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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우동준 Sep 09. 2016

#19. 후회하는 말요? "바빠서요."

아버지 인터뷰 _ 돼지국밥 19+ (with. 별종)

*60명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그 인터뷰가 끝나는 날, 마지막으로 15년을 달리 살아온 

 내 아버지를 찾아 인터뷰하려 합니다.


*인터뷰 질문은 모두 60명의 청년들이 

  각자의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것들을 모아 재구성되었습니다. 


[#19번째 대화]



I:당신의 청년시절 별명은 무엇인가요? 

H:별종으로 불렸어요. 다양한 의미에서.  


I:자제분은 어떻게 되시나요?      

H:아들 하나 딸 하나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니까 큰 애가 9살, 작은 애가 6살이네요.      

I:혹시 7살의 조금 이른 사춘기가 왔었나요? 

H:다행히도 안 왔습니다. (웃음)           



난 세상에서 7살이 제일 무서워








I:당신이 원래 하고 싶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H:어릴 때는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커가면서 교육에 대한 반감?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한계나 실망 때문에 교사보다는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의 교육에 대해 관심이 생겼어요.


지금은 평생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죠. 어떻게 보면 꿈에 근접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I:그 일은 당신의 부모님께서 원하시던 일이었나요?     

H:딱히 부모님이 제게 원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하셨던 말이 '니 인생은 네가 책임지는 거다.' 그런 맥락의 말을 하셨기 때문에 제가 어떤 일을 하든 지지해주셨어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반대하거나 그러시지도 않으셨고요. 


늘 그러셨어요. 

살아오면서 제가 무엇인가를 하는 데 있어 반대를 하신 적도 없고요. 

그렇다고 적극적인 지지를 해주신 적도 없었고요.       

    




I:누군가의 아버지인 당신도 지금 부러워하는 친구가 있나요?

H:어떤 걸 부러워하냐의 문제 일수도 있겠는데. 당연히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있죠. 

지금 제가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는데, 이쪽 일이 경제적으로 돈을 많이 벌고 하는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주변에 대기업 다니는 친구, 경찰 다니는 친구, 직업적인 안정을 찾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어요. 


지금은 돈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기 일을 하는 친구들이 부럽고요. 그런 친구들은 여전히 부럽죠. 


돈이 많아서 부러운 게 아니라, 돈에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요.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바탕이 된 친구들.      


물론 나름대로의 곡절이 있겠지만 그래도 드러나는 걸 보면 어떻게 저렇게 편안히 살 수 있지?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지 싶어요. 나는 언제쯤 저런 표정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인 거죠. 그래도 누군가는 또 나를 부러워할 테니 부러움은 늘 상대적인 것 같아요.                




I:당신의 행복을 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H:제 인생 목표가 행복해지는 거예요. 정확히는 행복해지는 게 목표가 아니라 행복을 유지하는 게 목표예요. 늘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게 행복의 장애가 되는 요소는 없었던 것 같아요.      



I:그럼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 당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H:행복에 대한 기준이 조금 바뀌는 것 같아요. 결혼하기 전엔 아이들과 지내는 게 너무 피곤한 거예요. 말도 안 되는 꼬맹이들과 함께 있는다는 것부터가 너무 싫었는데, 우리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까 이젠 세상에서 아이들이 제일 좋아요. 


이게 바뀌면서 행복도 예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행복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드는 게 나의 행복이다 싶어요. 행복의 관점이 바뀌었어요.      





I:큰 변화네요.     

H:그렇죠. 우리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애기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얘네들은 말도 안 듣지, 땡깡 부리지, 울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우리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그런 것들을 다 받아줄 수 있겠더라고요. 이게 아빠의 마음인가 싶어요. 제 삶에선 정말 큰 변화였어요.      



I:질문지엔 없지만 요즘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 바로 '당사자성'인데요. 아버지가 되어야만, 그러니까 아버지라는 당사자가 되어야지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걸까 하는 것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고민이에요. 어떻게 보시나요?      

H:실제로 막상 우리 아이가 태어났을 때에는. 이제부터 이건 완전 다른 문제라는 거죠. 

그래서 '아버지가 되어야지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냐'라는 지점에 대해서 저는 어느 정도 공감해요. 


제가 아버지가 되고 나니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내 눈앞에 보이는 현실들이 달라지더라는 거죠.


그렇게 봤을 때에 그 폭은

아버지가 되었을 때 훨씬 더 커질 수 있다고 봐요. 


이 부분은 분명 있는 거 같아요.     

되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해요.  





되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해요                








I:자식과 당신의 닮은 점은 무엇인가요?     

H:기질이 닮았어요. 이게 유전적으로 닮은 건지 아니면 늘 아빠를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습관이나 이런 것들이 닮았어요. 우리 아들을 볼 때 느껴지는 나와 닮은 그 여유로움. 그게 보일 때마다 얘도 참 긴장감 떨어지게 살고 있구나 싶죠.       


동시 웃음     


I:그럼 당신과 당신 아버지의 닮은 점은 무엇인가요?     

H:과묵하고 싫을 소리를 잘 못하는 것도 아버지를 닮았어요. 술 담배를 안 하는 이런 생활습관도 닮았고요. 

제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기억 속에 남아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내게서 나와요.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십 대 삼십 대가 아니에요. 사십 대 오십 대의 모습이죠. 그 모습과 지금 나의 모습이 참 많이 닮았어요. 


아이한테 무슨 말을 할 때도 '어 이게 어디서 들었던 말인데' 하면 그게 아버지가 나한테 했던 말이에요.      

제가 단순히 기침을 했을 때 그 기침 속에서 어느새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들릴 때. 

그때 기분이 참 이상해요. 

       



I: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무엇인가요?      

H:시간인 거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너무 바빠요. 여유가 있을 때는 아이들과 잘 노는데. 바쁠 때는 정말 한없이 바쁘거든요. 뭔가 아이들과 집에서 함께 하고 싶은데 그런 것들을 못하게 될 때. 시간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 괴로워요. 날 괴롭히는 게 있다면 시간이요.           


I:시간이라고 하니 우리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정말 시간이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 가족과 점점 이야기를 점점 못하게 되는.      

H:지금 우리가 나누는 이런 대화를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 못하잖아요. 둘 다 시간이 너무 없으니까. 저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어릴 때 아이와 많이 놀 수 있을까라는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야 이 녀석이 사춘기를 지내고 자기 마음이란 게 생길 때, 그 안에 나의 자리가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요.       




I:혹시 두려움은 없으신가요?     

H:있죠. 일단 이 아이가 세상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아이를 보면서 아빠가 어디까지 해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요. 아빠가 도와주는데 한계에 부딪히진 않을까 하는. 






아빠가 실직을 한다든지, 사업에서 무너든다든지 할 때 아이가 받을 충격들. 저는 주변에서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직업적인 안정과,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도와줄 수 있는 경제적인 부분에 관한 것들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어요. 제가 정년이 보장된 직업이 아닌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까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이 크죠. 


그래서 아빠가 일 할 수 있는 기간과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의 기간을 고려하게 되면 

앞으로의 내 미래가 

그렇게 막 기대만 할 수 있는 미래는 아니라는 거죠.         








    

I:청년들에게 질문지를 받아가 들은 이야기인데 '내가 나한테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를 너무 잘 알아서 난 절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라고 하더라고요.  

H:과거의 아버지들은 '내가 못 먹어도 우리 아이는 먹이겠다'는 생각에 정말 일에만 매진했거든요. 그렇게 일에만 매진해서 아이들에게 모두 쏟았어요. 그래서 다 대학 보내고 자리도 잘 잡았죠. 근데 저는 이 마음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마 지금 청년들도 아이를 낳으면 내가 못 먹어도 우리 아이는 먹이겠다고 할 거예요. 이건 사랑이니까요. 다만 지금은 청년들이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거죠. 또 과거보다 자식들에게 쏟아야 되는 돈이 한없이 커져버렸고, 대학 보내도 자리잡기도 힘들고요.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청년들이 아이를 안 낳는 게 아니라, 점점 못 낳고 있는 것 같아요. 





    


I:당신이 아버지에게 했던 말 중에 가장 후회되는 말은 무엇인가요?     

H:아버지 하고 대화를 별로 안 해서...  음..  바빠서요.      

I:바빠서요? 

H:네. 바빠서요란 말이요. 






별종은 질문을 준 청년들에게 전하는 말로 [아버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해도 아버지의 삶! 인정해봅시다.] 라고 적었다.


타인의 삶을 모른 채 

누군가를 인정하거나 이해하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나 또한 내 아버지에 대해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아마 이건 내게 끝까지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이 될 것이다. 


별종은 마지막 글을 적으며 말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건, 이해가 아니라 인정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아요." 


맞는 말이지만 

여전히 어렵다. 


온전하게 구별될 수 없는 

아버지와 나의 삶에서 

그의 삶을 인정한다는 것이 

대체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 

대체 어떤 것까지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아직 내겐 어렵다. 


어쩌면 그의 마지막 말은

내겐 맞지 않는 말일 수도 있겠다. 






다음 주면 추석입니다. 


바빠서요란 말에 

미안함과 아쉬움 서운함 그럼에도 이해되는 아니 이해하려 노력하는. 


바빠서요란 말은 

내뱉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참 복잡 미묘한 말인 것 같습니다. 


이번 추석은 수목금토일

완전 황금연휴네요. 


모두에게 바쁘지 않은 추석이 되길 바랍니다. 


동그랑땡 많이 드시고 

다들 동그래지시길. 










사진출처 : 그림자 (http://invisiblemission.tistory.com/entry/%EA%B7%B8%EB%A6%BC%EC%9E%90%EC%9D%98-%EC%8B%9C%EA%B0%84%EB%93%A4)

사진출처 : 실직 (http://www.hankookilbo.com/v_print.aspx?id=21614ce8e798425786683dd6282a83f5)

사진출처 : 최불암 아저씨 (http://home.jtbc.joins.com/Photo/Photo_View.aspx?prog_id=PR10010086&menu_id=PM10013220&gall_art_seq=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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