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대는 우울 씨의 1인 식탁
오늘의 메뉴:라면 제3부 뽀글이입니다만.
내가 겪은 군대엔 맛집이 없었지만 기억할 맛은 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음식의 다수가 군대였지만 이 것은 실로 오묘하고 낯선 것이었다. 이미 알고 있고 수 없이 먹어본 음식이었지만 나는 이 것을 군대에서 처음 먹어본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상등병 이하는 책 읽으면 안 되고, 침상에 엉덩이 붙이고 전투화 끈 고쳐 매면 안 되고, 모자 창 휘어 쓰면 안 되고, 선임 없이 PX 혼자 가면 안 되고, 밥 남기면 안 되고, 천천히 먹어서도 안되고, 안 씻어도 안되고 오래 씻어서도 안되고."안 되고"의 고향은 분명 군대이다. 다양한 "안되고" 뿐인 군생활 중에 의외로 쉽게 허락된, "그래도 그건 된다"가 녹아있는 자유의 음식. 배식소에서 제공하지 않고 내가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나만의 특제 메뉴, 뽀글이.
이 음식의 제철은 겨울이다. 깊고 어두운 밤, 마구 날리는 눈 속에서 경계근무를 마치고 복귀해 탄창까지 모두 반납한 뒤, 준비해 둔 라면봉지를 사물함에서 꺼낸다. 김치는 없다. 허리를 조이던 탄띠를 풀고 앉아 조리를 시작한다. 군대에서 라면 선택은 단연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이다. 지금은 내가 이걸 어떻게 먹었지? 싶은 매운 라면이지만 당시엔 도대체 이게 뭐가 맵다고 "매울 신"을 썼나 의문을 갖던 청춘이었다. 아, 탁자에 놓인 빨간 라면봉지를 쳐다만 봐도 벌써부터 뱃속이 뜨뜻해진다. 선임에게 배운 대로 천천히, 서둘지 말아야 한다. 일단 라면 봉지를 뜯지 않은 채로 양손 엄지 손가락을 이용해 와삭와삭 몇 덩어리로 부순다. 그다음은 봉지 윗부분을 뜯고 스프를 잘 뿌려준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절대 성급하게 물부터 부으면 안 된다. 스프가 떠서 잘 안 녹고 안 섞인다. 괜히 잘 섞이라고 쥐고 흔들다가 국물을 흘리거나 봉지가 터지면 이 맛집은 그만 영업 종료다. 온수를 봉지의 절반가량 붓고 뜯은 봉지의 윗부분을 말아서 나무젓가락으로 열리지 않게 고정한다. 앞서 온수기를 누군가가 사용했다면 온수 온도가 낮아 면이 익지 않으니 주의해야 한다. 손가락 끝을 온수기에 대고 살짝 눌러 물 온도를 확인하는 살신성인의 군인이라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그는 맛에 일가견이 있는 자다. 고로 맛있는 뽀글이를 먹을 자격이 있다. 라면은 500ml 물에 4분~4분 30초가량 끓이는 것이 조리예의 정석이지만 물은 그 반만 썼고 끓이는 것도 아니니 10분을 기다려야 한다. 10분이 지났다면 뽀글이 봉지의 상단을 열어 바깥으로 돌돌 말아주는 것이 좋다. 한 손에 받쳐 들고 라면 국물과 함께 잘게 으깨진 라면 덩어리를 후루룩 들이키다 보면 이 것이 왜 기존의 라면과 다른 종류인가를 알게 된다. 얼어서 상기된 볼을 씰룩이며 우물거리던 뽀글이를 크게 삼키면 이 음식이 차게 식은 내 몸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주 다녀 서로 얼굴만 낯익은 노포의 주인이 토렴 끝에 내 앞에 깍두기와 함께 놓아준 뜨끈한 국밥 같은 익숙하고 푸근한 맛이라면 설명이 될까.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인스턴트 음식에서 깊고 오묘한 맛을 느꼈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것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난 음식을 누군가와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생각진 않는다. 누구랑 먹더라도 맛있는 것은 맛있고 맛없는 음식은 맛없다. 음식의 맛을 변화시키는 건 나의 허기다. 얼마나 배가 고프냐에 달려있다. 어머니는 빨리 밥상 앞에 와서 앉으라고 저녁때마다 성화였지만 늘 빈 밥상이었고 다 차려지기 전까지 한참을 더 지나 허기와 식욕이 잘 버무려질 무렵 간신히 상차림이 끝나곤 했다. 그제야 나는 반찬이 별것 없어도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제대를 하고도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뽀글이 생각이 났다. 라면이라는 멀쩡한 이름을 두고 왜 뽀글이라고 불렀는지 모르겠다. 군에서 만들어 먹던 대로 차례차례 순서를 지켜가며 만들어선 기대에 차 한 입 후루룩 들이켰는데 그 맛이 안 났다. 몇 번을 시도했는데 단 한 번도 그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분명 같은 라면, 같은 방법인데 무엇이 빠진 걸까. 짜고 덜 익은, 물에 불기만 한 라면 부스러기. 맛은 커녕 잘 안 넘어간다. 개수대 수챗구멍에 애꿏은 라면만 쌓인다. 뭐가 문제지? 그건 어쩌면 앞이 안 보이는 긴장 속에서 얼어붙어 있던 내 청춘의 허기가 뒤섞여 만들어진 착각이 아니었는지. 나만 알고 싶던 노포의 주인이 바뀌고 달라진 맛에 섭섭해지듯 나의 혀와 뇌는 침울해졌다. 신기루처럼 뽀글이의 그 맛은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맛은 음식을 먹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기억이다. 불안과 허기가 뒤섞인 날것의 스무 살이 아닌 나는, 편안해지다 못해 좋은 것, 맛난 것만 찾아다닌 나는 이제 더이상 뽀글이의 나니아로 들어가는 옷장 문을 찾을 길이 없어진 것이다. 맛의 기억을 혀로 계속 핥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