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당신을 향한 나의 말은

# 봄의 의미 # 손을 놓치다 # 성모송

by 바라미

Spring is just around the corner.

봄이 오기 직전, 추위가 매섭다. 그럼에도 언 땅 위 맹렬한 바람 끝에 묻어나는 숨길 수 없는 봄의 기운이 나는 두렵다. 이렇게 간절하게 봄을 기다려본 적 없다. 이렇게 강렬하게 다가올 봄을 두려워해 본 적도 없다.

<멜로 무비>에서 박 감독은 형을 잃고도 슬픈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겸에게 말한다.


"상실 고통이라는 게 말이다. 이게 처음에는 뭐, 정신없어서 잘 몰라요. 그러다가 절실하게 필요한데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때부터 시작되는 거더라. 죽음이라는 것도 같아.

더 말도 못 할 고통이지. 고통이 오는 순간은 뭐, 어쩔 수가 없어. 그때 너 혼자 있지만 마라."


2024년 2월 5일, 입춘이 막 지나고 비 내리던 날, 요양병원으로 간 아빠는 2025년 1월 21일 늦은 밤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비 오던 차 속에서의 시간을 봄맞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치매 검사를 준비한다며 2024년 2월 5일을 수없이 되뇌었지만 끝내 외우지 못한 그날, 입춘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차가운 비가 내리던 그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손을 얻으면 사람의 마음을 갖게 되는 거라고 했다. 어쩌다 아빠의 손을 놓쳤을까? 언제 아빠의 손을 잡았던가? 26년 전, 결혼식에서 장갑 낀 채 잡았던 몇 분을 제외하면 생각이 나질 않는다. 몇 년 전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 병원에 다니면서, 계단이나 기차를 오르내릴 때 자연스럽게 손을 잡아드렸다. 하지만 나란히 평지를 걸으며 손을 처음 잡았을 땐 퍽 낯설었다. 검버섯이 덮고 있는 손등과 탄력 없이 늘어지는 부드럽고 바스러질 것 같은 힘없는 손. 어머니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노쇠의 기운이 복잡했던 어머니와의 시간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병원 오가는 길에 잡은 손 덕분에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순해졌다.


내가 아빠의 손을 다시 잡은 건 두 번째로 옮긴 병원에서 폐렴에 걸려 더 이상 거동이 불가능해졌을 때였다. 손을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마르고 기운이 없었지만, 아빠 손을 잡는 건 두려웠다. 늘 온 힘을 다해 꼭 쥐고 있는 아빠 손에서 전해지는 어쩔 수 없는 강경함과 옹진 마음이 버거웠다. 너 때문이라고, 내가 집에 가지 못한 채 여기 갇혀 있는 건 다 너 때문이라고, 주먹을 꼭 쥔 아빠의 손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두려웠다.

임종 후 아직 따뜻한 손을 잡았을 땐 먼저 살갑게 잡지 못한 제 설움에 복받쳐 울었다. 그렇게 언제 놓친 지 모르는 아빠의 손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입관식에서 아빠는 예쁜 장식 옷을 입고 저승길 채비를 했지만, 그제야 볼 수 있었다. 아빠 뒤통수에 가득한 욕창을. 저렇게 헌 머리로 누워있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짧은 면회시간, 짜증을 부리던 강퍅한 아빠를 뒤로 하고 '고약한 할아버지'가 됐다며 중얼거리며 심란해했던 것이 떠올랐다.

현주는 아빠의 임종에 목사님을 모셔오고 싶다고 했다. 평생 하느님을 욕하며 엄마가 성당에 다니는 것을 싫어했던 아빠 귀에 대고, 현주가 아빠가 천당가시길 기도했다고 전했다. 짧은 장례식 내내 친척과 지인들을 맞고 배웅하며, 필요한 물품을 정산하고 서류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지불식간 찾아오는 슬픔도 분주함에 흩어졌다. 2025년 1월 23일 오후 3시 30분, 아빠는 57년이라는 엄마와의 시간을 뒤로한 채 10번째 화장구로 사라졌고, 언니는 "이게 다야? 정말 이게 다야?"라며 허무함에 목놓아 울었다.


가족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자리, 옆 화장구에선 스님의 구슬픈 축문이 울려 퍼졌다. 축문이 끝나고 사람들의 오열도 그치고, 10개의 화장구에 침묵이 찾아왔다. 화장이 끝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 우리 아빠는 기도도 없이 가시는구나……. 아빠 영정사진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머리가 너무 복잡했고, 미약한 기도는 울음과 뒤섞였다. 혼미함에 아득해지던 어느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명료해지며 떠오르는 기도문 하나.

화장이 완료되고 다시 블라인드가 올라갈 때까지, 추모공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유골함이 봉안당에 안치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순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빠를 향한 나의 말은 한 가지 기도만을 되풀이했다.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는 시구처럼.

결국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은 기도뿐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아빠가 가신지 한 달이 지나간다. 그 사이 많은 눈이 내렸고, 다시 일을 시작했고, 사람들을 만나며 일상으로 복귀했다. 되똑하게 남겨져 외롭던 아빠를 들여다보고 살뜰히 챙겼던 아빠 친구분을 모시고 언니와 봉안당을 찾았다. 넓은 창문 덕에 빛이 환하게 비치고, 마주하기 좋은 자리에 안착한 아빠를 위해 그분은 오랫동안 기도를 드렸다. 다시 찾은 아빠 앞에서 알게 됐다. 그 오랜 애증의 세월, 나를 괴롭혔던 그 마음과 말들이 사라졌음을. 미움과 원망의 공소권 없음을. 그저 그를 위한 내 언어는 되풀이되는 기도뿐이라는 것을.


꽃샘추위를 알리는 예보 속에서 곧 움틀 준비를 하는 통통한 목련순을 본다. 아름답겠구나, 다가올 봄은. 어느 순간 부드럽게 터지며 피어날 그 봄이, 찬란하겠구나. 당신이 두고 가 차마 못 본 그 봄이.

그 생명의 약동을 스쳐 지나치지 않고 온전한 경외감으로 접하는 순간, 그때 당신을 향한 나의 말은...


<성모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아빠를 부탁드립니다.


봄이 오길 기다리며, 아니 오지 않기를……. (202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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