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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33

꼭 정상에 올라야 하는 건 아니야

2019년 5월 19일


승부욕이 강했던 나는 어릴 적부터 정상에 올라가고 싶어 했다. 경쟁에서 이겨 1등이 되었을 때의 성취감이 좋았던 모양이다. 물론 정상에 섰던 적보다는 그렇지 않았던 적이 훨씬 많았지만.  

   

정상에 오르고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최초의 경험은 고등학교 졸업식에서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를 열심히 했던 때였다. 그 덕분에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정작 대학교 진학에는 실패했다. 나는 그렇게 재수생의 길을 걸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니,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연수성적을 경쟁시켜 성적이 좋은 4명을 해외로 연수를 보내준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열심히 했나 생각이 들지만, 그때에는 경쟁심에 열심히 노력했고 그 결과 1등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그로부터 5년 후, 나는 퇴사를 했다. 

    

두브로브니크를 떠나 우리가 향한 곳은 검은(Negro) 산(Monte)들의 나라 몬테네그로(Montenegro)였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차로 2시간 떨어져 있는 코토르(Kotor)는 아드리아해로 이어지는 넓은 호수가 펼쳐진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검은 산들의 나라라는 국호에 걸맞게, 코토르의 산은 바위산이었다.

    

코토르 여행 둘째 날 우리는 구시가지에 있는 코토르 성벽에 오르기로 했다. 두브로브니크의 성벽투어가 수월했던 터라 코토르의 성벽도 비슷할 줄 알았다. 하지만 코토르의 성벽은 웬만한 등산길보다도 훨씬 더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두브로브니크의 성벽투어가 바닷가를 따라 만들어진 낮은 성벽을 평평하게 돌아보는 것이라면, 코토르의 성벽은 깎아 지른듯한 산을 올라가는 등산이었다.

     

정상으로 향하는 중간중간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다. 우리는 가쁜 숨을 고르느라 잠깐씩 쉬어갔는데 그때마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멋있어서 정상에 오르면 얼마나 더 멋있을지 기대하게 되었다. 올라가는 중간중간 "힘든데 이제 그만 올라갈까?" 하는 마음이 생겼지만 우리는 '더 멋진 전망'을 보기 위해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경사가 가팔랐다. 중간 지점에서 바라본 코토르 올드타운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귀여운 고양이는 낮잠을 청한다


그렇게 티셔츠가 땀으로 흥건해 질 때 즈음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도착해서 멋있는 사진을 찍을 만한 장소를 찾아다녔건만 그런 포인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올라오는 중간중간 쉬면서 찍었던 장소들이 마을과 호수를 더 아름답게 찍을 수 있었다.     


땀 한 바가지 흘리고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지만, 정상에서 바라본 뷰가 특별히 더 멋있진 않았다.


우리는 가끔 정상에 오르는 것에만 집착한다. 그러다 보면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아름다운 풍경과 목이 마를 때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해주는 시원한 물 한 잔의 맛을 잊게 된다.

     

정상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정상에 꼭 오르지 않더라도, 올라오는 길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가끔은 그걸로 충분하다는 걸.



<90일, 자동차여행> 열다섯 번째 도시. 몬테네그로 코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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