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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우동준 Sep 05. 2016

#18. 아니요 집은 들어가야 되는 곳이에요.

아버지 인터뷰 _ 돼지국밥 18+ (with. 벅시)

나도 비슷한 생활을 했거든요. 부모님이 함께 하는 모습을 본 일이 적어요. 아버지는 밖에서 일을 하셨거든요. 거의 평생을. 그렇게 돌아가실 때까지 밖에서 사셨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봤을 때는 부모님이 갈라 지신 건 아닌가 싶었는데 그렇다고 별거도 아닌 상태. 성인이 돼서도 의문이 드는 거예요. 나중에 물어보니 그저 바쁘셨던 거죠. 

바쁘셨대요 서로. 그렇게 사셨어요. 저희 부모님은.  


대부분의 가족은 모여서 살잖아요. 근데 그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나도 아이를 놓고 과연 나.. 어른으로서 준비된 건가, 성숙한 어른은 맞는가, 이건 정말 쉽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동준 씨가 하는 고민에 대해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그래도 있잖아요. 그래도요. 


내가 이걸 하는 건 좋아요. 


그런데 과연 내가 이걸 하는 진짜 목적이 뭔지를 알아봐야 돼요. 누구나 트라우마라는 게 있어요. 그걸 깨야 돼요. 보통은 그걸 놔두고 옆에 있는 것들을 건드리는 데 그래선 안돼요.


나 또한 그렇고 지금의 많은 어른들도 그런 고민을 하고 살았을 거라 생각해요.      

며칠 전 딸아이랑 이야기하다가 딸이 '그렇다면 아빠는 지금 결혼을 후회한다는 거예요?'라고 물었어요. 근데 내가 그 질문에 답을 못 내리겠더라고요. '그럼 난 만족 하나?' 여기에도 답을 못 내렸고요. 어떤 때는 되게 행복하고 또 어떤 때는 되게 힘들고요. 이게 맞는 것 같아요.        






*60명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그 인터뷰가 끝나는 날.

 마지막으로 15년을 달리 살아온 내 아버지를 찾아

 인터뷰하려 합니다.


*인터뷰 질문은 모두 

  육십 명의 청년들이 각자의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것들을 모아

  재구성되었습니다. 


[#18번째 대화]



I:청년시절 별명은 무엇인가요? 

H:청년시절에 별명은 고구마가 있었고. 이름으로 하는 거 있죠? 고릴라, 고등어 같은 거. 그런 건 다 별명이 됐던 것 같아요. 커서 정한다면 벅시. 



벅시가 사막에 라스베이거스를 세운 사람이에요. 영화에서 사막에 결국 라스베이거스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고, 내 삶의 모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I:자제분은 어떻게 되시는가요? 

H:딸 있어요. 이제 스무 살. 이제 대학교 1학년이에요.  

         

I:따님과 자주 시간을 보내는 편인가요? 

H:자주 놀아요. 딸이 친구와 둘이 놀 때 고맙게도 날 부르더라고요. (웃음) 우리는 차를 많이 마셔요. 영화도 같이 보고요. 자주는 못하지만 시간이 되면 같이 운동도 하고 그래요.      

I:멋있으시네요. 

H:아니에요. 우리 애한테 멋있어야 되는데, 정작 그러질 못해서.   







I:당신이 아버지로서 해야 했던 일 중 가장 어려웠던 건 무엇이었나요?     

H: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거요. 저는 여기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아버지와 남편의 입장은 다른 것 같아요. 지금도 와이프한테 말하는 게 애 결혼할 때 까진 무조건 안된다에요. 자녀한테 최소한의 짐이 되진 않았으면 하는 게 내 생각이에요. 


나는 아무래도 구세대니까 애가 결혼식장에 들어가야 되는데. 굳이 우리 딸애가 갈라진 부모와 함께 결혼하고 싶게는 만들고 싶지 않아요. 


늘 어려웠던 건 결국 '결혼 관계 유지'라기 보단 '가정의 유지'죠. 그런데 참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 가정의 위기는 늘 내가 불러왔어요. 사업 실패를 수없이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아내가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우리 와이프는 굳이 나와 결혼하지 않았으면 안 해도 됐을 경험이잖아요. 우리 딸도요. 근데 그걸 내가 만들어냈거든요. 


돌이켜보면 망해갈 때, 그때마다 꼭 제동을 걸어준 게 우리 와이프예요. 이게 고비다 싶을 때마다 늘 이야기를 했었어요. 



이쯤에서 멈추는 게 어때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게 그럴 때마다 그 말을 못 들었어요. 


그 이후 폭삭. 또 폭삭. 

그게 내 40대예요. 


와이프가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려 했는데 제가 잘 듣질 않았죠. 그땐 그래서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그 과정이 참 힘들었어요. 정말 모든 일을 다 해봤거든요. 


그래도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건 아직도 힘들지만

아버지란 자리는 끝까지 내려놓지 않을 거예요.      




I:당신 자식의 가장 사랑스러운 점은 무엇인가요?     

H:긍정이요. 얘는 긍정 마인드가 엄청나요. 어떻게 보면 아직 철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좀 지나치게 긍정적인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얘는 딱히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했으면 좋겠는데, 딱히 고민을 깊게 하진 않는 거 같아요. 앞으로의 과정에 대해서도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욕심이 있죠.           




I:누군가의 아버지가 되는 것과 '나다움'을 지키며 사는 건 같이 할 수 있는 건가요?     

H: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데요? 보통 우리가 '넌 나의 반쪽이다'는 말을 하잖아요. 그건 내게서 반쪽이 떨어져 나간 게 아니라, 나의 반쪽이 너로 덮어지는 걸 의미하거든요. 




그럼 반쪽이 다가와서 나를 덮을 때 그 부분은 양보해야죠. 상대방이 내 삶으로 들어올 수 있게 포기해야죠. 


아니, 다시 말할게요. 나의 반쪽은 포기한 게 아니라 그 반쪽이 새롭게 채워주는 거예요. 내 딸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아버지로서 나의 반쪽을 내어주는 거고요. 자식이 들어 올 공간을 내어줄 수 없다면 그건 부모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다움이라는 게 아버지를 결코 능가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아버지가 나니까요. 

나다움이 곧 아버지 다움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그렇게 살아줘야 된다고 믿어요.  


마찬가지일 거예요. 자녀로서의 삶과 나다움의 삶을 유지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아마 가능하다고 말할 거예요.

유지해야죠. 그게 가족이잖아요. 


포기란 말을 바꿀게요. 정확힌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양보한다는 말이 맞는 거 같아요.      




I:당신이 자식으로부터 들었던 말 중에 아직 기억에 남는 말이 있으신가요?

H: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인상적인 기억은 없는 거 같은데. 그런 건 있어요. 그 느낌이 있잖아요. 


말로는 안 하는데 전해받는 그 느낌. 

아 이 사람이 나한테 우호적이구나 하는 느낌. 


얘가 날 믿고 있구나. 얘가 날 괜찮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그런 느낌은 받아요. 자녀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해서 기억이 남는다기보단. 그런 느낌이 남아요.      


I:당신이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말 중에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말은 있으신가요? 

H:제가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믿는다’라는 문장이요. 


실제로 들었던 말 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우리 아버지는 일주일 내내 밖에 계셨거든요. 아버지는 신문기자생활을 하셨는데, 신문기자도 경찰 신문을 하셨어요. 그래서 사건 현장에 계속 나가 계셔야 하는 거예요. 


그런 아버지였는데. 그런 거 같아요. 


내가 널 믿는다


마지막에 아버지 임종을 본 사람이 저 밖에 없거든요. 그때도 눈빛으로 그런 느낌을 주셨던 것 같아요.

너 믿고 간다는 그 느낌.      





I:당신과 당신 아버지는 닮았나요?     

H:안 닮았어요. 저는 집에 꼬박꼬박 들어가려고 애쓰고요, 아버지는 못했거든요. (웃음)


따지고 보면 저도 지금 직업이 전국을 떠돌고 다니는 일인데, 그래도 저는 꼭 집에 들어가려 해요. 제가 결혼을 할 때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네가 아버지 없이 커서 아버지의 역할을 할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엔 몰랐어요. 

아니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계신데 아버지가 없다니요. 근데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버지가 집에서 해야 하셨던 모습들을 저는 모르는 것 같아요. 저는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이 적기 때문에, 그래서 심지어 아버지와 닮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어머니가 제게 주신 '아버지는 이래야 한다는 모습'하고는 많이 닮아있는 것 같아요. 책임의 모습만큼은 제가 갖고 있다고 봐요. 그걸 아버지가 갖고 계셨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돈만 보내셨거든요. 


지금 이야기하다 보니 저희 어머니가 참 대단하신 것 같네요.      

사실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때 딱 한 번밖에 안 울었어요. 그런데 지금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네요. 사람은 역시 그래도 기른 정이 큰 가 봐요.          








I:저도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많이 했거든요. '내가 보질 못했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사실 이건 처음에 이야기하셨던 제가 이 작업을 하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 그 질문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두려운 질문은  '과연 나라고 해서 내 아버지와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이거예요. 


H:저희 아버지는 집에 안 들어오셨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집에 열심히 들어가냐고요? 아니요. 아니에요.


집은 그냥 처음부터 들어가야 되는 곳이에요. 그래서 내가 집에 들어가는 거예요. 아버지가 안 들어와서 내가 그러냐고요? 아니에요. 그것과는 달라요. 아버지가 일을 열심히 안 해서 내가 일을 열심히 하냐고요? 아니에요. 일은 그냥 열심히 해야 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버지란 역할을 두고 그걸 내 아버지와 비교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그대로. 해야 되는 것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해내면 되는 거예요. 내 아버지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가족은 원래 사랑해야 하는 거고, 내 일도 원래 사랑해야 하는 거고, 내 책임도 원래 다해야 하는 거예요. 삶이 원래 그렇듯이 그냥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누구와 다르게 살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면 돼요.        




I:만약 당신의 자식이 결혼하지 않고 평생 홀로 살겠다고 하면 어떠실 것 같아요?  

H:저는 괜찮아요. 아이가 자기 결정에 대한 뚜렷함만 있다면 괜찮아요. 그런데 만약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거라면 안타까울 거 같아요. 


지금 현 상황이요. 직장과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 때문에 포기하는 거라면 안타까울 거 같아요. 


혼자라도 괜찮아요. 혼자라도 사회적 가족을 만나면 돼요. 내가 힘들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들.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연결된 사람들. 서로에게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충분히 괜찮아요. 





그래도 아마 옆에서 훈수는 계속 놓겠죠. 저도 딸이니 신경이 많이 쓰일 테니까요. (웃음)       









벅시는 질문을 모아 준 청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말로 

'용서한다는 마음은 교만에서 나온다는 걸 기억해주세요.'라고 적었다. 


사실 난 아직도 이 마지막 문장이 불편하다. 


'내가 당신을 용서한다는 마음은 교만이다'라는 말이 참 불편하다. 


어떤 함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벅시의 입장에선 아마 

자신이 아버지를 미워했으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는 마음에서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이번 인터뷰는 여러모로 날 힘들게 했다. 


벅시는 날카롭게 내 안에 숨겨진 두려움을 끄집어내었고 

난 정통으로 한 방 맞았다. 


아버지를 인터뷰해보겠단 마음으로 시작한 이 작업이

여러모로 내게 충격을 준다. 


시작하기 참 잘했다 싶다. 


벅시는 인터뷰를 마치고 카페를 나가며 

웃으며 내게 말했다. 




  



H:옛말에 '모르는 게 약이다'란 말이 있잖아요. 어쩌면 모르고 어른이 되는 게 더 편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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