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50

You cannot buy happiness

2019년 6월 5일


"You cannot buy happiness, but you can buy icecream (which is almost the same thing)"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에 있는 젤라또 맛집 간판에 가게 이름 대신 적혀있는 이 문구를 보고 이보다 더 이 나라를 잘 표현한 문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 규모나 1인당 GDP에서 세계 순위가 한참 아래인 슬로바키아. 그래서 나는 슬로바키아가 여느 동유럽 나라들처럼 "물가가 저렴하고, 경제적으로 못 사는 나라'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었다. (사실 이곳을 여행하기 전까지 나는 슬로바키아와 슬로베니아를 잘 구분하지도 못할 정도로 무지했다.)  


부다페스트를 떠나 브라티슬라바에 있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집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내 생각이 맞는 듯했다. 아파트는 지어진 지 30년은 지난 듯 외벽에서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고, 승강기는 두 명만 탑승해도 이미 꽉 찰 정도로 작았으니까. 


하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호스트인 Valerie 아주머니의 집 내부는 세련미와 아름다움을 겸비한 아주 깔끔한 집이었다. 에메랄드빛으로 포인트를 준 부엌부터, 거실에 걸린 대형 미술작품과 책장에 꽂혀있는 수많은 골프 트로피까지 모든 것이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여유와 멋"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집이었다. 

Valerie 아주머니의 감각이 구석구석 묻어있던 따뜻했던 브라티슬라바 에어비앤비 숙소
인상 깊었던 부엌인테리어. 특히 그릇장을 위까지 채우지 않고 그 사이에 조화로 인테리어를 하고, 색이 맞는 병을 올려놓은 게 인상적이었다.
식탁 위에 올려진 생화 세 송이와 설탕그릇은 떡볶이조차 고급스러워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정량화된 경제지표 혹은 겉으로 드러난 외관만으로 그 나라의 '잘 살고 못사는 정도'를 판단하는 건 한편으로 맞는 듯하지만 때로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는 것이기도 하다. '잘 산다'라는 것도 정의하기에 따라 다양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잘 사는 것'에 중요한 기준은 바로 일상에서의 여유와 멋이다. 

    

브라티슬라바에서 머무는 이틀 동안 나는 늘 궁금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 규모가 뒤처지는 인구 5백만의 작은 나라가 어떻게 이런 '여유와 멋'을 가지게 된 걸까. 왜 우리나라는 많은 동유럽 국가보다 경제적으로 더 발전했으면서도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삶의 여유가 늘 부족하고), 멋이 통일되어 있을까(우리나라에서 멋은 곧 내가 얼마나 명품(집, 자동차, 시계, 옷 등)을 살 수 있느냐로 통일화되어 있는 듯하다.)   


브라티슬라바 중심을 가로지르는 다뉴브강 상류. 강을 따라 노천카페들이 늘어서 있고, 강 옆에는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브라티슬라바의 명물인 일명 UFO 다리. 저 위에 전망대와 레스토랑도 있다고 한다.
브라티슬라바의 도심 속 건물들.

  

늘 아파트 화단을 가꾸시는 Valerie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평일 오후 4시면 일을 마치고 다뉴브 강가에 있는 노천카페에서 여유롭게 맥주를 마시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각자 저마다의 멋을 뽐내며 이 세상 힙함은 다 가진듯한 수많은 카페를 보면서 "여유와 멋"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낀 곳, 바로 브라티슬라바였다.


깔끔하고 세련된 스타일의 브라티슬라바 도심 거리를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일상의 멋과 여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런던, 파리보다도 힙한 카페가 많아보이던 브라티슬라바. 덕분에 걷는 재미가 있었다.
결혼식날 신부가 사라져서 그 신부를 찾기 위해 예복을 입은채 늘 시가지를 지켰다는 전설의 동상. 그의 얼굴에는 슬픔가득한 미소가 있다.
아이스크림집에 생화 장미로 장식을 해놓고, 메뉴판은 영수증에 메뉴를 하나씩 찍어두었다. 힙하다!
이탈리아를 떠나오고선 맛있는 젤라또를 먹기 힘들었는데 이곳 젤라또는 정말 맛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진 보스니아처럼 건물에 총탄자국이 남아있을 것만 같은 이미지였던 슬로바키아. 부다페스트처럼 아름다웠다.
구시가지에서 5분정도 걸어가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색깔의 성당인 Blue Church를 만날 수 있다.
방에 있는 발코니에서 바라본 맞은편 아파트단지. 겉보기에는 세련되지 않지만 저 아파트들도 내부는 세련되겠지.


<90일 유럽자동차여행> 스물네 번째 도시.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


매거진의 이전글 [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4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