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청년의 생존 보고서]
#4 생존 보고서
오늘도 이토록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아 작성하는 그 4번째 보고서입니다.
저는 지금 브런치북을 통해 청년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소감과 하루하루의 느낌을 허심탄회한 말투로 이어가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네 번째 시간으로 청년과 아르바이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를 한 번도 안 해본 청년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청년은 없다는 바로 그 아르바이트.
저는 둘 중 어느 쪽일까요? 네. 1화부터 눈치채셨죠?
타이핑에서부터 감출 수 없는 이 부티.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이 고급 진 냄새 (ㅎㅎㅎㅎㅎㅎㅎ)
네. 사실 티를 내지 않았지만 저는 뭐 부티 나게 자랐습니다,
갖은 알바로 손가락이 땡땡 부은 티. 사실 그래서 부티.....;;;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아르바이트와 함께 자라 왔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아르바이트는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죠. 전단지? 하! 뿌리는 거에서부터 붙이는 것, 심지어 전단지를 디자인하는 것 까지 폭넓게 다룬 영역이죠. 서빙? 하! 대패삼겹살집에서 저의 금쪽같은 시간을 대패질했고, 우삼겹집과 한우 전문점에서 한우사랑 나라사랑을 실천했죠. 한식 계열은 김밥집에서 돈가스김밥을 말며 졸업했고, 일식 계열에서는 초밥 뷔페집, 중식 계열에서는 만두 전문점을 입성하며 한중일 동아시아의 융합을 이루었습니다.
서빙에 이어 울산에서는 페스티벌을 위한 무대 설치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상진 아나운서님의 사인을 받기도 했죠.(아 지금은 전 아나운서이시네요) 그리고는 결혼식 사회를 하며 여러 커플들의 미래를 축하했고, 돌잔치 MC보조를 하며 아이들이 금수저를 잡을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들 중 최고봉은 역시 상조회사 영업사원이군요. 저는 이십 대 초반의 무렵, 한 상조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그렇게 입사를 한 저는, 오동나무관이 관 중에 최고봉이라는 것을 배우며 영업을 뛰었죠. 상조에서도 보험처럼 여러 개의 패키지 상품이 있더군요. 그렇게 저는 최고급 오동나무관이 들어있는 패키지 상품을 들고 이곳저곳 영업을 다녔습니다. 그때 욕도 참 많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도 아이 티가 가득한 친구가 와서 상조 상품을 영업했다니요. 참..
저를 보시며 당황해하시던 어른들의 표정이 이제야 이해가 가는 것 같습니다. (눈물)
그래도 돈이라도 받았으면 모르겠는데, 3개월이나 일하고 돈은 한 푼도 못 받고 말았네요.
(세상에는 정말로 나쁜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저는 지금 아르바이트에 졸업한 것도, 졸업하지 않은 것도 아닌 그런 상태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목적인! 돈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 가 볼까요?
저의 첫 알바 시급은 3800원 이었습니다. 잘 몰랐어요, 그땐.
이게 작은 돈인지 원래 이런 건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일부터 하기 시작했죠.
왜냐면 돈이 급했으니까요.
우린 그렇게 모두 돈이 급한 상태로 일을 시작합니다.
당연하게도 집에 돈이 있고 생활비가 여유로운 친구들은, 공부를 더 하지 왜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하겠습니까. 학비가 급한 친구도 있고,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비용이 급한 친구도 있고,
사고 싶은 옷이 있어 돈이 급한 친구도 있습니다.
중요한 이유든 개인적인 이유든 어쨌든 시간이 남아서, 심심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은 없다는 것이,
제가 이번 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아주 중요한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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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급하게 갈수록 실수를 범해 오히려 더 늦어지기 십상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 격언이 현재에는 조금 다르게 작용합니다. 아니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격언을 자신에게 맞춰 더 유용하게 써먹으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당장의 돈이 급한 청년들임을 알기에 돈을 쥔 이들은 참 쉽게 말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은 이제- "돌아가라. 너 말고도 급한 사람 많다"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도 겨우 살아 돌아온 이 거친 세상엔, 우리들의 급함을 이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더 슬픈 것은 그런 사람들이 있다라는 것보다,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급함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급하게 만든 것이 아님에도, 돈 앞에 급해지는 우리의 상황이, 정당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더욱 슬픕니다.
그리고 우리가 겨우 위안을 삼는다는 것이
‘원래 이래. 다 이렇잖아. 나만 이런 것도 아닌데’라는 말인 것도 끝까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급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라 슬프고,
나만 급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 우리이기에 더더욱 슬퍼옵니다.
오늘은 아르바이트란 주제에 맞춰 특별히! 다년간의 알바 경험을 통해 본인만의 확고한 신념을 지니신 알바 경력 10년의 누님을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Q. 누나 안녕~ 요즘도 유아용 매트 알바 하시나욥?
A. 야 너도 와라. 10월에 베이비페어 한단다. 일당 오만데쓰.
Q. 올ㅋ 하지만 나 목요일 금요일 일 못 뺌. 그건 그렇고 어때요 누나? 이제 스물아홉도 4달 남았는데~ 소감은?
A.ㅎㅎ 니 알바할래? 내가 한 대당 천 원줄께. 좀 맞자. 완전 꿀 알바디 ㅎㅎㅎ
Q. 헤헤. 누나 인터뷰 하나만! 스물아홉에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마음이 어때요?
A. 어떻긴 뭐가 어때 ㅋㅋㅋ 돈 급하면 하는 거고. 먹고살라면 하는 거지.
Q. 음.. 그래도 좀 그런 거 없어요? 보통 알바라 하면 다 이십 대 초반의 일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잖아요.
A. 내가 볼 땐 알바 졸업 못함. 평생이 알바인생이 될 듯하다. 내가 지금 대학원 다니 자네. 그래서 이제 곧 학원에서 시간강사 알바 시작할 것 같은데, 이것도 어떻게 보면 알바 아니겠나? 뫼뵈우스의 띠야. 알바는.
Q. 그럼 그런 건요? 조급함 같은. 언제까지 알바를 해야 하나 같은.
A. 하- 네가 어떤 느낌으로 이야기하는 건지는 대충 알겠다. 그건 그냥 우리 운명이다.
Q.(오오 나온다. 무언가 멋진 철학이 나올 것만 같다. 오오)
A. 내가 일본어도 복수 전공했잖아. 근데 일본에서는 알바하면서도 잘 산다? 눈치 볼게 없지. 시급도 빵빵해.
사회적인 인식도 별로 없고. 우리가 느끼는 조급함은 알바 때문이 아냐. 그냥 사회적인 병이지.
이젠 알바 말고 너도 뭔가 그럴듯한 일을 해야 되지 않느냐. 그런 압박이 있지 않느냐 라는 말이지?
Q. 응응- 그냥 누나한테는 그런 거를 묻고 싶었어요.
A. 그건 알바를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냐. 남들 직업에 잣대를 들이밀면 삼성가도 똑같고, 엘지가도 똑같아.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평가하고, 규정지으려고 하는 이 사회 분위기가 문제인거지.
Q. 오오 뭔가 멋있게 보여요 누나.
A. 그냥 쌩까고 살아야 돼. 좋은데 취업했네요라는 말에 기뻐하지도 말고, 아직도 알바하세요란 말에도 기죽지 말고. 알겠지?
Q. 좋은 말 고마워요 누나 ㅎㅎ 그래서 말인데 나중에 누나 알바 마치고 나면, 그 돈으로 맛있는 거 대접해줘요.
A. ㅋㅋㅋ아 너를 대접해 달라고? ㅋㅋㅋㅋ야이 ㅋㅋㅋㅋㅋㅋ
얼마 전 최저시급에 관한 논의가 있었죠.
오르긴 했지만 그 돈으로도 사실 생활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그런데 최저시급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청년들이 돈이 급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등록금을 낮추는 것, 무리하게 학생회비를 걷지 않는 것, 학생들의 식비와 기숙사비를 낮춰주는 것.
이거 3가지만 시행되어도 청년들이 돈이 급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럼 지금처럼 급하다는 이유로 돈 앞에 무한한 약자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계시든, 다치지 마시고, 아프지 마시고
몸 성히 다시 만납시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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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가운데 손가락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