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 있는 곳에 뱀이 있다고》의 글귀걸이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중

by 바람꽃 우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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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 땅에서 망명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밝고 깨끗하고 번쩍거리는 폐허에서는 어떤 감동스러운 일도 일어날 수 없다. 현대 예술은 이 도시라는 이름의 폐허에서 사라진 기억을 복원하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흑자라고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평화의 단초가 된 평창 올림픽의 이야기다. 평창은 끝이 났고 우리에겐 앞으로가 남아있다.


가리왕산은 이 땅의 생명이 부르던 언어가 아닌 제국의 언어 '슬로프'가 되었고, 봄의 겉옷을 입으며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알리고 싶지만 아직 그에게 겨울의 때를 벗을 자격은 허락되지 않았다.


평화를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건 언제나 또 다른 생명인걸까. 나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건, 네 평화의 희생이였던걸까.


먼 과거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딛은 청교도인들은 숲을 악마의 공간이라 여겼다. 교회가 만들어지고 인간의 손이 닿은 곳은 신의 공간- 선한 공간이 되었고 인간이 손이 닿지 않은 숲은 마귀와 사탄이 숨을 쉬는- 회개를 해야 할 공간이 되었다.


그보다 더 먼 과거 아메리카 대륙에 숨을 쉬던 인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숲의 일원이라 여겼고, 자연을 어머니라- 바람을 어머니의 숨결이라 여기며 살았다. 숲은 신의 공간이었고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해- 명상을 떠날 광활한 자연이자, 따뜻한 쉼터가 되었다. 그는 숲이었고 숲이 곧 그였다.


그리고 먼 시간이 흐른 오늘이다. 남은 건 가리왕산이 아닌 슬로프다. 숲은 숲이고 우리는 우리라는 삶의 방식이다. 답은 무엇이어야 했을까.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중 <산딸기 있는 곳에 뱀이 있다고>의 글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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