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인터뷰 _ 돼지국밥 16+ (with. 강사노바)
*60명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그 인터뷰가 끝나는 날.
마지막으로 15년을 달리 살아온 내 아버지를 찾아
인터뷰하려 합니다.
[#16번째 대화]
I:우선 청년시절의 별명이 어떻게 되세요?
H:강사노바
I:네? 잠시만요 (웃음)
H:(목소리를 높이며) 카사노바 할 때 그 강사노바요.
동시 웃음
H:연애할 때 한참 어울렸던 친구들이 세 명 있었는데. 걔네들이 매번 '강사노바', '이바'람 이렇게 불렀어요.
I:그.. 별명이 다 그쪽이네요. (웃음)
H:그러니까 별게 없었는데도 (웃음) 여자한테 인기도 없는 것들끼리 서로 그렇게 부르면서 놀았죠 뭐. 지금 동준 씨 나이보다도 더 어렸을 때 별명이에요. 그땐 이성에 대한 관심이 참 많았을 때니까요. 결혼하기 전까지요.
I:이게 중요한 부분이네요.
H:그렇죠. 딱 결혼하기 전까지만 그랬어요.
I:자제분은 어떻게 되시나요?
H:열한 살 딸 있습니다.
I:외동인가요?
H:외동이죠.
I:자녀 계획은 혹시 더 없으신가요?
H:지금은 시기를 너무 많이 놓쳤다 싶어요. 원래 두 살 터울로 애를 가지려고 했는데, 와이프도 새로 일을 시작했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지금도 아이 생각은 있지만 큰 애가 어느 정도 커서, 지금 억수로 편한 상황인데. 예전의 그 과정을 떠올려보니 다시 할 수 있을까 싶고. (웃음)
우리만 생각해서 될 건 아니잖아요. 우리야 애를 키우면 귀엽고 예쁘고 키우는 재미가 있지만. 애도 좀 커서 또래 친구들 엄마 아빠보다 우리가 나이가 많으면 그런 게 있대요.
요즘 초등학생들은 늙으면 엄마 오지 마, 아빠 오지마라고 한대요.
애들이 너희 엄마 누구야, 너희 아빠 누구야라고 서로 비교를 한다고 하니 겁도 좀 나고. 와이프도 그런 부분은 걱정하죠. 와이프가 내보다 한 살 더 많거든요.
I:오 연상이었구나.
H:에이 내가 괜히 강사노바 아니라니까.
I:(웃음)와 방금 그 말은 정말 강렬했습니다.
H:농담이고. 그런 거 보면 애를 키우는 것도 다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한 친구는 이십 대에 결혼했고, 또 다른 친구는 삼십 대에 결혼했는데 같이 못 어울려요. 아빠들이 이십년지기 친구라고 해도. 애들 나이에 맞춰서 친구들이 생기고, 그 끼리끼리 놀게 되더라고요.
애가 다섯 살이면 다섯 살 배기 아빠들하고 어울리게 되는 거예요.
공감대가 생기니까.
아무리 이십년지기라도 서로 조금 기피하게 돼요.
얘기하는 게 달라지더라고요.
I:아무래도 그렇겠죠?
H:그때의 고민이 크게 와 닿지 않는 거죠.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은 다른 게 있으니까.
I:자식과 함께 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H:저는 많이 있어요. 나는 우리 애가 돌 지나고 두 살 때부터 캠핑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I:가족끼리요? 와 대단하시네요.
H:2007년부터 했는데. 주변 사람이 하는 모임에 우연히 따라갔다가 와이프도 좋아하고, 애한테도 너무 좋아 보이더라고요. 그때부터 주구장창 다녔죠.
한 번은 제주도 출장 가서 일을 빨리 마치고, 애를 엎고 한라산을 올라갔었어요. 애기띠 하고. 애기띠 알아요?
그때가 내가 31살 때니까, 애가 3살 때였는데. 등산객들이 다 놀랐죠.
I:그랬겠죠! 다들 등산가방 메고 올라가고 있는데 애기띠라니. (웃음)
H:거기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을 보면서. '너는 기억을 못하지만 아빠가 너 업고 한라산 올라가고 그랬어'라고 지금도 말해요. 아무래도 그게 제일 기억이 나죠.
I:그러면 당신이 아버지와 함께 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H:내 딸이 기억 못하는 것처럼 나도 잘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엄청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아버지가 통근버스 운전을 했거든요. 회사에서 요즘 말하면 복지 차원으로 계절마다 직원을 데리고 여행을 보냈는데. 아버지가 운전을 해야 되니까 나를 태우시곤 곳곳을 다니셨죠.
아버지도 늘 '내가 니 데꼬 여도 갔었고, 저도 갔었다. 니 아나?'라고 물어보셨어요.
그런 게 아마 무의식 중에 남아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도 내 새끼 데리고 가는 거 같아요.
고모들이 '니 어릴 때 아빠 손잡고 여기저기 많이 다니더구먼, 애 놓으니까 니도 애 데리고 많이 다니네' 하죠.
I:내가 겪었던 경험 중 내 자식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경험이 있나요?
H:그건 너무 많으니까. 요즘 세상에는 너무 많으니까. 우리랑 사회환경이 너무 다르잖아요.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성장기 때의 경험 같은데. 조금 뭐라고 해야 되지.. 어..
무슨 기억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한참을 망설였다.
H:좀.. 이게..
H:마음을 굳게 먹어야 된다고 해야 되나?
조금 힘든 부분이 있으면. 그럴 땐 좀. 흔들리지 않고. 잘 살아 나가야 된다고.
주변 환경에 안 흔들렸으면 해요. 전 그런 부분이 좀 있었거든요.
우리 딸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만약 사람 일이라는 건 잘 모르니까. 아빠하고 엄마가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제가 좀 안 좋은 일이 있었거든요. 불과 몇 년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되게 많이 흔들려가지고. 되게 맘이 흔들려가지고 참 힘들었는데. 동생과 와이프가 저를 도와줬어요. 심지어 처자식이 있는 사람도 흔들렸는데. 내 딸은 지금 당장 아빠하고 엄마가 없으면. 붙잡아 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게 제일 걱정이 되죠.
I:당신이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H:가족과 이별할 뻔했던 순간이요.
I:가장 두려웠던 순간이 그때이군요.
H:내가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지만 '내 딸을 더 이상 못 본다', '내 와이프를 더 이상 못 보겠구나.', '내 동생 내 부모님을 더 이상 못 볼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 때 가장 무섭죠.
I:아버지도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H:백번. 천 번. 만 번.
웃음
H:아버지라는 게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게 있을 거고, 사회적인 아버지가 있을 건데.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건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거든요. 사회적인 아버지가 어렵죠.
H:약점을 잡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몰라도 알아야 되고.
아이가 "아빠 이거 몰라?"라고 물어보면 "아니야~ 아빠 이거 알아. 아빠 다 알아"라고 대답해야 될 것 같은.
"아니야~ 아빠 이거 알아."
몰라도 알아야 되고.
다른 아빠들은 이거 할 줄 아는데 하면, 그것도 할 줄 알아야 되고. (웃음)
더 노력을 많이 해야 되고. 그런데 그 노력을 또 와이프나 애들한테는 보여줘선 안되고.
안 보이는데서 해야 돼요. 안 보이는 데서.
그러다가 친구들을 만나면 억수로 약해지게 되고. '야 힘들더라. 이제 나이가 드니까. 애들이랑 뭐 할라니까 힘들어.' 그런데 막상 가정으로 돌아오면 다시 '아빠 이거 잘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I:왜 그렇게 된 걸까요?
H:모른다고 하면. 괜히 딸이 나에게 실망하지 않을까. 그래서 모른다고 하면 다음에는 안 물어봐줄 것 같고.
소외당할 거 같고. 그렇기 때문에 그 끈을 안 놓치려면 내가 뭐라도 다 알아야 된다는 마음이 있죠.
I:가족에서 소외당할까 하는 두려움도 있으신 건가요?
H:아이가 엄마랑 대화를 하다가 모르는 걸 아빠한테 물어보는데. 그때 아빠도 모른다고 하면 '아 아빠도 모르는구나'하고 앞으로는 안 물어볼 것 같아요. (웃음)
나도 옛날에 아버지한테 '아버지 이거 모르겠어요.' 하면 늘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게 계속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만 물어보고 있는 거예요.
아버지한테 물어볼 것도 이젠 불편해서 괜히 엄마를 통해서 물어보고. 그게 결국은 아버지한테 던지는 질문인데. 아버지한텐 못하고, 엄마를 통해서 했던 기억이 있어서.
나도 일 갔다 와서 피곤하면 딸이 물어볼 때 "아빠 피곤해 엄마한테 물어봐" 하는데, 아 나도 이렇구나 혹시나 나중에 딸이 엄마한테만 물어보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I:저는 인터뷰를 하면서 되게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혹시 다른 아버지를 보면서 부러웠던 적이 있으신가요?
H:있죠. 요즘 말하면 금수저. 이건 내가 그 사람이 부럽다 보다는, 우리 딸이 자기 친구를 부러워하는 걸 내게 말할 때. 그땐 참 그 아버지가 부럽죠.
하루는 애 엄마들끼리 막 괌 갔다 온 거 이야기하는걸 애가 다 들었던 거예요. 애가 아이패드가 있거든요. 애가 괌을 검색해서 블로그랑 다 본 거예요. 그래서 자기도 괌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아빠가 돈이 없으니까 그럼 아빠가 제주도로 보내줄게 하니까.
"왜 괌 안돼? 카드로 긁으면 안 돼?" 하는데 그게 좀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웃음)
그렇게 올해가 된 거예요. 난 까먹고 있었는데. 애는 그걸 또 기억하더라고요. 그래서 추석 전 주에 제주도 엄마랑 가라고 했는데. 애가 또 블로그로 제주도의 숙소를 다 알아봤더라고요. 다 좋은 곳으로만 찾아본 거예요.
내 딸이 다른 아빠의 능력을 부러워할 때. 그 아버지가 좀 부럽죠. 사실 알고 보면 그 형님도 엄청 구두쇠인데.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형님인데 그날은 저 형님이 참 부럽더라고요.
I:당신의 아이를 처음 봤을 때 어땠나요.
H:스머프인 줄 알았어요.
웃음. 난 자지러졌다.
H:아니. 난 진짜 스마프인 줄 알았어요! 스머프가 파랗잖아요. 애가 처음 나올 땐. 퍼렇고 빨갛고 이렇게 나와요. 진짜 처음에는 사람이라고는 안 보여요. 눈코 입이 있으니까 사람인가 보다 하는 거지.
I:아니 처음에 보면 천사 같다고 하지 않나요?
H:그건 다 간호사님이 다 닦고. 수건에 싸서 나올 때는. 아 내 새끼다 하는데. 처음에 세상에 나오자마자 봤을 때는 그렇게 안 보여요.
감동이 제일 처음 물밑들이 밀려올 땐. 애가 울을 때. 탯줄 딱 끊고 나서. 애가 막 울 때.
그 시간이 뱃속에서 나와가지고 탯줄까지고 보자기로 싸는 그 순간이. 1분~2분 밖에 안될 건데.
그 시간이 억수로 길게 느껴져요.
처음에 1~2초는 멍 때리다가? 어 이거 뭐지? 사람인가? 본능적으로 눈코입 보고. 손가락 발가락 보고.
그게 첫인상이죠. 우리 딸을 처음 봤을 때.
그거는 내가 죽을 때까지 못 잊는 기억이죠.
"세상에 자기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 주변엔 당신 가족이 항상 당신을 응원하고 있으니까.."
가족을 믿어라.
이번 인터뷰에 아기띠 사진을 넣었습니다.
아기띠 사진으로 어떤 게 좋을까 하며
스크롤을 내렸는데.
아빠가 아기띠를 하고 있는 모습이 꽤나 매력적이더라고요.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아이를 저렇게 안고 있는 건 어떤 느낌일까 싶기도 했고요.
아내는 약 1년간 온몸으로 아이를 안고.
남편은 약 1년간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만약
혹시나
내가 아빠가 된다면
1년간은 아기띠를 하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게 공평한 거 같아요.
1년씩은 나눠 안아야죠.
사진출처 : 오 배우 육아 사진 (http://www.mbcplus.com/mpluszine/RetrieveNewsInfo.aspx?newsType=0&newsID=286202&categoryID=3&thirdCategoryID=9&fourthCategoryID=52&curPage=1&subCategory=8)
사진출처 : 엄마 오지 마 (http://blog.aladin.co.kr/781377146/6034220)
사진출처 : 캠핑 사진 (http://darumcare.com/archive/201306)
사진출처 : 아기띠 (http://www.imgrum.net/tag/%EC%8A%A4%ED%86%A0%EC%BC%80%EC%95%84%EA%B8%B0%EB%9D%A0)
사진출처 : 뒷모습 (http://contest.cheongshim.com/portfolio/%EC%95%84%EB%B2%84%EC%A7%80%EC%9D%98-%EB%92%B7%EB%AA%A8%EC%8A%B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