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여행한다는 것
2019년 5월 2일
우리부부는 여행에 있어 욕심이 적은 편이다. 퇴사까지 하고 세계여행을 하는 마당에 여행에 있어 욕심이 적다고 하면 어불성설인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다. 여행지에 도착해 꼭 보고 싶거나, 해보고 싶은 것에 대한 욕심이 적은 편이라 여행지에 도착해도 따로 관광을 가지 않고 숙소에서 쉬는 경우가 잦다. 오히려 숙소에서 쉬면서 좋은 여행경험(그 나라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음식문화를 체험하는 것)을 하는 경우가 더 잦았는데 트루아 엘케아주머니와 토리노의 스테파노의 경우가 그랬다.
친퀘테레에서 피렌체 근교의 몬테스페르톨리에 도착한 오늘도 우리는 따로 관광을 가지 않고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근교에 산 지미냐노라는 아름다운 중세 도시가 있다고 했지만 급하게 찾아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실 우리가 피렌체 여행을 위해 이곳에 온 이유는 친구부부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우리부부를 소개시켜 준 아내의 대학 동기이자, 나의 회사동료인 친구가 황금연휴를 맞아 이탈리아로 여행을 왔는데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한다기에 일부러 숙소를 친구의 숙소 근처로 구했다.
우리의 일정은 숙소에서 편히 쉬다 친구부부를 만나 저녁을 함께하는 것이었다. 중세마을 여행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아서 숙소에서 쉬고 있었는데 친구가 자기네 숙소에서 진행하는 와인 테이스팅을 같이 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그것도 심지어 무료로. 그렇게 우리는 예정에 없던 와인 테이스팅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와 친구네부부 그리고 50대지만 30대후반 처럼 보인 미국인부부 이렇게 6명이 참여한 와인 테이스팅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말이 테이스팅이지 시음하는 와인을 빠르게 많이 따라준 사라덕분에 1시간 가량 진행되었던 와인 테이스팅이 끝날 무렵엔 얼굴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와인테이스팅을 마친 후에는 친구네 부부와 야외 테라스에 앉아 해지는 저녁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토스카나의 아름다운 초원위에 석양이 지는 모습은 꽤나 아름다웠다. 해가 지고 배가 출출해질 때즘 저녁을 먹었는데, 천천히 이야기하며 저녁을 먹으니 집에 돌아갈 때쯤엔 저녁 10시가 넘어 있었다.
우리가 매일 매일의 여행에 욕심을 가지고 일정을 빡빡하게 짜놨다면 갑작스런 와인 테이스팅에 참여하지 못했을 수도, 친구네 부부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거다. 천천히 여행지를 옮기며 여행을 다니는 덕에 뜻하지 않은 좋은 인연을 사귈 기회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의 맛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