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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우동준 Aug 26. 2016

#17. 아이가 나의 상황을 이해해 준다는 걸 느낄 때

아버지 인터뷰 _ 돼지국밥 17+ (with. 초찐빵)

*60명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그 인터뷰가 끝나는 날.

 마지막으로 15년을 달리 살아온 내 아버지를 찾아

 인터뷰하려 합니다.


[#17번째 대화]


I:청년시절 별명은 어땠나요? 

H:고등학교 별명은 있는데 대학 때는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I:그럼 고등학교 때는 별명이 무엇이었나요? 

H:고등학교 때에는 초찐빵. 얼굴이 찐빵처럼 생겨가지고. 대학 때 별명은 특별히 없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웃음)       

I:그럼 오늘은 고등학교 때 별명인 '초찐빵'으로 하겠습니다. 



몽글몽글. 겨울아 언제 올꺼니








I:자제분은 어떻게 되시나요?   

H:두 명 있습니다. 큰 애가 지금 만 22살, 작은 애가 지금 21살 이렇네요.           

I:아드님 따님 계신 건가요?      

H:아뇨. (웃음) 둘 다 아들입니다.      

I:그럼 군대에 가있을 나이인..  

H:맞아요. (웃음) 둘 다 군대 갔어요. 하나는 공익 갔어요. 조금 드문 질병 때문에. 

애가 중학교 올라가는 해에 발병을 해서 꽤나 긴 시간 동안 고생했어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죠.

둘째 놈은 지금 해병대 2사단에 가있고요. 김포에 있는.      


I:해병대 가셨어요?

H:진탕 고생하고 있죠. (웃음)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I:질문은 열 가지 정도면 될 거 같은데요. 혹시 아드님들과 단 둘이서 술을 마셔 본 적이 있으신가요?      

H:취할 정도는 아니고 간단히 마셔본 적은 있어요. 예전에 우리 아버님이 상당히 엄격한 분이셨거든요. 금욕적이면서 늘 절제하시는 분이셨고.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는 좀 어려웠어요. 제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거든요. 



이후 애들이 커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집에서 와인도 주고, 맥주도 따라주고 마셨어요. 가끔이지만. 

밖에서 따로 마신적은 없고요.      


I:다 큰 아들과 술을 마시는 기분은 어떠셨나요?          

H:나는 술을 잘 못 마시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와 아들이 그나마 관계를 좋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핑계죠. (웃음) 아버지로서 잘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잖아요. 멋지게 카드를 꺼내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웃음) 뭐 카드에 사실 돈이 그리 많진 않지만요.           





I:내 아이에게 당신의 하루의 보여줄 수 있다면, 하루 중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요?      

H:특별하게 생각을 안 해봤는데..  나보다는 우리 아이들한테 정말 좋은 본보기가 될만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때 그 사람에 대해 알려주고 싶죠. 

아들을 사랑하니까, 어디서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싶은데. 

그러나 그 말이 또 참 하기 어려운 게. 혹시나 그 말을 듣기 싫어할까 봐. (웃음) 

다들 엄친아 이야기 듣기 싫어한다니까 긴장되죠. 얘기들을 때 아이가 긴장한다는 것도 알고요.           



I:당신은 아버지가 되기 전에 '스스로를 아버지가 되기에 적합하다'라고 생각했나요?     

H:나는 되게 아버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중 하나였어요. 사실 또 아버지가 되는 걸 두려워하기도 했던 것 같고요. 나의 생활습관이 누구에게 지탄받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아버지가 된다는 건 참 상상하기 싫은 부담이었어요. 그러나 자식을 낳았을 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기뻤습니다. 너무 기뻤어요.            



I:당신은 지금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요?      

H:조금은 사회적으로 명예를 훼손을 당하는 일이.. 그런 상황이 가장 두려울 것 같아요. 나의 직업이 누군가 앞에 나서고 드러나는 일이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불명예스러운 모습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 지금 이게 나의 두려움이 될 것 같아요. 아주 솔직하게 말해서. 익명이니까. (웃음)



          

Fear






I:많은 친구들이 아버지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H:그건 갈수록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겠죠. 가정을 꾸린다는 것 자체에 너무나 많은 책임이 녹아있잖아요.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결혼을 한다는 게 하나의 어른이 된다는 통과의례처럼 여겨졌어요. 마을의 축제죠. '아이고 꼬맹이가 이제 결혼을 하네' 같은. 지금과 같은 어떤 사회적인 부담도 훨씬 덜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개인주의화되어있고 개별화되어있는 상황에서. 내가 가정을 꾸리고 특히 아이를 가진다는 게 모두 각자의 부담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모두 심적으로 너무나 큰 부담을 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하고요.


일본 사례처럼 지금 우리도 거의 절정기가 아닌가 싶고. 앞으로도 더 심해질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자신의 선택으로 결혼을 안 하는 경향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다 있는 건데, 한국의 경우는 그게 더 심한 거고 또 자신의 선택이라기보단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가 있겠죠. 이런 상황에서 자식을 낳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니까요. 





I:경상도 남자들인데 아들과의 대화가 어렵진 않았나요?

H:많은 어려움이 있죠. (웃음) 사실 대화가 거의 이어지질 않아요. 경상도를 떠나서 요즘 대화가 잘 되는 부자지간은 극히 드물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래도 대학생을 상대로 하는 교수고, 제자들하고 오랜 경험을 갖고 있어서 다른 아버지들보단 조금 낫지 않을까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너무 힘들죠. 세대 간의 소통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내 자식 하고도 말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은걸요.                



I:아버지가 되고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H:일단 아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너무 기뻤고, 가장 행복했죠. 

그리고 지금은 

아이가 나의 상황을 이해해 준다는 걸 느낄 때. 그땐 정말 말할 수 없이 기쁘죠.      



I: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H:걔도 경상도 애니까 내색은 아주 자제하는데 (웃음) 느낌으로는 알 수 있어요. 

이젠 아이가 우리를 배려해주려 한다는 그 마음이. 

나에게 직접 말하진 않지만 조금씩 묻어 나오죠. 



I:아버지이길 포기하고 싶던 순간도 있었나요?

H:그런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나는 성격상 책임감이 강했던 것 같아요. 내 부모에게도 마찬가지고. 

내 것을 희생하더라도 늘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최선을 다하려고도 했고요. 


아버지이길 포기한다기 보단. 잠시 쉬고 싶었을 때는 있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때 3년은 참 힘들었어요. 



심적으로 힘들 때 집에 이렇게 내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참 많이 힘이 됐죠. 그땐 정말 힘들었거든요. 

      


I:누군가의 아버지인 당신이. 당신의 아버지에게 지금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H:더 좀 잘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고. 사랑한다는 말. 딱 이 두 가지네요.      


I:좋은 아들이셨나요?

H:그렇겐 생각 안 해요. 그래도 아마 아버지도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으셨을까. 아버지도 저놈이 나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구나 라고 이해해주지 않으셨을까 하는 기대는 있어요. 내가 좋은 아들이었다는 말은 감히 못 하겠고요. (웃음)           


I:가족 안에서 소외감은 없으신가요?

H:있죠. 그래도 내가 부끄러운 짓을 해서 그런 건 아닐 테니까요. 아마 내가 너무 엄격하게 살아왔으니까 아이들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갑갑하고. 자기들도 빈틈이 있어야 되는데 나는 그런 게 없으니까 내가 그리 편하지만은 않겠죠. 숨 쉴 틈이 있어야 되는데 자기들 아버지한테는 그런 게 없으니까요. 


그래도 집사람 하고라도 소통이 되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웃음) 나도 사춘기 때 내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기 때문에.  


I:아버지를 원망하셨나요?

H:많이 했죠. 사춘기 때. 

왜냐하면 내 어머니를 많이 힘들게 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능에 대해서 많이 원망하고. 그래서 일기장에 솔직한 글들을 많이 썼어요. 그게 아직도 작은 죄의식으로 마음속에 남아있죠. 그래도 혹시 아버지가 볼 수도 있으니까 일기를 찢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우리 아들은 나를 원망하는 글을 초등학교 때부터 버젓이 쓰더라고. 아주 대놓고.     


동시 웃음      


아버지가 밉다. 싫다. 하는 글 들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웃음) 








가족 간엔 그런 감정이 늘 있긴 마련이지만. 잘 다루리라고 믿어요. 


I: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신가요?

H:혹시나 아이가 독립 못하고 내게 걸쳐 있으면 정말 마음 아프고 안타까울 것 같아요. 

대한민국의 대다수 부모들은 중년 이상이 되면 자식의 삶과 내 삶을 연관시키려는 생각을 많이 하죠. 

그래서 물론 나도 그렇지만. 자식의 문제에 너무 과잉으로 대하지 않는가 싶어요. 


앞으로의 나의 삶을 볼 때 자식의 독립은 중요한 변수가 되니까. 

여러모로 그건 작은 두려움으로 남네요.     



I:누군가의 아버지로서 오늘 질문을 준 다른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시간이 더 뜨겁게 사랑하는 부자관계의 공감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오랜만에 올리는 인터뷰입니다. 

다들 폭염기간을 잘 보내셨나요?


저는 그간 여름을 맞아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어요. 


셋이 함께 비행기를 타는 게 처음이었던지라 조금 떨리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답니다.  





오늘 바람을 보니 이제 뜨거운 여름도 지나가는 것 같네요. 


아버지 인터뷰도 조금 더 박차를 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여름의 끝자락.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요. 






사진출처 : 해병대 (http://rokmarineboy.tistory.com/129)

사진출처 : 아버지와 술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078)

사진출처 : 도망 (http://blog.daum.net/osteopath1324/288)

사진출처 : 전통혼례 (https://www.youtube.com/watch?v=-Dz8S4vM9nw)

사진출처 : 어머니 손 (http://wp.pic.joins.com/app/workpeople4/3634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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