갔다. 교육대대의 풍경은 입소대대와는 사뭇 달랐다. 막사도 엄청 컸고 많았다.


막사마다 앞엔 연병장이 크게 있었고 내가 생각한 거보다 교육대대는 엄청 넓었다.

한참을 걸어갔다.


지나치면서 본 막사 중엔 신막사도 있었고 옛날에 만들어진 구 막사도 있었다. ‘제발 제발.. 신막사이길 신막사 신막사’ 비는 점점 거세졌고 드디어 도착한 곳은 육군훈련소 성 김대건성당.


왜 막사로 바로 안 가고 온지도 모른 채 우린 1층으로 또 2층으로 나누어 올라갔다. 젖은 판초우의를 벗고 성당에 앉았다. 지금은 성당도 내게 아무런 위안이 되질 못했다. 머리가 아파왔다. 비를 맞아서 그런지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최악이다.

앞으로 여기서 받을 훈련을 생각하니 막막하다.

자신이.. 없어졌다..




-상상 이상


교육대대 성 김대건성당은 수요일에 갔었던 입소대대 성당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그리고 전원이 모여있으니 나랑 같이 교육 대대로 넘어온 입소대대 인원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습기로 가득 차 성전 안엔 꿉꿉한 냄새가 가득했다. 비를 맞으며 걸어서인지 머리가 멍하면서 띵했다.


이마에 손을 갔다 대니 뜨겁다. 훈육 분대장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조용히 하라고 소리소리 질렀고 그 소리는 웅웅 되며 귓가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불이 꺼졌고 성전 대형 스크린에는 영상이 나왔다.

“강한 친구- 대한 육군!! 나의 미래는 현역 부사관!! 대한민국 육군 부사관이 되면 목돈마련과....”


영상 다음엔 중대장의 홍보 설명이 이어졌고 후엔 다시 우의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이 쏟아졌다. 이미 젖을 대로 젖은 판초우의를 다시 입는 것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불쾌했다.


그래도 하나 다행인 건 신막사를 기대하며 간절히 기도했던 나의 기도가 이루어졌다.


내 막사는 육군훈련소 29 연대 3 교육대대. 비를 뚫고 보이는 깔끔한 신막사의 건물을 보니 축축한 우의도 용서가 되었다. 연대란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어쨌든 아주 컸다.


교육 대대로 들어갔고 지급받은 번호대로 3~40명씩 분류되어 분대장을 따라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복도에 웬 책상이 있고 까만 모자를 쓴 소대장과 딱 봐도 엄청 세보이는 훈육 분대장이 앉아있다.


“앉아-”

그 좁은 복도에서 40명이 낑낑대며 앉았다. 이미 바닥은 옷에서 떨어진 빗물로 흥건해졌지만 피할 수도 없었다.


“지금부터 앞에서 봉투를 하나씩 뒤로 넘긴다. 봉투에는 개인 신분증, 지급받은 나라사랑카드, 현금 등을 비롯해

가족사진 등 보관해야 하는 개인 물품을 넣고, 혹시라도 훈련에 필요 없는 물품이 있을 때는 지금 다 꺼내서 내놓도록 한다. 나중에 적발될 시 이유불문하고 처벌할 테니까 기회는 지금 뿐이다. 그럼 앞에서부터 한 명씩 나와서 제출하고 지장 찍어.”


앞에서부터 한 명씩 책상 앞으로 가 봉투를 내고, 지장을 찍고 생활관으로 들어간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번호 몇 번이야?”

“.... 186번입니다!”

“빨리 대답 안 해?”

“.. 죄송합니다!!..”

“담배는?”

“없습니다!”

“그래.. 나도 없길 바란다. 여기 니 번호 옆에 이름 쓰고 확인 지장 찍어.”


오른손으로 내 물품을 냈다는 확인 지장을 찍고 생활관으로 들어가니 밖에서 본 것 하곤 다르게 안에는

방끼리 서로 다 연결되어 있다. 복도에선 네 개의 문이 있길래 다 다른 방인 줄 알았는데 안에 들어와서 보니 큰 방에 문만 네 개 있는 꼴이다.


186번.

내 자리를 찾아가니 창가 쪽 침상 끝자리다.

다행이다.

나는 성격상 끝이 좋다.


앞번호인 친구들은 침상 끝에 차렷 자세로 앉아 있었고 나도 얼른 더블백을 내려놓고 끝에 앉았다. 마지막 사람까지 끝나자 소대장과 세명의 분대장들이 들어왔고 까만색 모자를 쓴 소대장이 말했다.


“일단 얘들 활동복으로 환복부터 시키고 오늘은 기초생활교육부터 시켜. 저녁 먹고 19시에 다시 온다.”


그렇게 소대장은 나갔고 빨간 모자를 눌러쓴 훈육 분대장 세명만 남았다. 그중 가장 덩치가 크고 소대장 옆에 앉아있던 분대장이 말했다.


“29 연대 3 교육 대대로 온 걸 진심으로 환영한다. 나를 포함한 앞에 있는 분대장들은 5주간 너희들의 군인화를

책임질 것이다. 너희는 29 연대 3 교육대대 9중대 4소대다. 더 자세한 건 옆에 있는 두 분대장이 설명할 것이고 일단 소대장님이 지시하신 대로 환복부터 실시해라. 5분 준다. 개인 판초우의는 접어서 침상 밑에 넣어두고 개인 물품 또한 정리해서 넣는 것까지 포함해서 5분이다. 실시.”


“뭐합니까!! 안 움직입니까!!!!”


다들 순간 멍하니 얼타고 있다가 옆에 있던 두 훈육 분대장들의 소리를 듣고서야 부랴부랴 움직인다. ‘젠장. 판초우의는 어떻게 정리하는 거지? 젠장. 개인 물품은 어디다가 넣어야 하는 거지? 젠장. 젠장’


전투화 끈도 비에 젖어서 잘 풀리지가 않는다.

“뭐합니까! 빨리빨리 안 합니까! 분대장이 우습습니까! 엎드립니다. 194번 엎드려!!!!”


입소대대 분대장들하고는 목소리의 질부터가 다르다. 열이 난다고 띵했던 머리가 개운해지더니 정신이 버쩍 든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지시한 5분이 지났다. 그리고 5분 만에 다들 서로 더블백이 섞여 자기 물건 찾는다고 난리고 판초우의는 아무도 접는 법을 몰라 제각각이고 좀 빨리 했다는 사람도 전투복 바지 하나 벗다가 팬티 입은 채로 끝이 나고 결국 모두 엎드렸다.


“4소대- 최악이다. 지금까지 내가 받았던 입소대대 병사들 중에 니들처럼 산만하고 느릿하고 멍청한 장병들은 처음이다. 입소대대에서 니들을 얼마나 편하게 대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나는 니들이 오늘 보인 이 모습 그대로 대해 줄테니까 기대해라. 다시 5분.”


그렇게 몇 번을 엎드리고 일어나고 엎드리고 일어나길 반복했다. 이제야 겨우 모두 활동복으로 환복하고 정리도 얼추 끝이 났다. 시계를 보니 17시가 다 되어 간다. 다행히도 더블백 안에 넣어둔 활동복과 활동화는 젖질 않았다. 이제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오늘 하루도 지났고 이제 여기서 5주만 버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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