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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우동준 Jun 09. 2016

우린 모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 인터뷰 _ 돼지국밥 14+ (with. 이백삼십)

*60명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그 인터뷰가 끝나는 날.

 15년을 달리 살아온 내 아버지에게

 다가가려 합니다.


[#14번째 대화]


I:청년시절 별명이 있으신가요?

H:이백삼십이었습니다.       

I:이백삼십이요? 숫자 230 말씀이신 거죠?

H:네네. 이름이 숫자로 하면 그렇게 돼서 (웃음)

I:아아 알겠습니다. (웃음) 그럼 자제분은 어떻게 되셔요?  

H:남자애 하나 있어요. 이제 다섯 살이고요.   




   

I:당신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요? 어떤 상태가 되면 내가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나요?

H:글쎄요. 항상 매일, 매번 달라지는 거 같아서. 금전적으로 많이 힘들고 그럴 땐, 돈이 많은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그런 친구들이 성공한 거 같고. 사실 여러 가지 이유로 저 역시도 지금 아이랑 가끔 만나고 있는 상태라서요.


그러다가 가족들과 함께 사는 친구들을 보면 그게 또 성공한 거 같고.



여행하는 걸 워낙 예전부터 좋아하는데. 한동안 극장일에 얽매여서 지내다 보니까 마음껏 여행하고, 배우러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아 저게 성공한 인생 같다 싶고요. 그렇게 매번 매번 바뀌는 거 같아요.      



I: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부모님이 바라시던 일인가요?     

H:(손을 저으며)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동시 웃음)     

I:그럼 부모님께선 혹시 어떤 걸 바라셨는지.      

H:아버지께서 제가 어릴 때는 뭔가. 정치인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하셨어요. 집 안에 그런 어른들이 계셨거든요. 대학 다니고 졸업할 때쯤 되어선 대기업, 큰 회사, 누구나 이름 대면 아는 그런 회사.

그런 데 들어가서 그래도 좀 편안하고 평범하게 사는 모습 기대하셨던 거 같아요. 제게 직접 그렇게도 말씀하셨고요.


그런 걸 기대하셨는데 물론 지금은.

그렇게 안 살고 있습니다.  

(웃음)


그는 작은 독립영화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I:그럼 나의 아들에게는 혹시 바라는 직업이 있으신가요?

H:음.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뭐랄까 - 부와 권력 명예? 이런 것들을 아이 스스로가 어떻게든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위치에 서는 게 솔직한 부모의 마음이기도 해요.  


공부 열심히 했으면 좋겠고. 좋은 직업 가져서 내가 지금 가지는 이런 일차원적인 고민 같은 건 안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지금 가지는 이런 일차원적인 고민 같은 건
안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좋은 직업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어쨌든 지금 세상 편안하게 살려면 그래야 하니까요.


내가 지금 이 아이한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이 없으니까.





I:지금 당신의 행복을 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건 무엇인가요?     

H:항상 금전적인 고민? 경제적인 고민? 인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I:사실 경제적인 고민은 해소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면요.    

H:네. 언제나 고민이죠. 만약 내게 아이가 없다면, 지금의 무게보단 덜 하긴 할 것 같아요. 아이는 계속 자랄 거고. 시간에 비례해서 부담은 점점 커질 거고. 그래서 요즘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요.      

I:부담 때문에?

H:네. 부담 때문에. (웃음) 내년이면 필요한 돈이 더 커질 거고, 십 년 뒤엔 더 할 것이기 때문에. 정말 깜짝 놀라면서 깨요. 잠을 못 잘 정도로.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I:지금까지의 당신 삶에서 아버지로서의 위기는 언제였나요?

H:그.. 매... 수...ㄴ     

(동시 웃음)     

H:매일 위기인 것 같아요. 아이 엄마랑 아이랑 나랑 이렇게 세명.


소가족이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는데. 만약 이 아이가 없다면 사실은 우리 둘, 이미 남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일주일에 서너 번밖에 안 보니까. 아이 때문에 이 가정이 유지된다는 생각이 들죠. 그러니 매일 위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도 저렇게 살까 싶었던, 드라마에서 보던 일들이 이젠 제 삶에서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금전적일 걸로 부부가 싸우는 이 많아요. 내가 많이 해줄 수 없으니까 트러블이 생기고, 또 많이 미안하고. 아이 때문에 어쨌든 서로 이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니까요.


        

I:당신과 자식의 닮은 점은 무엇인가요?

H:외모가 많이 닮은 것 같고. 성격도 닮았고. 아직 다섯 살이라. (웃음) 해가 가면 갈수록 나와 같은 부분, 나랑 닮은 부분을 보긴 하는데. 지금까진 성격이랑 식성, 외모 이런 것 들이 많이 닮았어요. 볼 때마다 재밌고 그래요. (웃음)

         




I:좋은 아버지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H:내 아이도 언젠가 성인이 돼서 자기 삶을 온전히 책임져서 살아갈 텐데.. 음.. 앞에서 말한 거처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이 없을 것 같아요 불행히도. 나도 다른 아버지처럼 많이 해주고 싶은데 못해주니까. 그래서 대신 이 친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꿈꾸는 거, 그런 것들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요. 항상 좋은 꿈 꾸면서 스스로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응원해주고 도와주는, 그런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인 거 같아요.       

    

I:아이가 커가는 걸 보면 정말 보람이 느껴지고 그런가요?  

H:네 충분히요.  

I:아이와 함께 했던 어떤 특정한 순간이 있기 때문일까요?

H:음 아이를 키운다는 게. 정말로 한 아이를 키워보니까 너무 힘든 부분이 많아요. 앞으로의 미래가 너무 걱정되기도 하고. 근데 어찌 되었든 이 세상에 내가 태어나서 이 세상을 살았다는 증거가 내 아이로서 존재하니까. 내가 살아있다는 그 증거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게. 그냥. 참 좋아요. 그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보람이 있어요.        


I:당신이 꿈꾸던 가족의 모습이 있었나요?   

H:그럼요. 있었죠. '내가 만약에 결혼한다면', '아이 아빠가 된다면' 하는 고민을 어릴 때부터 했어요. 내가 자랐던 가정에서의 안 좋은 점들을 다 배제하고 (웃음) 좋은 모습들만 생각하면서 난 이렇게 해야지, 아이한텐 이렇게 해야지 하고 고민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제가 꿈꾸던 가장은 돈도 많이 벌고 있고, 좋은 집에 좋은 차도 있는 모습이었어요. 물론 지금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요. (웃음) 현실적으로 좋은 차 좋은 집은 아니더라도 시간을 내서 아이랑 놀아주고, 가족끼리 여행 가는 걸 상상해보기도 하는데 참 쉽진 않네요. 그래서 미안하고 안타까워요.          


I:자식의 웃는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신가요?

H:음 어제?      

I:그럼 아버지의 웃음은 언제가 마지막이셨어요?

H:음... 한.. 삼십.. 이십 년 전? 아버지 돌아가신 지가 좀 되었거든요.

저희 아버지는 이십 년대 생이셔서 건강이 안 좋으셨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웃는 얼굴을 본 게 한 이십 년 되는 거 같아요. 제가 이제 서른아홉이니까. 제가 대학 입학하고 서로 농담하면서 웃으셨던 거? 그때가 마지막인 것 같네요.    



I:저는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요. 제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H:저는 오래됐지만 아직 기억나요. 그 모습이. 여전히 기억나고.

I:이십 년 전이면 손자는 못 보셨겠네요?

H:네 그렇죠. 제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는 거 아버지가 못 보셨어요. 항상 아이의 모습. 그때의 모습으로 절 보셨고, 걱정도 많이 하셨고. 말 안 듣는 자식을 보며 속앓이 하시던 그 얼굴이 기억나네요. (웃음)    



I:신이 아버지에게 했던 말 중 가장 후회되는 말은 무엇인가요?

H:아버지와 항상 긴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그게 너무 아쉬워요. 무슨 말을 해서 후회되는 게 아니라 대화가 없어서 후회돼요. 친구들하고 술 마시면서 말한 게 있는데.


내 아버지랑 나랑은..

처음부터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했던 대화를

그냥

쭉 적어도..

원고지 3장이 안될 것 같아.



얘기를 한 적이 거의 없는 거 같아요. 그냥 "네. 아니오." 이런 이야기만 했지. 언제나 내 말만 하고 방에 들어가고. 아버지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고.

후회되는 말은 없는데.. 얘기를 안 한 게.. 후회죠.  


         

I:내 자식에게 했던 말 중 후회하는 건 있으신가요?

H:아이가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해서 걔랑 뭐 특별하게 대화란 걸 해본 적은 없는데 (웃음)

그래도 늘 마음 아픈 게. 항상 호기심이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니까.

제가 "안돼. 하지 마. 하면 안 돼." 이런 말을 많이 하거든요. 그럼 다음 날에 아이가 막 망설이는 모습을 보면 "아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그냥 하게 둘 걸."하고 늘 후회하는 것 같아요.

               





I:혹시 아버지이길 포기하고 싶던 순간은 없으셨나요?


H:음..   아이가 이제 뭐 좀.. (눈물이 고였고)

뭐 이제 뭐. 

애기가. 그..  처음.. 태어났을 때 (목소리가 떨렸다)    

태어나고. 그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아이가 먼저 생겼거든요. 그땐 너무 준비가 안 됐던 거 같아요. 너무 두렵더라고요. 난 아무런 준비가 없는데. 아이가 생겼으니까..



아버지이길 포기한다기 보다는. 내가 이제 이 아이의 아빠가 된 건지. 내가 스스로 인지를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때.. 애기때.. 따뜻하게도 한 번 못 안아준 거 같고. 그런 게 좀.   안타깝고.   후회스럽고.   미안하고.


그런데 그 이후 시간이 좀 지나서는




이 아이가 만약에 없다면 정말 상상할 수가 없는 삶이.. (웃음) 

너무 준비가 안됐었고 당황해서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거든요.


그런 생각을 한 게


너무 미안하고.


그냥.


그래요.       

    








I:지금 하고는 또 다른 모습이 되어있을. 지금보단 약해져 있을 미래의 나에게 보내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H:나에게요? 

I:네. 나이 든 아버지인 나에게.

H:그냥. 그때가 되면 지금 내 아이랑. 정말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미래의 내가. (웃음)

스스로 철이 덜 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랑 같이 철들었으면 좋겠어요. 친구처럼 잘 지냈으면 좋겠고.

그때가 돼서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본다면 너무 행복할 거 같아요. 내가 우리 아버지에게 꿈꿨던 모습이었으니까.           

I:이제 마지막인데 혹시 영화관을 운영하시니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영화가 있다면 추천해주시겠어요?  

H: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I:일본 영화! 맞나요? 작년에 나온.      

H:네. 그걸 보는데. 내 아들, 내 아버지,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의 남자를 영화가 그냥 먹먹하게 이어주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작년 한 해 내 인생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다들 꼭 봤으면 좋겠어요.           











그는

나도 그랬다고 했다.

'나도 결혼을 하겠단 생각이 없었다'고 했고, '책임감의 무게가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그랬다고 했다.       

'아버지께 보고 싶다란 말이 참 많이 듣고 싶었고,

그래서 내 아이에겐 보고 싶다고 많이 말하려 한다'고 했다.      


우린

서로 좋았다고 했다.

난 내가 가진 고민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고

그는 '내 아이와 내 아버지를 동시에 두고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난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추천해준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너무 슬펐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너무 슬펐다.


어느 날, 길을 지나가다

이백삼십과 그의 아이, 그리고 아내가 함께 벤치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아내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 것 같았다.







사진출처 : 낚시 사진 (http://www.93sounds.com/the-best-dad-songs/)

사진출처 : 시네마 천국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334)

사진출처 : 위기 (http://marke.tistory.com/1062)

사진출처 : 아버지 식사 - 영화 '바람' 중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yberleesu&logNo=10178956223)

사진출처 : 초음파 (http://yab11.tistory.com/entry/%EB%82%A8%EC%9E%90%EC%9D%BC%EA%B9%8C-%EC%97%AC%EC%9E%90%EC%9D%BC%EA%B9%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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