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63

자칭 미니멀리스트의 최후 written by 백수부부 아내

2019년 6월 18일


이탈리아 돌로미티에서 독일로 올라가는 길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를 통과한다. 3일 만에 다시 찾은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산자락에 있어 동계올림픽을 3차례나 개최한 인스브루크를 관광할까도 고민했지만, 여행지로 딱히 끌리는 곳이 없었다. 이미 리엔츠와 돌로미티에서 장관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바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월드’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스와로브스키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시작된 브랜드였다. 우리가 방문한 크리스탈 월드는 스와로브스키 본사로, 박물관과 야외 정원 그리고 상점까지 갖춰져 있었다. 후기를 보면 이곳을 방문한 여행객들이 다들 한, 두개씩 물건을 사게 된다는데 나는 물욕이 사라졌으니 구경만 하고 나올 자신이 있었다. 


    

이탈리아 돌로미티에서 독일로 올라가는 길에 통과하게 된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크리스탈 월드의 대표적인 야외 조형물. 구석기 시대의 동상과 현대적인 크리스탈의 만남같은 느낌.


세계여행을 장기간 하다 보니 물욕이 가출했다고 할 정도로 물건을 봐도 그다지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15kg 배낭 하나에 있는 짐만으로도 부족함 없이 생활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에 때문이다. 또한, 물건을 사게 되면 그것이 모두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이기 때문에 고난을 자초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치앙마이나 발리 같은 곳에서는 사고 싶은 물건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물욕=짐 무게 추가’ 이기에 꾹 참았다.   

  

지금은 물욕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신혼집정리를 하며 나는 내가 2년 동안 이렇게 많은 물건과 함께 살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쇼핑도 잘 안 하고, 물욕도 크게 없는 ‘미니멀리스트’인 줄 알았건만 크나큰 착각이었다.


물욕도 크게 없는 ‘미니멀리스트’인 줄 알았건만 크나큰 착각이었다
매표소에서 무료 입장권을 받으면 박물관이 아닌 상점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자칭 미니멀리스트가 뭘 이리 부지런히 사 모은 것인지, 있는지도 몰랐던 물건들도 많았다. 매일 아침 옷장을 보면 입을 옷이 없어 비슷한 옷만 입고 다녔음에도, 옷만 열 박스가 넘었다. 꽤 많이 버렸고, 아름다운가게와 열린옷장에 기부도 했고, 중고장터도 열어 많이 나눴다. 그런데도 우리의 짐들은 결국 이삿날 3.5톤 포장이사 트럭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물욕이 없어졌으니 스와로브스키 상점도 구경만 하고 나오게 될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입성했다. 하지만 미니멀리스트는 이 작고 반짝이는 요상한 물건들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미 귀걸이를 세 개나 들고 다니는데 왜 내 눈은 귀걸이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인가.


머리로는 ‘백수주제에 스와로브스키 귀걸이를 가져서 뭐하려고...’라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이미 귀걸이를 착용해보고 있었다.  

   

흔들리는 내 눈빛을 간파하고 하나 사라고 부추긴 남편과 아직 두 달이나 남은 생일선물이라며 원하는 걸 골라보라고 하신 부모님 덕분에 작고 반짝이는 이 무용한 물건은 결국 내 귀에 안착하게 됐다. 이 귀걸이를 하면 꾀죄죄한 여행자가 아닌 꾸미고 다니던 한국에서의 내 모습을 되찾은 느낌이다. 이후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 귀걸이를 하고 다닌다.


전 세계 300마리 밖에 없다는 크리스탈 홀스. 네 놈이 우리 로엥이보다 비싼듯 하구나...
유럽여행을 마치고 아프리카에 가면 이런 기린들을 많이 보고 와야 겠다.
헬로키티 팬은 아니지만 이 피규어를 보고 물욕이 안 생길수가 없었다.
피사의 탑과 자유의 여신상은 잘 만든것 같은데 타지마할은 별로... 실제로 본 타지마할은 훨씬 더 정교하고 아름답다.
스타워즈 팬도 아니지만 이것도 갖고 싶었지만 백수가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다.
이 미키마우스 녀석들이 합쳐서 12천유로라니. 가격 한 번 사악하다.
"이런 장식품을 사려면 집안 전체에 인테리어를 신경써야 돼, 이것만 놓인다면 집에 어울리지 않을꺼야" 라고 우리는 서로 위로했다.
알프스의 고봉들로 둘러쌓인 마을 인스부르크. 이곳에 온다면 크리스탈 월드를 꼭 방문해보시길.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월드에서 남긴 가족사진.
<90일 유럽자동차여행> 서른두번째 도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Innsbruke)


매거진의 이전글 [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6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