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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37

우연한 행복

2019년 5월 23일


우리 부부에게 여행은 일상이다. 여행지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바뀌지만, 숙소를 찾고, 근처 슈퍼에서 장을 보고, 삼시세끼 해 먹는 일상은 어디를 가건 크게 다르지 않다.  

   

모스타르(Mostar)를 떠나 스플리트(Split)에서 머무는 이틀 동안도 일상 같은 여행은 계속됐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숙소에 체크인하고, 근처 마트에 들려 장을 보고, 밥을 해 먹었다. 직장 다닐 때는 아침은 늘 간단한 시리얼, 저녁에는 비비고 육개장 같은 완성된 식품을 주로 먹었는데 유럽에서 이렇게 삼시세끼 한식을 먹고 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만들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수제비까지 만들 정도로 아내는 점점 프로 요리사가 되고 있다. 


보스니아를 떠나 크로아티아 스플리트로 가는 길, 길 위에 노오란 봄꽃이 한창이다

    


스플리트에 도착한 첫날 일몰과 야경을 보기 위해 느지막이 숙소에서 나와 구시가기로 향했다. 오래된 유적지인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부터 트렌디한 펍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메인거리인 리바거리까지 천천히 걸으며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스플리트의 구시가지는 크지 않았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맥주와 피자를 먹었다. 

    

해가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고 도시가 어둑어둑해져 주황색 가로등 빛이 도시를 밝힐 때쯤 우리는 룩소르 카페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자리를 잡고 젊은 음악가들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옛 로마 황제 궁전의 터에서 젊은 음악가들이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은 평화로웠고 이국적이었으며 즐거웠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스플리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마르얀 전망대로 향했다. 가는 길에 구글 네비게이션의 말을 듣지 않고 먼저 좌회전을 했다가 터널을 진입하게 됐다. 터널은 마르얀 산을 가운데를 뚫어 해안으로 향하는 길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전망대와 멀어졌다. 터널에서 나와 유턴을 하기 위해 길을 돌아가는 중에 우연히 무료주차장을 발견했다. 이곳에서 우리가 목적지로 삼던 마르얀 언덕의 카페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우리는 그렇게 우연히 발견한 무료주차장에 차를 대고 카페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카페로 향하는 길은 스플리트의 구시가지를 해안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산책로였다. 어제 구시자지로 향했을 때와는 정반대 길이었기 때문에 터널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길이었다. 카페를 향하며 바라본 풍경은 스플리트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마르얀 전망대로 가는 초입에 있는 비딜리카(Vidilica) 카페는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나른한 금요일 오후, 마을을 바라보며 우리는 각자 책을 읽었다. 특별할 것 없는 주말 같은 일상이었다. 


    

일상에서의 행복은 우연히 찾아온다. 어떻게 보면 늘 그 자리에 있는 듯도 하다.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지 그렇지 않을지는 일상을 마주하는 사람의 여유로운 자세에 달려있다. 우리가 일상 같은 여행을 하면서도 수제비 먹는 것에, 일몰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에, 노천카페에서 음악을 듣는 것에,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무료주차장을 발견하고 좋은 산책길을 발견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건 우리에게 행복이 더 자주 찾아오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여유로운 자세로 일상을 행복하게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90일, 유럽자동차여행> 열일곱 번째 도시. 크로아티아 스플리트(Spl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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