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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43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주차장을 관찰하며 느낀 유럽의 워라밸

2019년 5월 29일


석 달 전 인도를 여행할 당시 드라마 <미생>을 다시 보게 됐다. 스리랑카 이후의 여행지로 요르단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생에 나오는 요르단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다시 봐도 미생은 재미있었고, 우리는 결국 몰디브와 스리랑카를 여행할 때까지 미생과 동고동락하며 총 20화를 정주행했다. (재밌는 건 미생을 보게 된 계기인 요르단은 우리의 깜짝 한국행으로 인해 가지도 않았다는 거다) 퇴사를 하고 백수 신분으로 본 <미생>은 더욱 재밌었다. 드라마에서 자주 묘사되는 직장생활의 고단함은 공감하면서도 우리는 그곳을 탈출했다는 해방감 때문이었다. 

    

<미생>을 보면서 아내와 자주 이야기 한 건 등장인물들 모두 '워라밸(워크 라이프 밸런스의 줄임말, 일과 삶의 균형)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매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주말에도 회사 사람들과 만나 술을 마셨다. 과로로 쓰러진 타 부서 팀장을 위해 신입사원 네 명이 소집되어 대신 밤새 기획서를 쓰는 장면은 아름답게 포장되었지만, 우리 눈에는 '미친 짓'이었다. 드라마 속에서는 ‘의리, 팀워크, 그리고 전우애(?)’로 아름답게 포장됐지만 ‘워라밸’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물론 드라마라는 특수성 때문에 회사생활의 어려움이 실제보다 과장되었을 순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부부는 퇴사하기 전 다른 직장인들보다 평균 이상의 좋은 워라밸을 누렸다. 둘 다 야근과 회식이 잦지 않은 덕에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눈치 보지 않고 칼퇴근을 한 건 5년 동안 손에 꼽을지언정, 퇴근하고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었고, 사랑하는 친구 및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도 퇴사를 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우리 삶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도심 속 모습들

자그레브에 지내는 동안 사용했던 숙소는 바로 앞 건물인 법원과 주차장을 함께 썼다. 늘 길에 내놓은 아이처럼 로엥이(우리의 리스차)가 걱정되었던 나는 부엌에서 수시로 로엥이를 살폈다. (다행히 부엌에서 주차장이 잘 내려다보였다) 첫 날 숙소에 도착한 오후 3시쯤 주차를 하려니 주차장이 만차라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어렵사리 주차하고 체크인을 한 후 5시쯤 로엥이를 살피기 위해 밖을 보니 주차장을 가득 메웠던 차들이 다 빠져나가고 주차장이 텅 비어 있었다. ‘크로아티아는 법원도 칼같이 퇴근하는구나’ 싶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나와 주차장을 살피니 주차장은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가 오전 9시 무렵이었는데 주차장을 빼곡히 매운 차들을 보며 ‘여기도 아침 일찍 출근하는 건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후 4시가 되자 그 많던 차들이 다 사라졌다. 크로아티아의 법정 근로시간을 찾아보니 한국과 똑같은 주 40시간이던데 이들은 어떻게 4시에 퇴근을 할 수 있었을까.  

워라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던 법원 주차장

주차된 차들로 그들의 출, 퇴근 시간을 엿보며 나의 회사생활을 떠올려 보게 됐다.


"우리가 4시에 퇴근을 할 수 있었다면 퇴사하지 않았을까?"

"유럽인들처럼 1년에 5주 이상 휴가를 낼 수 있다면 어땠을까?     "


문득 이곳 사람들에게 드라마 <미생>을 보여주면 어떤 감상평을 남길지 궁금해졌다. “허구로 각색된 드라마 아니야?”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자그레브의 가장 유명한 사진 포인트인 성마르카 성당. 지붕을 타일로 수놓은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모인다.
자그레브가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뷰 포인트. 도심 안에 높은 건물이 없어 더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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