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중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것들은 조금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라고 말하면서 간다.》
봄은 언제까지일까. 매미가 울 때 한 계절이 끝나는 걸까- 벚꽃이 길바닥에 흐드러질 때 한 계절이 끝나는 걸까- 우리의 봄은 언제 시작해 언제 끝나는 걸까.
긴 겨울이 무색할 정도로 꽃잎의 봄은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간다. 허망하다. 모든 첫 것의 운명이 그러할까. 황량한 세상에 대한 설렘만을 남기고 이내 곧 사라질 존재. 애초부터 바람과 어울릴 수 없던 존재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열어재낀 하늘은 닫히지 않는다. 뜨거운 빛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꽃이 진 자리에서 봄의 열매를 맛본다. 그래. 봄은 꽃으로 시작되었지만 꽃으로 끝나지 않았다. 꽃은 봄이었지만 봄은 꽃이 아닐 것이다. 그래. 오래토록 기다렸던 봄은 아직 허망하게 가지 않았다. 아직 가지 않았다.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중 <봄날은 간다>의 글귀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