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청년의 생존 보고서]
오늘도 이토록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아 작성하는 그 5번째 보고서입니다.
저는 지금 브런치북을 통해 청년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소감과 하루하루의 느낌을 허심탄회한 말투로 이어가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다섯 번째 시간으로 청년과 가운데 손가락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늘은 라디칼 한 글이니만큼 형식을 조금 바꿔
특별히 다른 청년의 인터뷰 없이 저만의 이야기로 진행해보겠습니다.
가운데 손가락을 눈 앞에 들이밀면 누구나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지구촌 시대를 맞아 욕설도 세계화를 맞이하고 있는데요.
더불어 욕을 먹어야 하는 이들도 점점 세계화가 되어가고 있는,
이 웃기고 슬픈 현실에 관한 고찰을 해볼까 합니다.
저는 생존 보고서 5화를 맞아 본격 저격글을 써볼 생각인데요.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나 페이스북을 통해 빙빙 돌리는 저격글이 아니라,
사이다 같이 시원하고 깔끔한 저격글을 써보겠습니다.
(어쩌면 이번 글로 인해 나의 다음 연재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는.. 그런 두려운 마음이 드네요...)
가운데 손가락 part 1의 대상은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교입니다.
이미 진리의 상아탑이 무너졌다는 인식이 팽배해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현실을 모두 포함할 수 없는데요.
예쁜 구석 하나 없는 대학교이지만, 그래도 딱 하나만 지목해보자면
지금의 대학교는 가르쳐야 할 것은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은 가르치고 있는
바로 그 점을 들 수 있겠네요.
우리가 대학생으로서, 또 청년으로서 가져야 할 사회적 사명감과 연대 정신은 마치 죄악처럼 금기시해 놓은 채,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이게 될까?'~라고 설명되는 패배주의와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라고 설명되는
개인주의만 가르치고 있음이 가장 짜증 나는 점입니다.
우리가 지금 비싼 돈을 주며 배우는 것은 단 하나.
벽.
세상은 여기까지인가라고 생각되는 바로 그런 벽.
학생의 현실과 그 미래에 관해서는 조금도 관심 없는 이들이,
'우리는 너희를 위해서만 존재해'란 연기를 해가며 모두의 미래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습니다.
학자금 대출. 대학생이란 영역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미래를 한번 내맡겼던 경험은,
이후에도 세상 앞에서 우리들의 주도권을 내어주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젠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얻기 위해, 지금을 확실한 불행으로 치환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대학에선 세상에 나가면 행복이 있을 거라 말하지만, 우리는 세상에 나오는 순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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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나왔던 대학시절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그 행복한 시절이었단 걸.
얼마 전 부산대 故 고현철 교수님의 분향소를 다녀왔습니다.
교수님께선 당신의 소중한 생명을 대학 총장 직선제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셨는데요.
교수님의 분향소 앞에서, 교수님께서 세상에 던지고자 하셨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교수님께선 세상에 물으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대학은 과연 무슨 의미이냐고.
총장 직선제 폐지 앞에서 각 대학 총장님들은 말씀하십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걸’
그런 총장님 곁에서 교수님들도 말씀하십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인걸’
그런 교수님들을 보며 대학생들도 말합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인걸’
우리가 지금 대학을 다니며 배우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린 대학 시절을 통해 ‘인정해야 할 현실’이 아니라 ‘바꿔야 할 현실’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몰인정한 사회가 되어간다고 합니다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린 지금 너무나 많은 것을...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곳에서 ‘청년’의 필요를 외치고, ‘청년’이 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중요한 변화의 키는 청년에게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자유와 자율은 청년에게 넘겨주지 않은 채 그저 참여만 하라는 것이지요.
제가 느끼기엔, 세상은 실제로 청년이 주인이 되어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중 제일 첫 번째는 대학이고요.
청년을 위해 존재하는 대학이 청년을 두려워합니다.
대학에서부터 청년을 믿지 못하고 있고, 믿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굳이 우리를 통해서라도,
그래도 너희는 잘 해낼 것이고, 너희는 분명 잘 살아 갈 것이라고 믿지 않고 있습니다.
너희는 대학이란 경험이 꼭 필요한 존재들이며,
그 경험을 위해 너희는 미래를 담보로 맡겨서라도 대학을 다녀야만 하고,
너희에게 대학이란 경험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대학의 생존을 위해 청년이 필요한 것인지,
청년의 생존을 위해 대학이 필요한 것인지,
헷갈려집니다.
이번 글은 참 쓰기 어려웠습니다.
몇 번이나 고쳐 썼는 지 모르겠네요.
지금 이 글도 그리 제 마음에 들진 않습니다. 그다지 좋은 글 같지도 않고요.
이번 글을 쓰며 유독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혹 세상이 버거운 한 청년이 인터넷에 써내려간, 그런 단순한 투정으로만 비치지 않을까 싶어-
가볍게 업로드가 되지 않네요.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절의 대학생에게 투쟁이란 단어는, 그리 낯선 단어가 아녔습니다.
지금의 대학생에겐 이상한 사람들이 쓰는, 이상한 단어로 치부가 되어버리지만요.
그때의 청년들이 외치던 세상에 대한 투쟁은,
세상에 대한 투정이 쌓여감으로써 만들어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투정을 하면 루저가 되는 세상이고, 우린 그렇게 어려워진 투정과 함께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저의 투정은 이번 5화에 이어 다음 10화에서도 이어집니다.
투정을 계속 하려는 걸 보니, 아마도 저는 영락없는 루저인가 보네요.
아무쪼록 다들 추석 잘 쇠시길 바라고
취업을 안 하냐는, 결혼은 안 하냐는, 친척 어른들의 등쌀에서도
잘 살아남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의 청년과 대학 민주화를 위해 뜨거운 생을 바치신
故 고현철 교수님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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