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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47

부다페스트에서 느낀 두 가지 마음

2019년 6월 2일


언제부터인가 다른 도시는 몰라도 '부다페스트'는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나온 그 모습에 매혹됐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10년 전 방영됐던 <아이리스>의 힘이 크다. 갓 일병이 지났을 무렵 방영을 시작했던 아이리스는 내 군 생활의 몇 안 되는 낙이었다. 군대는 밤 열시면 소등을 하지만, 소등 후 TV 시청이 암암리에 가능했던 부대환경 덕이었다.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와 이병헌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드라마 도입부에 나오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모습이 나를 사로잡았다. 공산국가의 영향이 남아있으면서도 유럽 특유의 멋진 고딕양식 건물들이 굉장히 이국적이었다. 그 이후로 누군가 나에게 유럽에서 어디 가보고 싶냐고 물어보면 나의 대답은 늘 '헝가리 부다페스트'였다. 


드디어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그것도 차로 말이다.  강 위로는 부다페스트의 명물 세체니 다리가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크로아티아를 떠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하기 직전에 다뉴브 강에서 다수의 한국관광객이 실종,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야경을 보기 위해 유람선투어를 보려던 관광객들에게 발생한 참사였다.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기 위해 유람선투어를 고민하기 때문에, 이번 사고가 특히나 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부다페스트 여행 첫날, 우리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사고현장으로 향했다. 사고가 난 마르기트 히드 다리 옆에 꽃집에 들러 헌화를 할 흰 국화를 사려 했지만, 이미 추모객들이 국화를 다 사가서 우리는 분홍색 소국을 사야 했다. 다리 밑에는 사고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실종자에 대한 구조를 희망하는 애도의 촛불과 꽃들이 길게 놓여 있었다. 촛불과 꽃 사이에는 희생자의 가족분의 애절한 편지도 있어서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고현장에서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현지인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흰 국화를 구할 수 없어 분홍색 수국으로 헌화했다. 사고가 난 다리 주변에는 이미 많은 국화가 놓여져 있었다.
아내와 함께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강위에 헌화했다. 미수습된 실종자들이 하루 빨리 가족의품으로 돌아오기를.
꺼져 있는 촛불을 다시 키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던 사고현장.
마르기트 히드 다리 위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편지가 곳곳에 놓여져 있어 더욱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사고현장에는 현지인과 다른 나라의 여행자들도 많이 찾아와 어떤 이는 눈물을 흘렸고, 어떤 이들은 말없이 양초를 켰다.

    

나의 버킷리스트 여행지인 부다페스트에 왔지만 여행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안타까운 사고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서 이렇게 관광을 해도 괜찮은지에 대한 생각이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다뉴브강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과 다름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어제와 똑같이 야속하게만 흘러가는 강물과 찬란하게 빛나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면서 어쩌면 삶의 슬픔을 극복하는 것은 늘 지난하지만 꿋꿋이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벌어져도 남은 이들의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은 흐르고,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곳 현지인들도 안타까운 사고소식에 헌화를 하기 위해 꽃을 사서 사고가 난 다리로 향하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행을 계속했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내가 본 어떤 도시보다도 아름다운 야경을 우리에게 묵묵히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도 여행자로서 그렇게 부다페스트에서의 여행을 살아내었다.     

*2019년 5월 29일, 다뉴브강에서 발생한 참사로 인해 고통받고 계신 희생자와 그 가족분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90일 유럽자동차여행> 스물세 번째 도시.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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