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돌이 된 그녀를 추모하며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by 바라미

작년 11월, 좋은 계절에 제주도를 가보자는 지인의 제안으로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청주공항으로 달려갔다. 일요일 점심 비행기로 돌아와야 했기에 토요일 하루만 온전한 여행이 가능했다. 여름 연수로 제주도를 다녀온 터라 빠듯한 일정에 선뜻 마음이 앞서지는 않았지만, 가을 제주도가 궁금하기는 했다. 애월 곶자왈에 가득한 만추의 고즈넉함을 느끼고 돌아오는 길, 왕언니가 "엇? 여기서 제주 4.3 공원이 가까운데?"라며 궁금해하자, 나머지 두 명의 언니들도 가보길 원해 4.3 공원으로 향했다. 여름에 들렀던 나는 두 번 가도 좋겠지라는 느슨한 마음으로 동의했다.


그곳에서 귀인을 만났다.

제주 4.3 기념관, 마침 해설을 들으려 모인 한 무리를 따라 자연스럽게 역사의 동굴로 들어갔다. 처음 마주친 백비, 복잡한 정치적 속내로 인해 제주 4.3 사건은 혁명이 되지 못했고 정식 명칭을 확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해설사를 따라 한국의 근대사를 굽이굽이 살펴보며 제주에서 일어났던 믿을 수 없는 처참한 폭력과, 50년이 넘도록 이어진 폭력의 잔재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메어왔다. 집중과 대답을 잘하는 우리들로 인해 해설사는 신이 났지만, 시대사에 대해 물을 때마다 우리는 자신의 무지에 치를 떨었다.

해설 말미에 그녀는 말했다. 한강 작가가 본인들이 몇십 년 동안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고.


해설이 끝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그녀는 제주 4.3 평화공원을 꼭 보고 가야 한다면서 동행하겠노라 했다.

그녀를 따라 기념관 뒤쪽으로 돌아가자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름다운 4.3 평화공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14만이 넘는 전국 피해자들의 위패가 모셔진 봉안실에 들러 참배를 하고, 여전히 신원불상, 행방불명으로 남은 비석이 빽빽한 드넓은 묘지를 돌았다. 꾸역꾸역 치미는 울음을 참다가 결국 눈물이 터진 곳, "비설(飛雪)".

낮은 돌담이 달팽이처럼 이어지고, 제주 자장가 '위이자랑'이 담벼락에 음각되어 있다. 드디어, 자장가의 끝에 다다르면 하얀 눈밭에서 아이를 끌어안은 한 여인이 있다. 토벌작전을 피해 두 살배기 딸을 업고 남편을 찾아 산으로 올라가던 여인. 눈이 그치고, 눈이 녹은 그다음 봄에야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얼어 죽은 모습이 드러났다고 했다. 아름다운 평화공원이라고 했던가? 피비린내를 혀끝에 담은.


20대, 잡지사 기자로 명산을 취재하러 다니던 경하와 인선은 전설의 바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산 아래서 가장 수난받던 자신에게만 허락된 도피의 순간, 금기를 깨고 뒤돌아보다 돌이 된 여인. 그 전설을 두고 경하는 엉뚱한 질문을 한다. "언제 돌이 됐을까요?", "뒤돌아보자마자 그렇게 됐을까? 아니면 시간이 좀 걸렸을까요?" 나는 당연히 시간이 좀, 아니 많이 걸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장가를 부르며 품속 아기를 재우고 그 이듬해 봄, 눈 속에서 깨어날 때까지, 그 모든 고통 속에서 천천히. 그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녀가 계속 돌아보았나를 이야기하다, 인선은 급기야 그녀가 돌허물을 남겨놓고 물속으로 잠수하여 돌아갔을 거라고 했다. 건지고 싶은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열세 살 인선의 어머니는 열일곱 언니의 소맷자락을 잡고 피투성이로 줄지어 누운 시체더미의 언 얼굴에 쌓인 눈을 털고 부모님을 찾아낸다. 심부름 가는 언니들을 쫓아오겠다며 떼를 부리던 일곱 살짜리를 기어코 떼 놓고 갔다 돌아오는 길, 마을 보리밭엔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로 가득한데 오빠와 막내가 보이지 않는다. 오빠는 날쌔게 도망갔을 거라고 믿지만, 막내는 시체더미들 속에서 찾을 수가 없다. 아수라장 속에서 배와 턱에 총을 맞고 쓰러진 막내는 언니들을 찾아 피투성이가 된 채 집까지 기어 왔고, 빨간 헝겊 더미 같은 어린것은 마당 한 귀퉁이에서 발견된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동생을 끌어안고 빠진 이 너머로 깨문 손가락의 피를 입에 흘리니, 한순간 아기처럼 입을 움찔거리며 손가락을 빨았다고 한다. 그게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다는 열세 살 인선의 어머니는 칼질하다 손이 베일 때마다, 손끝이 아릴 때마다 동생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런 채로, 어른이 된 그녀는 언니와 함께 육지로 이송되어 감옥살이를 하는 오빠의 행적을 찾아 헤맨다.


초토화작전 때 잡혀간 오빠는 대구에서, 진주로, 부산으로 이감되며 더 이상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오빠의 행적을 찾아다니던 인선 이모는 동생에게 포기하자고, 경산으로 이감된 날짜를 기일로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인선 어머니는 시퍼런 군인 대통령 치하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삼천오백 명이 총살된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 위령제에 참석하고, 피학살자 유족회원으로서 오랫동안 후원하고 자료를 모은다. 인선이 허깨비 같다고 생각한 그녀는 무릎 관절염이 악화되던 일흔 중반까지 대구 실종 재소자 제주유족회 일원으로 정기적으로 경산의 광산을 방문한다. 그리하여 50여 년이 흐른 뒤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부위별로 추려진 수만 조각의 뼈들 앞에 다다랐을 때, 그제야 그녀는 절망한다. 새처럼 두 개의 시야를 가지고 두 개의 세상을 보며 살았던 그녀는 치매에 걸려 모든 것을 잊은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눈이 오면, 인선 어머니는 무수한 시체더미와 부모의 차가운 얼굴에 쌓이던 눈을, 인선은 갑작스러운 죽음의 얼굴을 확인하던 열세 살 어린 엄마의 공포를, 그리고 경하는 가만히 눈을 보던 인선과 반복되는 꿈을 떠올린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는 물은 눈이 되고, 상처받은 심장 위로 쌓인 눈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엄마를 통해 전달되던 뻐근한 사랑의 고통은 침묵이 숨겨놓은 진실을 알아내고, 기억하고, 마침내 살아내기로 한 딸들을 통해 이어진다. 이제 알겠다. 제주 4.3 기념관에서 샀던 작은 동백꽃 브러치의 의미를. 하얗게 쌓인 눈을 뚫고 피어난 그 꽃 속엔 절멸을 이유로 죽어간 젖먹이의 붉은 피가 섞여 있다는 것을. 어린것이 빨갛게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던 어미의 피눈물까지도.


해설사는 말했다. 이제야 제주는 화해의 섬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악몽으로 재현되는 참혹한 기억을 가진 연로한 피해자들의 죽음을 담보로. 인선 아버지의 이야기에 따르면 P읍의 백사장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총살되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동생들과 특히 귀애하던 터울진 어린 막내까지도. 군경 직계가족을 제외한 전부가. 붉게 무리 진 수천 구의 시체가 이튿날엔 말끔히 떠내려가 흔적조차 없었다고 한다.

서로를 증오하고 반목하고 조심하면서 살아야 했던 제주. 피해자인 것이 낙인이 되어 삶을 옥죄었던 긴 시간들, 살아서 이미 유령인 채로 남은 목숨들. 학살에 가담했던 소수의 정당성 있는 죽음과 그 손에 학살당한 이유조차 없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화해가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떠올린다 한들, 우리에겐 아이히만을 잡아 단죄를 내리는 이스라엘의 단호함은 없었다.


인선은 경하의 검은 나무 꿈 이야기를 영상화하기 위해 1948년 계엄령으로 15년을 복역하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릴 적 살던 집터를 찾아낸다. 그리고 인선의 반복된 꿈처럼 바닷물에 무덤들이 쓸리지 않도록, 먹물을 칠해 작업한 큰 통나무들을 그 땅에 심을 준비를 한다. 그녀들이 완성할 그곳엔 아이를 지키지 못한 채 먼저 눈을 감은 인선의 조부모와 이웃이 있고, 백사장에서 몰살당한 후 일본에 시체로 다다른 인선 아버지의 동생들과 마을 사람들이 있고, 경산 코발트 광산과 전국 학살터에서 한 몸으로 죽어간 사람들이 있다. 그 후 살아남아 인고의 시간을 견디다 새의 그림자가 되어 어둠을 나는 인선 어머니와 유족들이 있다. 그리고 기억의 유산을 전달하는 대가로 과거의 고통을 직면하고 감내하는 경하와 인선이 있다. 나무들 위로, 죽은 자와 산자들 위로, 그림자와 빛 사이로, 시공간을 초월해 순환하는 함박눈이 쌓인다. 그래서 그들은 작별하지 않는다.


평생 실톱을 깔고 자며 악몽과 싸우고, 잠든 순간에도 흐느껴 울어야 했던 인선 어머니께,

그 긴 세월, 서서히 돌이 되는 고통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럴 줄 알면서도 뒤돌았던 그녀의 단단한 사랑에,

깊은 위로를 전한다.


이미지 출처: 제주 4.3 평화재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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