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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77

어머! 여긴 꼭 봐야 해

2019년 7월 2일


보랏빛 라벤더꽃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사진을 찍으면 화보같이 나오는 곳, 7월의 남프랑스다. 베흐동협곡에서 발랑솔 마을로 가는 길 우리는 라벤더밭이 나올 때마다 감탄했고, 가는 길 내내 5분에 한 번씩은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그만큼 라벤더밭은 아름다웠고 눈부셨다. 

    

하지만 우리가 찍은 사진은 뭔가 부족했다. 


베흐동협곡에서 발랑솔 마을로 가는 길


예쁘지만 숨이 멎을 정도는 아니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내 머릿속 '7월의 남프랑스 라벤더'의 이미지와 내가 찍은 사진은 거리감이 있었다. 성능 좋은 DSLR이 아닌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서이기도 했고, 빛과 구도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을 것이며, 전문 사진작가들처럼 사진이 멋지게 나올 장소를 콕 찍어 가지 못한 탓도 있을 거다. 


라벤더밭을 처음보고 흥분해서 사진을 마구 찍었지만 찍고나서 사진을 보니 뭔가 2%부족한 사진들.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이 사진에 잘 담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라벤더밭.
셀카도 열심히 찍어보고 다양한 시도들을 했지만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지 못했는데, 이때는 해가 너무 쎘다.

    

최고의 스승은 '모방'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찍어도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지 못하자 우리는 잘 찍은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잘 찍은 사진들을 보자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먼저 구릉 혹은 언덕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라벤더가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잘 나온 사진들은 라벤더가 위, 아래 굽이치듯 언덕에 펼쳐져 있는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해가 너무 강한 시간을 피해 아주 이른 아침 혹은 해 질 무렵 사진들이 많았다. 햇빛이 너무 강하면 아무리 예쁜 라벤더밭도 강한 햇빛에 묻혀버리곤 했다. 


마지막으로는 역시 아웃포커싱이다. 끝없이 펼쳐진 라벤더가 뒤에 자연스럽게 아웃포커싱 되는 사진들이 아무래도 예쁜데 나의 폰카메라로는 그런 아웃포커싱을 할 수 없었다.  


아웃포커싱을 해보기도 하고
나름 언덕진 라벤더 밭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이리저리 열심히 스마트폰 각도를 달리해봐도 우리가 원하는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우연히 파리 뮤지엄패스를 사기 위해 클룩이란 여행 액티비티 온라인 플랫폼에 접속했다가 홈페이지에 뜬 사진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사진은 화면 전체를 보랏빛으로 가득 채운 남프랑스의 라벤더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실제로 남프랑스의 라벤더밭을 본 나로서는 그 사진이 실제 색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정의 힘이다. 

    

한 장의 사진이 갖는 힘이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SNS들로 인해 사회적인 파급력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더욱더 사진에 집착하게 된 듯하다. 어떤 여행지를 가더라도 모두 사진을 찍기 바쁘고, 인생샷 한 장을 건지기 위해 몇 시간을 달려가 사진을 찍기도 한다.    

 

잘 찍은 사진들을 따라 라벤더밭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건져보려 노력했지만 우리는 결국 실패했다. 그래서 라벤더밭의 아름다움을 너무나도 잘 포착한 사진들을 보면 '도대체 이런 곳이 어디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샷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지도, 사진 스팟을 찾으려 몇 시간씩 헤매지도, 아웃포커싱이 되는 DSLR과 고가의 렌즈를 무겁게 들고 다니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여행하던 대로 라벤더 밭을 여행했다.     


그럼에도 D8번 국도를 타고 끝도 없이 펼쳐진 라벤더밭을 운전하던 기억은 내 머릿속 한 편에 잘 저장되어있다. 라벤더밭에 벌들이 너무 많아 윙 거리는 소리가 오래된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보다도 더 크게 들렸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라벤더밭을 보기 위해 로엥이를 끌고 밭에 주차했다가 로엥이의 타이어가 진흙으로 뒤덮여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손으로 타이어의 진흙을 박박 긁어낸 기억도 있다. 나에게 라벤더밭은 한 장의 이미지가 아닌 이런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이미지의 합이다.


라벤더 밭에서 실패한 인생샷은 해바라기꽃밭에서 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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