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험한 남프랑스로 가는 길 written by 백수부부 아내
2019년 6월 30일
정해진 일정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자동차여행을 하고 있지만, 7월의 남프랑스 여행만은 여행을 출발하기 전부터 계획했었다. 끝없이 펼쳐진 보랏빛 향연, 바로 라벤더밭 때문이었다.
라벤더가 피는 시기는 날씨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남프랑스 라벤더밭의 최신동향을 늘 파악하며 꽃이 만개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왔다.
유럽 동쪽 크로아티아까지 내달렸다가 동유럽 그리고 독일을 거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돌아왔다. 프랑스 땅을 밟았으니 이제 라벤더밭에 많이 가까워진 줄 알았건만, 이곳에서부터 남프랑스 발랑솔 까지는 차로 9시간 거리였다. 아내와 번갈아 운전해도 한 번에 남쪽으로 내려가기엔 무리였다. 우리는 스트라스부르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브장송을 첫 번째 거점, 그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3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그래노블을 두 번째 거점으로 삼아 남프랑스로 향하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첫 도시는 브장송(Besancon).
스트라스부르에서 38도의 더위에도 선풍기 하나만을 끌어안고 버텼던 우리는 무조건 ‘에어컨’이 있는 숙소를 가겠노라 다짐했다. 에어컨을 틀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미드를 보겠다는 희망에 부푼 마음으로 브장송 숙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선풍기만 보일 뿐 에어컨의 ‘에’도 보이지 않았다.
분노에 차서 호스트에게 에어컨의 행방을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선풍기가 에어컨이라고. 에어컨 바람 쐬며 쉬겠다고 2박이나 예약했는데, 당장 환불하고 싶었다. 하지만 환불하고 갈 곳이라고는 햇볕에 뜨겁게 달궈진 로엥이뿐이었다.
우리는 이틀 동안 집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에어컨이 있는 카페를 찾아 시내로 향했다. 그러다 저녁이 되어 더위가 식으면 집으로 돌아와 대문을 활짝 열었다. 조금이라도 바람이 불어오는 대신 계단을 올라오는 모든 이웃과 인사해야 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신혼집에 야심차게 들여놨던 무풍에어컨이 사무치게 그리운 이틀이었다.
스타벅스도 없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콜드브루를 내주고 아이스 라떼를 시키면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프라푸치노 같은 음료가 나왔지만 이틀 동안 본 브장송은 생각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였다. 시내에 있는 건물들은 모두 대리석으로 깔끔하게 지어져 있었는데, 예전부터 땡볕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는 대리석 건물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았다. 브장송을 떠나기 전날, 더위에 지쳐 자려고 침대에 누웠더니 폭죽 터트리는 소리가 크게 났다. 우리는 그렇게 더위를 피하고자 열어둔 창문으로 생각보다 규모가 컸던 불꽃축제를 30분이나 보다 잠이 들었다.
브장송을 떠나 향한 곳은 그르노블(Grenoble) 이었다.
이번엔 철저하게 예약하기 전부터 ‘진짜 에어컨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도착한 그르노블 숙소는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를 맞으며 ‘어라, 이게 아닌데. 왜 시원하지?’ 싶었지만 에어컨 바람이 그리웠기에 우리는 에어컨을 밤새 틀고 잤다. 추워서 이불을 꽁꽁 덮고 자는데 이대로 감기에 걸려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르노블에서는 하루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우리가 머물렀던 에어비앤비가 기억에 많이 난다. 보이시한 머리에 키가 180cm는 되어 보이던 쿨한 아주머니가 사춘기 소녀 둘과 철없는 막내아들 이렇게 셋을 키우는 집이었다.
거기에 개냥이 Jeckie와 여름 땀내 진동하는 대형견 Daegu까지. 하루만 머무는 게 아쉬울 정도로 귀여운 녀석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웠다. 이 녀석들도 에어컨이 좋은지 열어둔 방문으로 자꾸 들어와 우리의 침대 자리를 노렸다.
그렇게 밤새 튼 에어컨으로 몸속의 냉기를 가득 채운 우리는 드디어 목적지인 남프랑스 베흐동협곡으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